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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르베 Jan 13. 2021

모두가 그렇다고 해서 나도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야

[그림책 활동]: 내가 선택할 수 있어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

글, 그림 : 쉘 실버스타인 / 옮김 : 지혜연/ 시공주니어


주변을 다르게 보기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쓰고 그린 쉘 실버스타인의 그림책이다. 한 아이가 자신이 키우는 코뿔소를 팔기 위해 코뿔소를 사야만 하는 갖가지 이유를 나열한다. 깡통을 따주기도 하고,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로, 용돈을 강제로 받아내기 위한 위협(?)으로, 옷을 걸어두기 좋은 도구로 등  갖가지 엉뚱하고 참신한 이유들이 가득하니 읽다 보면 당장 코뿔소를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저렇게 유용한 코뿔소를 왜 팔지? 코뿔소를 키우기 어려운 집으로 이사를 가나? 아니면 층간소음? 이런 이유를 생각해보며 읽어보지만 어느새 팔아야 하는 이유보다 사야만 하는 이유가 더 커지니 코뿔소의 변화를 좀 더 즐겨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 클레이 통 말이야. 다른 용도로 쓸 수 있을까? <코뿔소 한 마리 싸게 사세요!> 그림책에서처럼 말이야”

아이랑 클레이를 가지고 놀던 중, 문득 코뿔소의 도움을 받아 주변의 것들을 다르게 보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물었다. 클레이 통의 새로운 용도를 묻는 나의 물음에 아이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이건...... 컵으로 쓸 수 있어요."

"오! 그렇겠다. 그럼 엄마는, 마이크로 써 봐야지. 아! 아! 소리가 조금 울리거든."

"모자는 어때요?"


아이와의 대화가 신이 나 조금 더 이야기를 끌었다. 옆에 있던 선풍기를 가리켰다.

"이 선풍기는 어때? 다르게 볼 수 있을까?"

아이가 선풍기를 한참 쳐다보더니 말을 꺼냈다.

"이렇게는 어때요? 이건 청소기예요. 바람이 나오니까요."

청소기가 된 선풍기

그러더니 아이가 선풍기를 거꾸로 뒤집더니 청소기처럼 사용하는 포즈를 취했다. 아이의 신박함에 웃음이 났다.

"와! 진짜네. 진짜 청소기 같은데? 선풍기에서 바람이 나오면 더 청소기 같겠다."

"레이싱카도 돼요. 여기가 모터고, 이건 핸들이에요."

아이가 선풍기 밑면을 핸들이라 하며 운전을 하는 시늉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운동기구도 될 수 있다며 선풍기를 번쩍 들어 올렸다.

레이싱카가 된 선풍기 / 운동기구가 된 선풍기


그런 아이에게 문득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 있어 책장에서 가지고 있던 미술사 책을 꺼냈다. 그리고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을 찾았다. 책 속의 작품을 보며 당시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를 구입해 소변기의 방향을 돌리고  ‘R.Mutt, 1917’이라고 사인한 뒤에 전시회에 출품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작가의 ‘선택’ 만으로 평범한 소변기의 용도가 바뀐 이야기, 이후에 미술작품에 그대로 활용되기 시작한 기성품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함께 곁들이니 아이는 소변기의 변신이 재미있었나 보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뭉쳐진 휴지를 가리키며 이런 것도 전시해도 되느냐며 장난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의 ‘당연하지’라는 맞장구에 아이는 다 마신 커피 잔도 되는지, 동생이 먹다 떨어뜨린 사과도 되는지 묻고 그럼 나는 또 당연하다 대답하며 몇 번의 짓궂은 대화가 오갔다.  


잡 안에서 찾아낸 표정들

“예전에 우리 이거 사람 얼굴 같다고 했잖아. 기억나?”

아이와 잠자기 전 스토리타임을 하던 중 안방 서랍장을 보고 아이가 사람 얼굴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기억나요. 웃는 얼굴도 있고 슬픈 얼굴도 있었잖아요.”

“우리 조금 더 찾아볼래? 다른 표정을 가진 얼굴이 있을지 모르잖아.”

서랍장에서 찾아낸 웃는 얼굴과 슬픈 얼굴

지나가는 자동차에서도 표정을 찾는 아이라 내심 기대를 했다. 아이는 집구석을 다니며 표정을 찾았다. 얼마 안 되어 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여기 선글라스 쓴 얼굴이 있어요!"

아이가 안방에 놓인 가전제품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전제품에서 찾아 낸 선그라스 쓴 심각한 표정의 얼굴

그곳에 선글라스를 쓰고 인상을 쓰는 듯한 얼굴이 있었다. 숨겨진 얼굴을 알아채니 웃음이 났다. 주변에서 아이와 몇 개의 얼굴을 더 찾았다.

스위치에서는 옆을 쳐다보며 긴장한 듯한 표정의 얼굴이, 콘센트에서는 놀란 표정의 얼굴이 있었다. 재미있는 발견에 집안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생겼다.

스위치에서 찾아 낸 옆을 쳐다보며 긴장한 표정의 얼굴
콘센트에서 찾아 낸 놀란 표정의 얼굴
다들 그렇게 한다고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코뿔소 한 마리 싸게 팝니다> 책에서 시작한 놀이가 뜻밖의 재미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찾아낸 몇 가지 의미들을 아이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다들 선풍기라 생각할 텐데 우리에게는 선풍기가 아니었잖아. 다들 서랍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에겐 아니었고."

"다들 스위치라 생각했는데 우리에겐 아니었어요!"

"맞아! 왜 아니었지?”

“음....... 우리가 찾아낸 거잖아요.”

한참을 고민하며 아이가 대답했다.

“맞아! 우리의 선택 때문인 거야. 우리는 선택이란 걸 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서랍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겐 웃는 얼굴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도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야.”

아이에게 말이 좀 어려웠나 보다.

"음....... 이건 어때? 엄마는 많은 사람들이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아도 엄마는 제대로 하려고 해. 엄마가 생각하는 분리수거의 의미가 있어서 ‘선택’ 한 일이야. 모두가 다섯 살에 유치원을 간다고 해서 우리도 가야 하는 건 아니야. 우리의 생각이 있으니까 가지 않기로 ‘선택’ 한 거야. 친구들이 놀 때 모두가 쓰는 안 좋은 말을 따라 쓰지 않을 ‘선택’ 도 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이 한다고 따라 하지 말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한다고 옳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 더 좋을 듯 해. ‘다들 그렇게 해요.’라는 말을 쫒다 보면 때로는 새로운 선택을 하기 어려울 때도 있고 옳지 않은 일을 할 때도 있거든. 나 혼자 다르게 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까 봐. 지금 우리가 선풍기도 새롭게 보고, 주변에서 표정도 찾아보려고 한 것처럼 나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뒤샹이 한 '선택'한 것처럼 말이야.”


코뿔소에서 시작한 간단한 질문이 꽤 길어졌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 즈음, 가끔 아이가 ‘다들 그렇게 해요.’라는 말로 하던 행동들이 생각났다. 남들이 하기 때문에 해볼 수도 있지만, 남들이 한다고 꼭 내가 그래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어렵지만 이번에 찾은 일상의 재미들과 더불어 조금은 기억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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