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는 로이의 발랄한 대답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로이가 생각한 끝이 결코 유치한 것이 아님을 켄트는 알고 있었다. 또한 이 바다 앞에서 로이가 무엇까지 각오하고 있는지도 켄트는 알고 있었다.
"그래, 로이. 나와 함께 가자. 네 곁을 떠나지 않을게."
켄트와 로이는 손을 잡고 함께 선착장 끝까지 걸어갔다. 선착장과 배를 연결하고 있는 걸쇠를 딛고 붉은 배에 올라서자 갑판 아래로 출렁이는 물결이 느껴졌다. 그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섰다.
노점에서 켄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두 사람은 이미 붉은 배 위에 타고 있었다. 닻줄을 풀고 노를 잡아 배를 선착장에서 떨어뜨려 놓는 두 사람의 능숙한 움직임을 보면서 로이는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붉은 나무배는 서서히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둘째 하늘의 해가 뉘엿하게 지고 있었다. 해안에는 색깔이 서로 다른, 크고 작은 수많은 배들이 열을 지어 동시에 출발하고 있었다. 노을에 비친 그 배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에 나서는 군함들처럼 기세가 좋고 장엄했다. 몇몇 배들에 비하면 로이의 일행들이 타고 있는 붉은 나무배가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로이는 흥분이 되어 켄트의 손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켄트! 이렇게 멋진 광경은 정말 처음 봐!”
“…….”
로이는 대답이 없는 켄트를 올려다보았다. 웬일인지 켄트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다. 켄트의 긴 침묵에 머쓱해진 로이는 다시 해안으로 눈을 돌렸다.
이제 다른 한 떼의 무리가 크고 작은 배들의 뒤를 이어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바닷길로 들어서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길고 넓직한 나무판자 위에 올라 손으로 물살을 휘젓고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튼튼하게 엮은 뗏목을 탄 채로 노를 젓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은 그저 자신의 팔과 다리만을 의지하며 헤엄쳐 나아가고 있었다. 로이는 그들이 걱정되었다. 그런 상태로 건너가기에는 바닷물이 너무나 차고 파도는 너무나 컸다.
“켄트, 저 사람들 모두 죽고 말겠어!’
켄트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사람들 뿐만이 아니야.”
켄트는 해안을 응시한 채로 잠시 숨을 고른 후에 말을 이어갔다.
“로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붉은 배만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거야.”
“저기 다른 배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다른 배들은 바다를 건너가기에 충분히 크고 튼튼하지 않아?”
켄트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처음으로 로이는 켄트에게서 절망을 보았다. 그 절망은 켄트의 것이 아니었지만 마치 거울처럼 켄트의 온몸에 비추고 있었다. 로이는 할 말을 잃은 채, 붉은 배를 뒤따르고 있는 두 무리와 켄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묵묵히 돛끈을 잡고 있던 에겔이 긴 정적을 깨고 로이에게 말했다.
"배의 크기와 튼튼함과는 상관이 없어. 바다는 오직 붉은 배에만 길을 내어준단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바다 위로 짙은 안개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