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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람 Oct 21. 2023

도심 속 해방

루프탑 파티


여름날 밤, 루프탑에서 좋은 음악과 함께 야경을 보며 시원한 맥주 한 잔.


누구나 루프탑에 대한 이 정도의 낭만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 낭만은 클러빙에서 더욱 특별하게 빛을 발한다. 현재 서울 시내에는 이태원의 <카사코로나>, <베톤 부르트: 콘크리트 바>, <냐피>, <페이퍼>, 홍대의 <모데시> 등 루프탑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여럿 있다. 내게도 '루프탑 파티'하면 다양한 추억들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한국에서의 첫 루프탑 파티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2015년 당시 '퓨트 디럭스(Pute Deluxe)'라는 팀이 있었다. 현 '디럭스 서울(Deluxe Seoul)'로 불리며, 대중들에게는 JTBC <비정상회담>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Julian Quintart)가 속해있는 팀이기도 하다. 당시 퓨트 디럭스는 클럽이 아닌 다양한 장소에서 파티를 개최하는 시도를 하며 루프탑 파티를 많이 열고 있었다.


그 해 어느 여름날, 친구가 줄리안의 음악 스타일을 좋아해서 나를 퓨트 디럭스 파티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파티는 당시 명동에 있는 조그만 디자인 호텔의 루프탑에서 열리고 있었다. 그곳은 도심 중에서도 도심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빌딩 숲에 폭 둘러싸여 춤을 추고 있었고, 음악이 야외에 개방감 있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또, 파란 하늘 아래 꽃처럼 오렌지색 파라솔들이 활짝 피어있었는데, 그 컬러 대비가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파라솔 아래에는 디제이 부스와 각종 주류 판매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주류도 빨강, 파랑 칵테일에 이국적인 꽃잎까지 얹어져 있어서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뭔가 전체적으로 미국, 유럽, 홍콩 등지에서나 볼 법한 기분 좋게 낯선 풍경이었는데, 나는 한눈에 직감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세계에 입문해 버렸다는 것을.


시시각각 변해가는 구름의 모양과 하늘의 색을 볼 수 있다는 것, 또 얼굴에 닿는 바람을 느끼며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에 하늘을 얼마나 보면서 사는지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나는 가끔 휴대폰 스크린 사용량 알림을 받을 때면 충격에 빠지곤 한다.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려고 노력하는데도 하루에 평균 4시간 정도를 사용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가 고작 6인치 정도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뿐인가. 업무 때문에 하루에 8시간 정도는 내 눈을 PC 모니터에 할애해야 한다. 합하면 나의 하루 중 무려 12시간을 네모난 세계에 내어주는 꼴이다. 하지만 그게 너무 당연해서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르고 산다. 그래서인지 나는 루프탑에서 진정한 안구의 해방감을 느꼈다. 좋은 음악과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저 네모네모한 빌딩들 안에서 일을 했던 것 같은데, 그 빌딩 숲에 둘러 쌓여 음악을 들으니 더욱 쾌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클럽 특유의 폐쇄감이 주는 해방감도 있지만 루프탑의 개방감이 주는 해방감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이태원 <케이크샵> 홍대 <헨즈>를 자주 다녔는데, 그 두 베뉴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해방감을 명동의 루프탑에서 만끽했다. 해방감을 느끼려고 꼭 차를 타고 멀리 떠나거나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루프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루프탑은 우리에게 현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루프탑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은 유난히 짧다. 바로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로 건너가는 두 번의 시기다.

한여름과 한겨울은 말할 것도 없고, 미세먼지가 많거나 비나 눈이 와도 클러빙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절대 놓치지 말고 무조건 즐기라고 말해주는 루프탑을 지독히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일 년에 몇 번 즐기지 못하는 찬란한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라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 후 퓨트 디럭스 팀은 규모를 조금 더 늘려 세빛섬 플로팅 아일랜드에서 주기적으로 아예 루프탑 페스티벌을 개최했고, 나는 기회가 되는대로 참석해서 루프탑 바이브를 열심히 즐겼다. 심지어 세빛섬에서는 한강의 노을까지 즐길 수 있었으니 낭만 그 자체였다.


일개 클러버로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서울 시내 루프탑 클럽이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를 오래오래 지켜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6인치 세계에서 벗어날 의무가 있으며, 우리의 몸은 좀 더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춤출 권리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붙잡고 늘어지며 충분히 행복해할 자격도 있다.



* 모데시 :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64

* 카사코로나 : 서울 용산구 보광로60길 7 4층

* 페이퍼 :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27가길 37 루프탑

* 냐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87 3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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