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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May 02. 2024

공감 능력이 바닥인 부부


심리 상담가 선생님은 애써 표정을 숨기셨지만, 우리를 걱정하시는 것이 보였다. AT(Adult)는 상당히 높이 올라 있는 것에 비해서, NC(Nursing Child) 지수가 거의 바닥인 남편과 나를 번갈아 살펴보셨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재를 겪었다.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로 타인에게 맡겨졌는데, 남편은 당시의 일들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는 어찌 된 영문인지 기억이 또렷했다. 난감하고 불안했던 기억들... 그중 유독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내 앞에 두 여자분이 앉아 계시는데, 한 여인은 행색이 초라했고 다른 한 여인은 깨끗한 옷에 얼굴이 참 예뻤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누가 엄마야?"


엄마라는 단어는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었다. 잠시 주저하다가 늘 나를 안고 계셨던 분의 익숙한 냄새에 끌려 한 여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다른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가 가리키지 않은 그 예쁜 여인이 나의 엄마였던 것이다. 나는 미안함을 느꼈다. 기억 속의 장면이 과연 사실인지 중학생이 되던 해에 어머니에게 물었었다. 어머니는 무척 놀라셨고 이내 쓸쓸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네가 돌도 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네?"


돌사진을 찍으러 간 사진관에서 건넨 조바위가 내게 맞지 않았다. 카메라 앞 의자에 앉았는데 내려다보니 한쪽 양말에 구멍이 나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손으로 구멍이 난 부분을 잡아당겨 엄지발가락으로 눌렀다. 바닥을 누르고 있는 한쪽 발가락, 머리 위로 올려놓은 모자, 난처한 표정이 사진에 그대로 담겼다. 두 돌이 넘어서 찍은 돌사진이었다.


부모님은 운동회에 와 보신 적이 없었다. 엄마들이 돗자리와 도시락을 싸가지고 와서 자녀들과 함께 흩어져서 먹는 시간이 되면 나는 지폐 한 장을 손에 들고 주변 상가를 서성였다. 사 먹을 수 없는 날은 먹지 못했다. 진지하게 내가 부모님의 친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자녀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백하셨다.


"목회하느라 너희를 희생시켰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정말 미안하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진심으로 노력하기 시작하셨다. 처음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치킨도 시켜 먹었다. 멀리 여행도 갔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즐거움과 부모님의 사랑을 점점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자주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달려가다가도 멈춰서게 만드는 둔하지만 간지러운 흉터였다.






남편과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거나 여린 존재를 돌보는 일을 잘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시간과 감정을 내어주는 일이 우리에게는 참 어려웠다. 선교사 허입 절차로 받게 된 그 심리 상담은, 어른인 우리 안에 어린 시절이 형성해 놓은 단단한 것들과 힘겹게 대면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강퍅한 부부에게  아이 이삭이가 찾아왔고, 태중에 잠시 머물다 떠나간 삭이에게 느꼈던 아픔, 슬픔, 그리움의 감정이 우리 안에서 점진적으로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해내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오랫동안 우리 안에서 정지된, 허용되지 않았던 감정이었다. 왜인지 부모님께 미안해서, 아프고 슬프고 외로워도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여린 자녀의 삶과 죽음 앞에 속절없이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울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두 '자녀'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 자녀가 아닌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구나. 우리는 모두 자녀구나... 우리 모두가 이리도 귀하구나... 그리고 핏덩이었던 나도 귀하고 귀한 존재구나...


결국 우리 부부는 선교지로 떠나지 않고, 우리가 속한 가정에서 먼저 선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 우리에게 다시금 세 명의 귀한 자녀가 찾아왔고, 이 세 자녀의 부모로 살아가는 삶은, 우리에게 선교사가 되는 것보다 더한 영예(榮譽)가 되었다.




부모가 되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고

무척 두려운 일이다.


어쩌면 이 일은

우리 평생에 가장 잘한 일이거나

가장 잘못한 일이 될 수 있다.


더욱이 부모에게 상처를 받고 자라난 자녀라면,

떨릴 만큼의 두려움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함에도 때로는

자녀들이 나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부족한 삶을

나의 부모가 아닌 자녀가 치유해 주었듯이


우리의 삶이 비로소 완성되도록

겸손하게 영원의 시간을

선하신 분의 섭리에 내어주는 일이 바로

부모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를 통해 완성되어가는

거듭난 삶으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면


우리, 모든 자녀들은 이겨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pixabay / Vicki Hami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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