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의미 있는 복사-붙여 넣기의 신년 계획 철학
나는 2013년, 그러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들어가면서부터 매년 신년 계획을 적었다. 그 전에도 새해 계획을 짜기는 했으나 학생이었던 나의 계획은 남들의 계획과 비슷하기 짝이 없었다.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무튼 2013년부터 에버노트를 사용했는데, 그때부터 세운 신년 계획이 계속 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신년 계획 세우는 방법을 보자면 매우 우습다.
왜냐면, 작년의 계획을 고대로 복사 붙여 넣기 한 다음 작년에 내가 했던 것을 지우고 새로운 것 한두 개를 채워 넣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면 이건 신년 계획이 아니라 평생 계획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신년 계획은 이렇게 몇 가지 웃긴 카테고리로 나눌 수 있다.
1. 몇 년째 항상 계획에 있는 항목들: 11자 복근 만들기 (운동/다이어트), 언어 배우기(스페인어/중국어), 봉사 활동하기, 정기적으로 글쓰기. 음, 다시 말하자면 습관이 되어야 하는 일들. 그래서 이런 것들은 항-상 계획에 있는 것 같다.
2. 몇 년 동안 리스트에 있다가 결국에는 해내고야 마는 일들: 운전면허 따기, 책 쓰기, 해금 배우기, 영상 만들기, 접영까지 배우기. 그리고 회사 그만두기. 돈 쓰는 여행 말고 돈 버는 여행하기. 엄마랑 해외여행 가기.
3. 몇 년 동안 리스트에 있었으나 결국은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 나는 일들: 부동산 경매 배워보기, 그림 잘(혹은 자주) 그리기
4. 평생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계획들: 돈 많이 벌기, 소설 쓰기.
정말 나의 신년 계획은 2013년부터 지금 2019년까지 큰 변함이 없다. 나라는 사람이 원하는 이상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일까?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비록 복사/붙여 넣기라도 일 년에 한 번 우리가 의식처럼 치르는 이 일은 꽤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면 결국 그것은 나의 오랜 꿈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리스트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해서 좌절하진 말자. 그러다 어느 해에 문득, 몇 년 지난 새해 결심을 해낼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혹시 여태까지 신년 계획을 보관하고 있다면 한 번쯤 다시 꺼내보자. 분명 내가 몇 년 동안 내내 이루길 원했던 일이 있을 거다. 그중 내 길이 아닌 것은 과감히 지워버리고, 몇 년째 진짜 이루고 싶었던 일이 있다면, 바로 그거다. 올해는 그 일을 만들어보자.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그만하고 실행부터 해보자. 몇 년 동안 묵혀두었던 그 리스트를 올해는 지울 수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