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와 그의 친구들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뜰에 모여 함께 날아오르기를 연습하곤 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명씩 그들의 여린 날개를 펼쳐 퍼덕여 보는 것이었다. 비록 자신들의 키만큼도 오르지 못하는 날갯짓이었으나 어린아이들은 매우 열심히도 연습했다.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날게 되기를 바라며 연습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친구들 중 그 누구도 그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마치 전쟁을 직접 맞닥뜨릴 것을 바라지는 않은 채 전쟁놀이를 즐기듯, 그것은 그저 아이들의 놀이였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날개란 그런 것이었다. 가지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을 이유를 수천수만 가지라도 댈 수 있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체구도 작고 날개도 작았던 로이는 더 빨리 뛰고 더 힘차게 닫아 오르려고 노력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절벽가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날에는,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결에 날개를 펼치고 그 상태로 몇 시간이고 고요하게 버텨내었다.
아이들의 다리가 땅에서 떠올라 잠깐씩 그들의 몸이 오롯이 날개를 의지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을 덮치는 기분 나쁜 영들이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날아보려고 시도했던 마을 사람들이라면 모두 다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시커먼 영들. 그것들은 평소에 땅 속과 집 안과 거리 구석구석, 사람들의 몸과 옷깃 사이에 숨어 있다가 누군가가 날개를 펼칠 때면 공기 중에서 순식간에 뭉쳐져, 이윽고 나는 이의 등을 덮쳤다. 차갑게 식은 걸쭉한 수프가 등 뒤로 부어지는 것처럼 진저리를 치게 만드는 그 느낌은, 날아오르는 순간의 황홀함을 순식간에 잦아들게 할 만큼 끔찍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된 혈기 왕성한 아이들에게는 그 황홀함도 끔찍함도 모두 재밋거리였다.
어느 날, 로이의 친구 중 하나가 어깨 두 쪽이 모두 흉하게 꺾인 채 마을 한 복판에서 발견되었다. 마을사람들 중 몇몇은 그 친구가 그리된 순간의 끔찍한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며 떠들고 다녔다. 그들이 퍼트린 소년의 비극적인 소문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빠르고 과장되게 퍼져 나갔다. 이제 더는 날아오르는 일이 아이들의 장난일 수 없었다.
어느 날부터 로이 말고는 아무도 넓은 뜰에 나타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친구들은 그저 추억거리로 삼겠다며, 이제 재미조차 없으니 날아오르기를 연습하지 않겠다고 로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로이는 그만둘 수가 없었다. 로이에게는 바다에 내려가 보리라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이가 그토록 갈망하는 바다에 가닿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나는 것뿐이었다.
로이 역시 그 어둠의 영들이 꺼림칙하기는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두려움보다는 의문이 먼저 일기 시작했다.
'날개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일까, 아니면 이 쫓아오는 것들 때문에 우리에게 날개가 주어진 것일까? 그 어둠의 영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의 날개를 빼앗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죽어 영원히 날 수 없게 되는 것일까?'
그날도 로이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넓은 뜰에 도착했지만, 곧 모든 생각을 비우고 평소처럼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내달리며 뛰어오르는 순간, 로이는 자신의 몸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몸이 탄력 있는 공처럼 위로 가뿐히 떠올랐다.
로이는 정확한 시점에서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바람결을 따라 날개를 살짝 비틀어 올린 뒤, 다시 아래로 힘껏 쳐 내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로이의 몸이 훅 공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로이는 멈추지 않고 날갯짓을 계속했다. 어느새 로이의 몸은 땅으로부터 높이 들려 올려졌고, 넓게 펼쳐진 로이의 날개가 활강하며 공중을 가르고 있었다.
그 일은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아무도 로이가 날아올랐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누구도 로이가 날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둠의 영마저도 미처 로이의 등 뒤로 붙지 못했으니까...
로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광장을 맴돌자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로이의 날갯짓 소리 때문이었다. 그 특별한 소리는 결코 숨겨질 수가 없었다. 로이는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 위로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환호하지 않았고 그저 멍하니 로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의 영은 사람들의 옷깃에서 뒤늦게 흘러나와 주변에서 머뭇거리기만 할 뿐 이미 땅 위로 내려온 로이를 어쩌지 못했다.
이제 어디로 가든지 로이를 주시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둠의 영뿐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가 로이를 자세히 살피며 그가 공중에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처음에 로이는 자신이 날게 된 것에 사람들이 기뻐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옷깃 사이로 날개가 드러날 때마다 흘낏거리는 그들의 눈빛을 보고서야 로이는 깨달았다. 그 안에는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반질대고 있었다.
'왜 너야. 왜 하필 네까짓 게.'
어쩌면 그것은 어둠보다 더 끔찍했다.
사람들은 매일 같이 로이 곁으로 모여들었는데, 그 이유는 분명했다.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어서 로이가 그들의 눈앞에서 다시 날아오르기를, 그래서 어둠의 영이 그를 덮쳐 땅에 내리꽂기만을 은근하게 바라고 있었다.
어둠의 영이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는 등 뒤로 느껴지는 어둠의 농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로이가 빠르고 높게 나는 만큼 어둠도 따라서 빨라지고 짙어졌다. 수십번 어둠의 영이 로이를 땅으로 패대기쳤지만 로이는 상처를 입은채로 계속해서 날아올랐다. 공중에서의 그 쫓고 쫓기는 싸움이 계속될수록, 어쩌면 어둠이 그렇게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있다는, 어쩌면 그들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로이는 하게 되었다.
이제 바다라는 순수한 갈망 외에도, 조금은 얼룩진 다른 간절한 소원이 로이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는, 어둠이 더는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르고 높이 날아오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고향을 완전히 떠나게 되는 것. 로이는 이 두 소원을 반드시 한 날에 이루리라고 다짐했다.
로이는 그의 날개가 가장 큰 힘을 얻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어느 한날에, 로이는 자신이 늘 향하던 그 깎아지른 절벽으로 갔다. 그리나 이번에는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날개를 펼치는 대신, 오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절벽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마침내, 딛고 서기 위해 의지할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고, 오직 로이의 발바닥이 허공에 힘없이 저어지는 순간, 로이는 이제껏 해온 것 중 가장 강한 힘으로 날개를 펼쳐내었다. 그리고 떨어지며 마주하는 압력을 날개로 고스란히 감아, 힘을 더해 날개를 쳤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가빠오는 숨을 참아 견디며 날갯짓을 계속하여 절벽보다 높이 올랐다.
로이의 고향, 섬마을 중앙의 마을 어귀에서부터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이내 짙고 길게 뭉쳐져 로이에게로 쏜살같이 다가왔다. 갈퀴처럼 변한 어둠의 영이 로이의 어깨 두쪽을 얽어매려는 순간, 갑자기 바다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밀려 올라 로이의 날개 안쪽으로 풍성히 감기며 그의 몸을 세차게 위로 밀어 올렸다.
로이는 눈을 돌려 바다를 아련하게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쫓아오지 못할 만큼 빠르고 높이 날아오른 그가 다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은, 이제껏 살아왔던 고향을 작은 점으로 여기게 할 만큼이나 넓고도 넓었다.
"모든 것이 고마워, 너의 끝에서 꼭 다시 만나자."
로이는, 하늘을 향해 더 높이 날아올랐다.
하늘의 색이 점점 바뀌었다. 붉은빛, 푸른빛, 검은빛, 다시 노을처럼 붉은빛……
대기가 새롭게 변할 때마다 날개가 찢기는 고통을 느꼈지만 로이는 날갯짓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