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누가 와 있는데 너 찾아왔대."
쓰레기를 버리러 가셨던 어머니가 심드렁한 얼굴로 올라오셨다. 오늘 아는 동생이 급히 상담할 일이 있다고 찾아오기로 했는데 도착한 모양이라며 서둘러 내려갔다. 달려가는 나의 뒤통수에 어머니의 말씀이 하나 더 꽂혔다. "그런데 꽃을 들고 있더라?"
‘뭐?’ 생각하는 중에 벌써 나는 문 앞에 나와있었다. 그곳에는 평소 후드티에 모자만 즐겨하던 그 아는 동생이 슈트 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뭐야? 너?”
낯선 광경에 웃음을 터트리니 조수석의 문을 열고 일단 타란다. 상황을 파악하며 일단 차에 탔더니 장미 꽃다발을 내게 내밀며 말했다.
"제가 누나를 많이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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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꺅~~ "너무 느끼해!!!” 아이들이 눈을 가리고 귀도 막고 야단이다. 얘기해달랄 땐 언제고 늘 이 대목만 되면 괜히 아빠에게 달려가 등을 팡팡 두드리며 엄청 나무란다. 마음껏 나무라는 재미에 듣고자 하는 것일까? 엉덩이 탐정에 나오는 닭살스런 펭귄 커플이 있는데, 아빠랑 엄마는 그보다 더하다며 소리소리를 지른다. 물론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상황을 많이 간추리고 오버 액션도 섞으니 더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리고요? 그다음에는요?" 벌써 열두 번도 더 들은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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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 내가 살게."
나는 그런 말 따위를 내뱉고는 꽃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해서 그냥 들고 앉아 있었다. 잠시 뒤에 도착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으며 한 시간이 넘도록 그야말로 상담을 한 뒤, 이번에는 기타를 꺼내든 동생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낯 뜨거운 이벤트를 질색하는 내가 그 순간 그의 앞에 잠자코 앉아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언젠가 대형 서점에서 책에 쪽지를 꽂아 두고 꽃을 들고 서 있던 한 사내는 꽃으로 두들겨 맞으며 '나가!'소리를 들었고, 카페에서 비올라를 켰던 한 사내는 주변인들에 섞여 들어가 박수를 치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한 철면피와 마주해야 했다. 그들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내가 못나게 비뚤어져서였다.
그런데 이 동생의 고백은 오랫동안 독신을 꿈꾸며 다져온 나의 단단한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애초에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아버지처럼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한 후로는 자연스레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혼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곁에 하나라도 있는 것보다는 아예 없는 것이 더 편안했다. 결혼을 해서 남편에게 나 자신만큼이나 마음을 쓰고, 그 안에서 태어난 귀한 자녀들에게 나의 온 마음을 쓰는 모습이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타인보다 가족이 더 어색한 나에게 상처받을 미래의 가족들을 떠올리며, 차라리 다른 사람을 돕는 사역에만 집중하며 혼자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그저 오지 어딘가에서 삶을 불태우다가 홀연히 떠나가고 싶었다.
성장해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부모님께 내비친 후로도 선을 여러 번 보아야만 했었다. 선 자리에 가서는 결혼할 의사가 없음을 시작부터 공손하게 밝혔다. 부모님 레이더망에 신랑감으로 들어온 남자 사람 친구들에게 모조리 최악의 고백을 하고선 차이는 꼴을 보여드리기도 했다. 부모님은 점점 포기하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목적을 이루어 가던 어느 날, 단기로 결성된 밴드에서 남편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성적이고도 어두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반면 그에게 보인 처음 내 모습은 무서울 만큼 호전적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서로에게 비호감 그 자체였었다. 그 각각의 모습이 모두 사람을 곁에 두지 않기 위해 덮어쓴 페르소나였다는 사실은 후일에 재미난 농담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훗날 최소한의 가면 없이도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가 되었는데, 아마도 서로의 민낯을 보게 된 무렵 사랑에 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가면을 벗은 모습을 그에게 들켜 버렸고, 그의 경우는 스스로 가면을 벗고 내 앞에 나타났다.
그날, 내게 고백한 날이 그랬다. 가면을 벗은 모습.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며 시작했던 고백들. 쉽게 말하기 힘들었을 그의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진지하게 발전된 나에 대한 마음을 말끝하나 흐리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진실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그날의 그가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는 말은 아무래도 조금 약한 것 같다. 사로잡혔다고 정정해야겠다. 그는 내게 생각해 보고 일주일 뒤에 대답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대답이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은 그의 제안이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기 때문이었다.
상처와 두려움까지 세세히 나타나 있는 민낯. 그걸 발견한 그는 마치 보물을 대하듯 "당신의 영혼육이 모두 좋아요."라고 고백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일주일의 고심 끝에 나는 그에게 Yes라고 답했고, 내가 그토록 바래왔던 싱글라이프는 한순간에 막을 내리고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딸이 연애라도 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란 생각에 우리를 두고 보셨다. 그렇게 방심하고 있던 부모님들을 두 달 만에 상견례 자리로 모셨다. 양가 부모님들 모두 그날 체기를 얻으셨고, 어머니는 이 결혼을 한다면 유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는데, 원래부터 유산받을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 그 엄포는 전혀 타격감이 없었다. 심지어 우리 집이 무슨 재벌가도 아니었으니 그 이야기 또한 훗날 가족들 간의 재미난 농담거리가 되었고 말이다. 결국 상견례 후 한 달 만에, 양가 부모님들은 결혼식장 맨 앞줄에서 다시 만나게 되셨다. 부모님들의 재정적 도움도 받지 않고, 빚도 내지 않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
남편은 내게 고백을 하던 그날의 노래를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불렀고, 객석에서 몇몇 여인들은 감동의 눈물을 훔쳤다. 그중에는 자신의 남편을 옆에 앉히고선 오열을 한 여성도 있었는데, 그 남편의 부끄럽다는 듯한 험악한 표정이 관건이었다. 나중에 결혼식 앨범을 살펴보니 그 장면이 고스란히 잡혀있어서, 저 여인과 대체 무슨 사이였기에 저랬냐며 괜히 남편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별일 없이 우리의 교제를 처음부터 힘차게 응원했던 절친 부부였다. 다소 산만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자신의 신부만을 바라보며 축가를 마쳤다. 그 눈빛이 나에게는 결혼의 가장 큰 의미였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창세기 2:24-
그 날 이후로 완전히 새로운 한 몸이 태어났다. 그 생명체는 그들 부모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독립체였다.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남성이 애 셋 달린 중년의 여인을 자꾸만 곁눈으로 훔쳐본다. 손 잡아달라 해서 손을 줬더니 잡아다가 손등에 입을 맞춘다. 어색한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이 뭘 그렇게 보냐며 한 소리한다.
"내가 자기를 진짜 좋아하죠?"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또 꺅꺅 하고 있다.
Photo by Hebert Santos: https://www.pexels.com/photo/crop-faceless-man-presenting-red-rose-to-girlfriend-62732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