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선착장

by 소래토드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시편 107:30-31-




켄트와 로이가 처음 만난 곳은 둘째 하늘의 실로였다. 실로는 첫째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둘째 하늘의 한쪽 어귀에 있는 마을이었지만 웬만한 공간감을 가지지 않고서는 발을 디딜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로이가 다 자라지 않은 불완전한 날개로 첫째 하늘에서 둘째 하늘인 실로까지 날아온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지만, 도착했을 때의 그의 작은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로이는 인적이 드문 고요한 숲길에 수십일 동안이나 쓰러져 있었다. 그런 로이를 누군가가 발견하여 살며시 흔들어 깨웠다. 그 사람은 생기를 거의 잃어가는 로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신과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바로 켄트였다.


그 후로 로이는 늘 켄트와 함께했다. 그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그가 머무르는 곳이면 로이도 함께 머물렀다. 켄트는 로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왜 그런 꼴로 쓰러져 있었는지 묻지 않았고, 로이 스스로도 굳이 그 이야기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제 막 둘째 하늘 서쪽에서 찬란한 빛이 떠올라, 로이의 방에도 은은하게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로이, 일어나. 이제 이곳을 떠나야 해.”


켄트가 로이의 방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간밤의 험한 여정으로 인해 로이의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었지만 잠결에서도 켄트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척이나 반가웠다. 로이는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켄트는 항상 이른 새벽에 깨워 떠날 차비를 하게 했다. 로이는 부스스 일어나, 몇 가지 되지 않은 소지품들을 챙겨 가방에 모두 집어넣었다. 이러한 삶이 반복되면서 로이는 너무 무겁거나, 너무 소중하거나, 너무 커다란 물건들을 갖지 않게 되었다. 로이는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섰다.


켄트는 빨간 벽돌집 앞, 다시 보아도 엉망진창인 정원의 울타리 너머에서 로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로이는 잠시 동안 멍하니 간밤에 보았던 하얀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다,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급히 켄트를 쳐다보았다. 그런 로이를 한참 전부터 바라보고 있었던 켄트는 천연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빨간 벽돌집들의 통로와 하얀 정원, 그리고 오렌지색 '좋은 바다'에서 로이가 겪었던 일들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켄트의 눈빛은 항상 그러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어쩌면 정말 그럴 수도. 그것이 켄트가 로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다시,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들은 어느 한 노점에 들렀다. 균형이 맞지 않아 덜컹거리는 나무 의자를 잠시 손본 켄트는 음식을 주문했다. 로이는 둘째 하늘의 음식이 여전히 낯설었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산뜻하고 뜨끈한 음식들을 맛있게도 먹었다. 로이가 식사를 하는 동안 켄트는 노점에 미리 도착해 있던 두 명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이는 그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완전하게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어느 한 부분도 대화가 어그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없었다. 언젠가 자신도 켄트와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로이는 생각했다. 이윽고 켄트는 무엇 무엇을 챙기라고 그 사람들에게 지시하고는, 로이가 음식을 다 먹었는지를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시 후 켄트와 로이가 도착한 곳은 놀랍게도 로이가 간밤에 보았던 그 바닷가였다. 켄트는 로이의 손을 잡고 새하얀 모래사장으로 이끌었다. 아침의 바다는 잔잔하고 고요했다.


바다를 가까이서 마주 대한 로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켄트는 잠잠이 옆에 서서, 그가 바다를 충분히 눈에 담도록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로이는 새하얀 모래를 가로질러 바다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로이는 찰랑거리는 파도 앞에 쪼그려 앉아 살며시 밀려오는 바닷물을 손으로 만져 살며시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속삭였다.


"네 끝이 여기였구나. 다시 만나서 반가워."


로이는 켄트에게 물었다.


"지금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도 돼?"


켄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야. 그러나 곧 들어가게 될 거야. 네가 원한다면."


로이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켄트를 바라봤다. 켄트의 어깨너머로 전혀 다른 두 개의 장면이 펼쳐져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너머에는 오렌지색 '좋은 바다'가, 오른쪽 어깨너머에는 붉은 선착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 붉은 선착장 끝에는 붉은 나무배 한 척이 닻줄에 매여있었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눈처럼 새하얀 모래알과 대조되어 그 붉은빛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노인이 말했던 그 붉은 나무배구나.’


켄트와 로이는 함께 모래사장을 걸어 선착장에 이르렀다. 선착장과 나무배 모두 같은 같은 종류의 붉은 나무로 견고하게 지어져 있었다. 켄트는 선착장에 발을 디디기 전에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로이의 손을 마주 잡고, 로이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로이, 너는 선택해야 해. 나와 함께 이 여행을 계속해서 이어갈지, 아니면 여기서 멈출지를.”


로이는 그 순간 통로 안에 머물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베갯속에서 살고 있던 아이들을, 그 한스러운 젊은이를...



이윽고 로이는 켄트에게 대답했다.


"켄트! 이제 우리 저 붉은 배를 타고 바다로 들어가는 거야? 나는 좋아! 켄트와 함께라면 어디라도 좋아! 심지어 바다라니! 나는 켄트와 함께 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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