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 않은 다음
“재미없어요?”
모 DJ가 내게 묻는다. 내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술 한잔을 손에 든 채 플로어에 멍하니 서있으니까 재미가 없어 보였나 보다. 사실 나는 상당히 재미있는 상태였다. 가끔 클럽은 내게 노는 곳이라기보다 음악감상실이 되어버릴 때가 있다. 내 기준으로 DJ가 디제잉을 너무 잘할 때다. 그때는 그냥 넋을 놓고 가만히 서서 음악을 감상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종종 내가 피곤한 줄 알거나 재미없어한다고 오해를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매우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DJ의 개성이라고 볼 수 있는 전체적인 셋이 어떤 느낌인지도 보지만, 다음곡으로 넘길 때 믹싱을 어떻게 하는지를 특별히 유념해서 듣는다.
매일 클럽에서 음악을 들을 수는 없기에 평소 믹스 셋(Mixset)을 즐겨 듣는다. 믹스 셋이란 말 그대로 특정 곡들을 DJ가 원하는 흐름에 맞게 구성하고 믹싱한 셋 리스트다. 길이에 따라 1시간, 2시간 또는 5시간짜리 셋이 될 수도 있다. 믹스 셋을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은 사운드 클라우드, 믹스 클라우드,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보일러 룸, 믹스믹스티비 등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내가 믹스 셋을 즐겨 듣는 이유는 첫째, DJ가 시간을 들여 어렵게 디깅한 음악을 나는 휴대폰 탭 한 번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일반 플레이리스트와 다르게 믹싱 구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다음곡으로 넘어가는 믹싱 구간을 듣고 있으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서로 다른 곡인데 한 곡처럼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은 언제 들어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만큼이나 신비롭다. 그런데 이 ‘자연스럽게’가 DJ들에게 참 어려운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종종 믹스 셋을 만들고 있으니 일반화의 오류를 겪지 않도록 여기서 DJ는 ‘나’에 국한해서만 말하도록 하겠다. 자연스러운 믹싱을 하려면 다음곡 선곡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서 다음곡을 ‘쉽게’ 선곡하고자 마음먹으면 방법은 한없이 쉬워질 수 있다. 일단 현재 곡과 비슷한 장르의 곡 중에서 현재 곡과 어울리는 키(Key)에 비슷한 리듬을 가진 또는 비슷한 악기와 소리의 재질을 가진 것을 고르면 된다. 그러면 안정적으로 잘 어울릴 확률이 높다. 심지어 요즘은 디제잉 소프트웨어나 음원 사이트에서 다음곡을 잘 추천해 주기까지 하니 이를 활용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믹스를 하면 듣기는 편안하지만 재미가 없다. 와우 포인트가 없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믹스 셋을 들을 때 감탄하면서 ‘와우’를 연발했던 구간은 서로 많이 다른 두 곡이 블렌딩 되면서 오묘한 느낌을 내는 구간이었다. 즉, 두 곡이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착 붙는 구간말이다. 이런 선곡 센스는 그동안 DJ가 구축해 온 방대한 라이브러리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나는 플랫폼에 업로드된 믹스셋에 하트를 마구 누르거나 댓글을 다는 등 나름대로 경이를 표하며 듣는다.
비슷한 것들이 만나 어울리긴 쉬워도 전혀 다른 것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긴 어렵다. 오죽하면 ENFP가 ISTJ를 유혹하겠다는 가사의 K-Pop이 나왔겠는가. 그런데 조화를 잘 이루기만 하면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활동하는 우구르 갈렌쿠스라는 아티스트가 있다. 그는 대조되는 두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전쟁, 가난, 이민자 등 여러 사회 문제 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 중에 레드카펫을 오르는 여인의 사진과 아이를 안고 바다를 건너는 로힝야 난민의 사진을 묘하게 이어 붙여 하나처럼 보이게 만든 사진이 있다. 화려함의 끝인 레드카펫과 위태로움의 끝인 로힝야 난민의 모습이 극적으로 대비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난민 인권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느끼도록 한다. 평소 난민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 작품은 쉽게 머릿속에서 지우기 어렵다.
미술작품뿐만 아니라 영화도 그렇다. 예를 들어 (좀 됐지만)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만 해도 그렇다. 배경은 조선시대인데 서양 특유의 장르인 좀비물을 가져다 붙였더니 오묘한 분위기를 내면서 전 세계에서 훌륭한 시청 성적을 거뒀다. 또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소마>도 그렇다. 밝고 환한 ‘대낮’과 ‘축제’라는 설정에 ‘공포’라는 장르를 붙이니 이제껏 본 적 없는 괴이한 영화가 탄생했다.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것들, 예상치 못한 새로움은 늘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내 인생을 60분짜리 믹스 셋으로 본다면 100세 인생이라고 쳤을 때, 나는 20 몇 분쯤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믹스 셋의 삼분의 일이 지났는데 내가 혹시 아직도 관성적으로 비슷한 나날들을 내 삶에 이어 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내가 이러이러한 이력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이러이러한 이력으로 살아가겠다와 같은, 아주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선택말이다. 오늘과 비슷한 내일, 내일과 비슷한 내일모레, 이런 식의 지루한 선곡이면 곤란한데 말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안주하며 오늘과 비슷한 내일들을 내 인생에 이어 붙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최선을 다해 라이브러리를 뒤지고 뒤져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찾아내어, 그것이 설사 오늘과 많이 다르고 도전적인 선곡이 된다 하더라도 내일의 트랙에 붙여봤으면 좋겠다.
계속되는 안전한 선곡으로 관객들의 기억에 조금도 남지 못할 바에는, 도전적인 선곡으로 관객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더라도 한 번쯤 큰 환호성을 듣는 인생이 낫지 않을까. 내게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결국 뻔하지 않은 다음 음악이 아주 오묘하고 아름답게 내 인생에서 흘러나왔으면 좋겠다. 솔직히 믹스 셋 삼분의 일 지점이면 뭐 큰맘 먹고 분위기를 대전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