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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래토드 Apr 26. 2024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




인터뷰는 어느새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며 진행되고 있었다. 아쉽지만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끝으로, 박사님께서는 홈스쿨링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시면서 무엇이 가장 좋으셨나요?"


레이 박사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제게는 가장 좋았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저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놀고, 함께 책을 읽고, 함께 여행을 가고, 함께 웃고 울고... 별다를  없이 평범한 시간들을 말했다.


자식도 되어보고 엄마도 되어보니, 자녀와의 그런 시간이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임의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수많은 시간들이 부모 자식 간에는 있었다.


레이 박사가 말했던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비단 홈스쿨링을 한다고 해서 이뤄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대답은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냈다. 부모는 자녀와, 자녀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좋은 그러한 관계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평생 가슴을 펴고 살지 못하는 아직 아이인 어른들과 여럿 만나왔다.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을 때 그들의 부모는 없었다. 사랑받기를 바랐을 때 그들의 부모는 무심하게 상처를 주었다. 그들을 향한 환한 웃음 하나만으로도 부모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버리고 마는 이 너그러운 자녀들의 사랑은, 부모에게 쓸모 있게 여겨지지 않았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하는 듯했고 부모를 따라 자녀들도 점점 사랑하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창간호 편집을 마지막으로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이제 결혼과 선교사 파송 준비에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의 단 꿈속에서 나는 새하얀 눈길을 걷고 있었다. 어느 오두막에 이르러 반짝이는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는데, 그 다이아몬드가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첫 아이를 임신했다. 남편과 나는 출국 일정을 잠시 미루고 임신 초기가 지나기까지 태중의 아이를 잘 돌보기로 했다. 태명은 '이삭'이라고 지었다.


9주 차, 초음파를 보시던 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기집 안에 아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계류 유산이니 최대한 빨리 소파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을 했다. 지인들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들도 어떻게 알고는 돌아와서 아이를 위한 축복의 말을 건넬 만큼 호의를 많이 받은 아이였다. 이 아이가 살아갈 삶에 대한 기대가 날로 커져갔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니... 수술을 받지 않겠다며 일어서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진행이 시작되면 많이 아플 거예요.”라며 쓴소리를 하셨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다른 병원으로 가서 재검을 받아볼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소망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잘 먹고, 커피도 끊고, 일도 좀 줄이면 내 안에서 이삭이가 자라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몇 주를 더 버텼다. 돌아보면 정말이지 무모하고 어리석은 산모였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날, 하복부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 없는 하혈이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서 정신을 거의 잃고 병원에 도착하자 쇼크가 왔다. 부들부들 떠는 내 몸속에서 응급의가 무언가를 꺼냈다. 그 순간 부여잡고 있던 소망을 놓쳐버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그대로 수술실로 올려 보내졌다.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입원을 위한 짐을 챙기고 바닥에서 피를 닦아내며 주저앉아 울었다고 한다.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핏덩이였던 이 아이를 향한 축복과 언약은 모두 어디로 흘러가 버렸을까? 나는 처음으로 하나님을 원망했다. 날카롭게 그어댄 말의 끝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유산을 경험한 적이 없으세요. 제 고통을 안다고 하지 마세요!"


다음 순간. 무거운 침묵이 나를 짓누르고 나는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분은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득히 깊고 깊은 슬픔이었다. 그것은 내가 영원히 넘어서지 못할 감정이었다. 마침내 그분의 미세한 음성이 내 마음에 울려왔다.



"딸아. 나도 잃었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라기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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