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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Aug 02. 2021

내 아이들만 괜찮으면, 괜찮은 걸까?

첫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의 영어 교육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배우게 해 학업에서 영어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돕는 것이 나의 목표였는데 모국어처럼 배우려면 일찍 영어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했다.


엄마표 영어 관련 도서를 찾아 읽으며 내 나름의 엄마표 영어 학습 계획을 세웠다. 미술과 미술교육이 전공이니, 영어로 아이와 미술놀이를 했고, 아이의 흥미를 당길만한 영어 그림책들을 수시로 읽어주며 아이의 영어 소리 노출에 꽤 애를 썼다.


'귀만 트이면 돼.'


오로지 나의 목표는 아이의 귀가 영어에 뚫리도록 하는 것이었다. 5세까지 가정보육을 했기에 아이는 나의 모든 것에 노출이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영어로 놀고, 영어로 밥을 주고, 영어로 목욕을 시키면서 아는 영어를 몽땅 끌어올려 아이에게 쏟았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영어 유치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놀이로 자연스럽게 배울 곳을 찾던 중 한 곳을 정해 입학금을 넣었는데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날 입학 전 아이에 대한 정보 수집을 위한 목적이라며 몇 가지 질문들이 적힌 페이퍼를 나눠주었다.  


살펴보니 아이의 영어 노출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요즘 아이 영어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 아이 영어 학습의 현 위치를 묻는 질문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 있게 적었다. 엄마표 영어에 대한 그동안의 나의 노력들을 떠올리며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A4 용지 3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빠르게 써 내려가다 마지막 질문에서 멈췄다.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나요?


빠르게 쓰기 바빴던 앞 질문들과 달리 뭐라고 써야 하나를 한참 고민했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 문화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아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아이? 애매하고 어정쩡한 답변들이 갈 길을 모른 채 허공에 떠 돌았다.


답변을 하지 못했던 그 순간이 한 동안 마음에 남았다. 좋은 대학이라고 부르는 곳을 졸업했음에도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기에 아이는 대학이 목표가 아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충분히 찾을 수 있게 해 줘야지 다짐했는데 영어에 신경 쓰다 중요한 것을 놓친 기분이었다.


그 질문에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이는 유치원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기에 아이로서는 첫 사회생활이었다. 아이는 그곳에서 엄마와 있을 때는 겪지 못했던 갖가지 불편함을 겪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수업을 해야 했고. 어제 잘 놀던 친구가 갑자기 안 논다며 가 버리고, 하기 싫은 친구들의 놀이를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아이가 보였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엄마인 나는 어떤 입장이 되면 좋을까를 고민했는데 적당한 답을 주기도 어려웠지만 엄마인 내가 나서서 일일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어서 그 상황을 마주하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러다 그림책을 만났다. <걱정 상자>였다. 영어 그림책이 대부분이었던 책장에 몇 안 되는 우리말 그림책 중 하나였다. 그 그림책을 본 날 아이는 묵힌 감정을 처음 드러내고는 얼굴빛이 달라졌었다. 그 표정이 신기해 또 보고 싶어 적당한 그림책을 한 두 권씩 찾다 보니 여러 가지 갈등, 불편함 등을 아이 스스로 해결할 힘을 키워주는 일이 엄마인 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위해 그림책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엄마표 영어의 속도를 늦추고 그림책 육아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림책 활동 관련 도서를 찾아봐도 케이크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며 케이크를 만드는 활동들처럼 시각놀이에 의존한 활동들이 대부분이라 아이 마음을 살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러는 사이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고, 그러는 사이 나와 아이의 생각이, 그리고 마음이 참 많이 자랐다. 안 했으면 어쩔까 싶었을 정도로 좋은 순간이 많은데 해 보고 나니 그제야 배움에 바빠 마음을 살필 여유가 없는 요즘 아이들이 보였다. 뉴스에서 보이는 각종 사건 사고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아이의 마음만 건강하면 되는 걸까?


내 아이뿐만 아니라 동시대 아이들이 모두 건강한 마음으로 자란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민을 하다 노트북을 열었다. 그동안의 글들 중 몇 개를 골라 다듬어 파일 두 개를 만들었다.

 

'출간 기획서', '샘플원고'


투고를 했고, 다른 투고 경험담 글들처럼 거절과 애매한 답변을 번갈아 받다 운이 좋게 한 곳과 연이 닿았다.


내 아이뿐 아니라 모든 아이가 건강한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 모든 아이들이 나 다움을 지키며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이 첫출발을 시작했다.


모든 엄마들이 육아 전문가가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담실 문을 두드릴 수도 없으니 나 같은 보통의 엄마가 아이와 일상에서 마음을 키운 이야기들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져본다.


계약서에 쓰인 내 이름 석자에 책임감, 설렘, 그리고 약간의 걱정을 담았다. 시작된 일 마무리가 잘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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