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람 Oct 21. 2023

뜨거운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절정이 지나간 자리


동이 틀 무렵, 클럽을 빠져나와 택시에 지친 몸을 싣는다. 택시 뒷좌석에 반쯤은 몸을 눕힌 채 창밖을 바라보면 아직 취기가 남아 비틀거리는 이태원의 풍경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간다. 귀에서는 여전히 베이스 음이 웅웅 거리고, 가만히 눈을 감으면 화려한 조명 아래 춤을 추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그러다 택시가 한남대교 위를 지나면 감았던 눈을 뜨고 차창 너머로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밝아져 오는 서울 하늘을 바라본다. 이때 밀려오는 감정은 놀랍게도 어떤 쓸쓸함이다.

 

소설이나 영화,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절정'의 단계가 있다. 클러빙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대로 정의해 보자면 클러빙의 구성은 '전개 -> 절정 -> 결말' 3단계 정도가 될 것 같다. 춤을 추러 가기 전 주로 술을 마시며 흥을 돋우는 '전개'의 단계, 클럽에서 흥을 발산하는 '절정'의 단계, 그리고 클러빙을 마무리하는 '결말'의 단계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절정에서 결말로 이르는 단계를 늘 두려워했던 것 같다. 긴긴밤을 꽉 채워 신나게 놀았으면 어떤 만족감이 찾아올 법도 한데, 시끄럽고 화려했던 파티가 끝난 후 찾아오는 공허함이 싫었다. 그 공허함은 때로 엄청난 허기로 찾아오기도 했고, 불면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해가 환하게 뜰 때까지 동네를 정처 없이 걷기도 했고, 친구들을 붙잡고 늘어지며 계속 먹고 마시기도 했으며, 날은 이미 밝았는데 잠에 들지 못하고 지난밤의 사진을 계속 스크롤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이미 지나가 버린 절정의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 있기라도 하듯이.


이태원, 홍대에서 우리 집까지 소요되는 택시비는 평균 왕복 4만 원. 내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정도 클러빙을 했다고 치면, 클러빙에 쏟아부은 택시비만 해도 4천만 원이 넘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적어도 4천만 원어치의 쓸쓸함을 느끼고 깨달은 점은, 무언가에 탐닉했을 때는 그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공허함을 맞이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절정인 상태라면 그것은 더 이상 절정이 아닐 것이므로. 그리고 그 공허함 또한 절정의 순간을 맛본 자들에게만 찾아오는 특별한 순간이라는 것도.


더위가 가시고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도 비슷한 허무를 느낀다. 한 해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가버린 느낌이다. 내겐 캐럴이 흘러나올 때 보다도 이 순간이 일 년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이라 왠지 모르게 더 서글프다. 아무래도 절정의 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계절은 계속 흘러가나 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든 환희의 순간이 끝나고 난 후, 예를 들면 뜨거운 사랑이 끝나고 난 후, 또는 피, 땀, 눈물이 들어간 일을 마친 후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어떤 만족감이나 추억, 가르침을 얻는 것은 그 후의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유한한 절정의 순간을 남김없이 잘 누려야 할 것이며, 절정이 지나간 자리에 찾아오는 공허함을 잘 다독여 일상을 살아 나가야 할 것이다. 위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절정의 순간이 유한하듯, 공허함이 깃든 모든 결말의 순간도 끝이 난다는 것이다.


택시가 익숙한 동네에 들어선다. 오늘도 약간의 숙취를 안고 집에 돌아와 열심히 화장을 지운다. 거울 속에 낯선 내가 서 있다. 너무 열심히 춤을 췄는지 운동화를 신었는데도 발이 살짝 아프다. 씻고 나와서 라면을 끓여 먹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지만 피곤함이 허기를 이겨 이내 침대에 드러눕는다. 오늘도 유한한 절정의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고 자부한다. 당분간은 클럽에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안다. 밀려오는 졸음에 감았던 눈을 뜨고 나면 다음 재밌는 파티는 또 뭐가 있을지 열심히 찾고 있을 나라는 걸.




* 커버 이미지 : 사진: UnsplashAleksandr Popov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