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파트에 살지 않는가'에 대한 정자매의 답변
왜 단독주택을 샀어요?
단독주택을 산 후 많은 사람들이 물어왔다.
사실 대답은 깔끔하다. 우리는 아파트의 편리함보다 단독주택의 자유로움이 좋기 때문이다.
잘 가꿔진 아파트 공원도 좋지만 투박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가꾼 화단이 좋고,
새벽까지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아도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 절대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사실 이번 단독주택을 사기 전 보광동의 단독주택에서 전세로 이년 반을 살았다.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단층짜리 주택이었다. 어느 포인트에서 체중을 재느냐에 따라 일 킬로 이상 차이가 날 정도로 엉터리 리모델링을 한 집이었지만 그곳에서의 이년 반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어떤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광동에 살았던 때를 떠올리면 우리 둘이서만 있던 장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친구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친구의 자취방이 얼마나 편한 곳인가를 생각하면 된다).
서른 번을 넘기고 나서 더 이상 집들이 횟수를 세어보진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태원과 한남동 중간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한몫을 했다.
집들이 초반에는 되도록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하는 데 집중했다. 사회에서 누군가를 알게 되면 대뜸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하는 식이었다. '친구의 친구 대환영'이라는 문구도 내걸었다. 그러자 만화가, 기타리스트처럼 평소에 내가 접하기 힘든 사람들이 집을 찾아와 주었고, 고작 몇 평짜리 거실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대부분 새벽 세네시까지 수다가 이어졌는데 물론 초대가 대실패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모임에서 알게 된 한국어를 1도 못하는 미국 사람을 호기롭게 초대한 상황이었는데 나 포함 자리에 있던 친구들이 영어로 말한다고 다들 진땀을 뺐다. 다행히 미국 사람이 빨리 자리를 떠주었고, 꿀 먹은 벙어리 같던 우리들은 그때부터 모국어로 폭풍 수다를 떨었더랬다(그 후로 외국인은 영원히 초대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자연히 집들이 음식들도 진화했다.
크림 스파게티로 시작된 집들이 음식은 중국 훠궈, 어묵탕, 골뱅이무침, 떡볶이, 피자 등으로 무한 진화하다가(초반에는 모든 음식을 직접 만들었다) 나중에는 배달의 민족으로 정착했다. 목이 긴 와인잔들은 수많은 새벽을 나며 장렬히 부서졌고 이제는 두어 개만 겨우 남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고 열댓 명이 모이던 왁자지껄한 모임은 네 명 내외로 소규모화 되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 속에서는 진솔된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상차림도 줄어들었지만 대화는 깊어졌다.
모임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