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정신이 주는 낯섦 적응기

삶을 사는 데에 있어 재미와 의미가 가져야 할 밸런스

by 건빵진소라

자기주장이 꽤나 강했던 올해의 여름이 제 기력을 다 토해낸 건지 어느덧 바람이 제법 살랑해졌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어쩐지 가볍고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렇다, 곧 있으면 히레사케(복어 지느러미를 살짝 태워 데운 사케에 넣어 만드는 술)의 계절이 오는 것이었다. 말린 복어와 불씨, 그리고 사케가 만나 만들어내는 환상의 감칠맛이 벌써 입안을 감싼다. 역시 아는 맛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나에게 계절은 최고의 안주였다. 예컨대 겨울은 모세혈관의 끄트머리까지 취기를 불어넣어 주는 히레사케를 위한 것이었고 봄은 싱그럽지만 단단한 핵과일 내음이 향긋하게 피어오르는 화이트 와인을 위한 것이었으며 이제 막 지나간 여름은 어딘지 자꾸만 헛헛한 갈증을 달래주는 캔맥주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곧 있으면 제대로 닿을 나의 가을은 이 모든 술이 차고 넘치도록 맛있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분 좋게 술 한 잔 할 생각으로 집에 왔는데.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틈을 타 조심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였다. 나의 술들을 시원하게 지켜주던 냉기가 냉장고 밖으로 빠져나와 엄마의 맨 발에 경고음을 울렸다.

"응. 마시지 마."

엄마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단단하던지 왠지 모르게 혼나는 기분이 들어 조금 주눅 들어버렸다.

"아~ 진짜~ 한 캔만~"

애교로 흥정이나 해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역효과가 났다. 엄마는 같지도 않은 애교에 더 단호해졌다.

"마시지 말라고."

엄마의 단호한 어조에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애꿎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몸을 배배 꼬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서 한 번도 나의 지독한 음주 행태에 대해 터치한 적 없었던 엄마가 하루아침에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날 집에서 혼자 와인을 2병 반인가 해치우고 필름이 끊겼던 차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머리에 떠오르는 희미한 잔상이 있었다면 그것은 편의점의 화려한 라면코너였다. 요상하네, 하면서 방에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건 꿈이 아니었다. 주방에는 깨끗하게 비워진 컵라면 용기가 왠지 모르게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고주망태였어도 엄마한테 혼날까 봐 쓰레기마저 매만져서 내놓았을 어제의 내 모습을 상상하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래도 뭐, 아무렴 어떤가, 한잔 해도 되지 않을까 했던 터였다. 하지만 엄마는 생각이 달랐다. 당신의 딸이 제 아무리 멋대로 병나발을 분다고 해도 이 정도로 못볼꼴을 보여줄 줄은 정말로 몰랐던 것이다. 그 뒤로 알만큼 아는 서른셋 딸은 엄마의 눈치가 보여 집에서 두 발 뻗고 편히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근할 때 즈음이면 다가올 저녁시간이 조금은 두렵게 느껴진다고도 했다.

시작은 완전한 타의에 의해서였지만 좋게 포장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술을 조절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술 마실 시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고 몸부림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운동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트레드밀에서 30분 정도 뛰었더니 고기 덩어리를 찜 쪘을 때 나오는 육수처럼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가 주룩하고 흘러내렸다.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가 두 번, 어쩌다가 세 번. 이렇게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술 없이 맨 정신으로 저녁시간을 때우는 날이 나에게도 아주 드물지만 최근에 몇 번이나 찾아왔다. 초가을의 저녁은 어둠이 길었고 어둠은 자꾸만 나를 생각의 수렁으로 등 떠밀었지만 이상하게도 예전만큼 자주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지는 않게 되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하지만 맨 정신은 소위 말하는 "노잼"인 것이 확실했다. 맨 정신으로 드라마나 예능을 보는 건 꽤나 곤혹스러웠다. 혈당이 치솟을 것 같은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를 볼 때도 그렇고 사체를 흉내 낸 마네킹이 나오는 추리 예능을 볼 때도 그렇고 도무지 흥이라는 것이 나질 않았다. 이런 걸 볼 때엔 술 한잔 걸치면서 혼자 호들갑 떠는 재미가 쏠쏠한데 말이다. 술 없이 이런 콘텐츠들을 보겠노라 앉아있는 내가 퍽 낯설기도 했다. 낯선 콘텐츠 소비 행태를 나의 무의식도 견디기 힘들었던 건지 이런 영상들을 한두 시간 정도 보고 나면 갑자기 흥미라는 것이 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 재미없어.

그렇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나는 안 하던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아주 안 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하지는 않았던 집안일을 거들기 시작하니 엄마가 좋아했다. 아뿔싸, 이로써 엄마는 나의 음주 습관에 잔소리를 한 것을 꽤나 잘한 것으로 평가할 것이고 그로 인해 엄마가 나의 음주에 잔소리를 할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무적인 일은 내가 집안일이라는 신체 활동을 하는 동안 술 마실 계획을 재검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때로는 집안일을 하는 과정에서 단념하기도 했는데 이런 내가 너무나도 낯설어서 적응이 되지 않는 요즘이다.

인생의 의미를 무엇에 두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재미"라고 답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도파민"이 내가 삶을 살아가는 주된 원동력이었음에 반박의 여지가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의미"라는 것이 나의 마음에 들어오게 된 듯하다. 마라샹궈를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고 밤새 아린 배를 움켜쥐고선 응급실을 갈까 말까 하면서도 다음 날 또 마라샹궈를 먹을지 말지 고민할 만큼 즉각적인 재미와 자극을 좇던 내가 이제는 인내의 미덕이라는 것이 보여줄 작지만 분명한 영향력에 믿음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의 내가 재밌는 것만큼 내일의 나에게도 의미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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