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겔은 즉시 돛을 내리고 움직이지 않도록 밧줄로 단단히 묶었다. 안개는 더욱 짙어져, 얼마 지나지 않아 해안선도, 다른 배들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켄트는 그제야 몸을 돌려 여태껏 켄트를 바라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로이를 향해 미소 지었다. 켄트는 로이와 함께 갑판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키를 잡고 있던 아리도 그들 곁에 와서 앉았다.
"이제 밧줄을 끊어도 될 것 같아."
켄트의 말에 에겔이 돛을 묶어 두었던 밧줄을 칼로 잘라냈다. 그러자 밧줄 끝에 매여있던 돛이 바람결에 휘리릭 풀리며 안갯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항해가 처음인 로이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고단했던 로이는 켄트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가 곧 잠이 들었다. 배는 그렇게 오롯이 바다 물결에만 방향을 맡긴 채 안갯속에서 삼일 낮과 밤 동안 흘러갔다.
로이는 선명한 시계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 보니 안개가 모두 걷혀있었고, 커다란 파도가 로이의 머리 위로 곧 쏟아질 듯 넘실대고 있었다. 깜짝 놀라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난 로이는, 켄트와 에겔 그리고 아리가 서 있는 뱃머리 쪽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로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들 앞에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세게 파도치는 바닷물이 이곳저곳에 산처럼 높이 솟아오르고 있었는데, 붉은 배 앞으로는 마치 골짜기가 모여있는 것처럼 길이 나 있었다. 파도가 서로 뒤엉키며 바닷물 위로 좁고 곧은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붉은 배는 물 위에 놓인 그 길을 따라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로이에게 매우 익숙한 그 시계 소리가 빠른 속도로 앞서가고 있었다. 바로 그 시계 소리의 지시에 따라 바다 위로 길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로이는 알 수 없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날아오르게 된 것도, 둘째 하늘로 오게 된 것도, 켄트를 만나 붉은 배에 오르게 된 것도, 모두 어쩌면... 저 시계 소리의 인도가 아니었을까?
'이제 알아야겠어. 저 시계 소리가 정말 무엇인지.'
로이는 어깻죽지 사이에 단단히 접어두었던 날개를 마치 나비가 번데기에서 벗어나듯 펼쳐내었다. 그리고 바닷바람의 결을 따라 날개를 퍼덕인 후, 쏜살같이 시계 소리를 좇아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본 아리가 외쳤다.
"그가 바로 네쉐르군요!"
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계셨나요?"
"바다와 시계 소리는 로이가 자신의 고향인 첫째 하늘에서 날개를 펼치고 그의 앞에 앉아있는 것을 오랫동안 지켜봤지. 그가 비로소 준비가 되었을 때, 바다는 물결을 일으켜 바람과 함께 시계 소리를 그에게로 올려 보냈어. 그가 둘째 하늘로 날아올 수 있도록 그의 심장을 계속해서 뛰게 한 것은 시계 소리였지만, 로이는 그때까지 자신의 심장 소리와 시계 소리를 구분하지 못했을 거야. 그가 다시 바다와 가까워졌을 때, 시계 소리는 바닷바람 속에서 점점 더 선명해졌고, 이제 로이는 자신이 저 시계 소리를 따라가야 할 운명인 것을 깨닫게 되었을 거야. 이제 우리의 남은 여정은 그가 우리를 셋째 하늘로 이끄는 것에 달려있어. 만일 지금 로이가 저 시계 소리를 붙잡는다면 말이야."
"돛을 잘라내라고 하신 것도 그 때문인가요?"
아리는 계속해서 켄트에게 물었다. 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일 네쉐르가 실패한다면요?"
켄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이의 날개보다 정확한 돛은 그 어디에도 없을 걸세. 만일 그가 실패한다면..."
켄트는 어깨를 한번 들썩이며 말했다.
"자네와 에겔, 그리고 나는 이 바다에서 고기나 잡아먹으며 영원히 머물게 될 걸세."
에겔이 팔짱을 낀 채로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네쉐르가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군요."
켄트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네쉐르는 실패하지 않을 거야. 저 시계소리가 그렇게 두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