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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자매 Feb 27. 2020

치열한 리모델링과 그 후의 일상 11

완공 후 새로운 우여곡절의 역사

리모델링 공사가 공식적으로 끝난 지 9개월이 지났다. 여기서 말한 공식적인 완공일은 '입주청소가 끝나고 실장님들과 축배를 들던 날'을 가리킨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완공을 제대로 실감하기도 전, 지하 보일러가 고장 났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보일러라면 공사비 압박에 유일하게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기로 했던 것이었다. 완공 둘째 날부터 거금 50만 원이 새 보일러 교체비용으로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한 달 뒤에는 1층 보일러가 고장이 나 온도조절기를 교체했으며(+15만 원), 또다시 몇 달 후에는 우리 2층 보일러도 운명을 다했다.  


지하와 1층은 지인들이 사는 공간이라 바로 고쳤지만, 2층은 우리가 사는 공간이므로 차일피일 수리를 미루며 집에 있던 샤오미 전기 히터로 한 달을 버텼다. 그러다 한 달 뒤에 날아온 전기료 고지서에 무려 10만 원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2층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새 걸로 교체했다(+50만 원, 이번 일로 샤오미 전기히터는 예쁘지만 전기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속을 썩인 것은 비단 보일러뿐만은 아니었다. 지하는 완공 이후에도 두어 번 물이 샜고, 장마철에는 지하 보일러실이 완전히 침수되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가지를 들고 물을 퍼내야 했다. 결국 멀쩡한 지하 거실 바닥을 뜯어내 다시 두껍게 미장을 하고 새로 바닥을 까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새로 한 바닥을 뜯어내 다시 미장을 해야했다.

그래도 몇 개월간의 전방위적인 노력으로 지하가 더 이상 침수되지 않게 될 즈음, 2층 현관 밑의 창고에 비가 새기 시작했다.  2층 현관 밑의 창고도 공사비 문제로 반만 건드렸던 곳이었다. 현관 바로 아래의 창고에 비가 새면서 천장이 노출되기 시작했고, 이는 현관이 붕괴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몇 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창고였지만 고치려고 하니 구조보강, 미장, 페인트, 바닥, 방수까지 모든 공정이 필요했다. 이는 창고 수리를 위해 모든 공정 전문가들이 와야 한다는 뜻이었다(+인건비 무한 추가).


그때였던 것 같다. 이제 우리가 직접 수리를 해야 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 것이. 단독주택 리모델링하면서 단 한 번도 우아한 건물주였던 적은 없으나, 이제는 더 내려놓아야 했다. 실장님께 문의해 수리에 필요한 자재들을 주문하고, 옥탑방에 버리려고 내놓았던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실장님은 찾아내지 못했던, 현관에서 물이 새는 부분을 동생이 귀신같이 찾아냈고(이건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당사자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물이 새지 않게 실리콘을 쏴주고, 현관 바닥에도 투명 방수제를 발랐다. 동시에 외부 계단과 지하방과 맞닿은 부분에도 동생과 직접 우레탄 방수를 발랐다. 나와 동생, 두 실장님이 직접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수백만 원이 들뻔한 수리비를 몇십만 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우레탄 방수를 바르던 동생의 모습. 미술 전공이 빛을 발했다(?)

그렇게 현관 붕괴는 막았지만, 아마추어다 보니 부작용은 있었다. 우레탄 방수를 할 때 하도-중도-상도 순으로 시간차를 두고 세 번을 발라야 하는데 중간쯤 바르고 둘 다 뻗어버리는 바람에 상도를 바르지 못했다. 상도는 바닥을 코팅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걸 안 발랐더니 탑코트 안 바른 매니큐어에 지문이 남듯 바닥에 발자국이 남았다. 현관 바닥에 바른 투명 방수제에도 발자국이 남았다. 지금도 현관은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들로 매우 지저분해 보인다. 매일 지나다닐 때마다 '날 잡아 상도를 발라야지' 생각하지만 일단 최대한 회피해본다.


이 뿐인가. 가장 최근에는 지하 화장실의 천장 페인트가 습기 때문에 두두둑 떨어진 일도 발생했다. 떨어지는 부분을 내가 칼로 긁어내고, 실장님이 퍼티를 바르셨는데 3일 만에 다시 떨어지고 말았다. 이 역시 최대한 그 부분을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완공 후 9개월간의 이야기이다. 처음 리모델링을 시작할 때는 완공이 '끝'일 줄 알았으나 사실상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할 줄 아는 집수리라면 '전등 갈아 끼우기'와 '머리카락으로 막힌 배수구 뚫기'가 전부였던 우리가 그동안 미장을 하고, 페인트를 바르고, 우레탄 방수를 하고, 장판을 뜯고, 타일 메지를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완공 후 우리 집에 일어났던 그 수많은 문제들이 언제 사라진 것일까 생각이 든다. 문제가 발생했던 날들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끝난 날은 흐릿하다(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지하 화장실 천장 페인트는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현관은 엄마가 보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을 정도로 지저분하지만 말이다).


단독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살아보니 막상 '예쁜 집에서 인형처럼 사는 삶'은 없었다. 오히려 예전에는 몰랐던 더 큰 문제의 영역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래도 이제는 집에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 집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모습을 공개하려고 한다. 그동안 인테리어 소품들을 개미처럼 사모았다. 인테리어만은 이제 정말 일단락되었다.


가을의 거실

겨울의 거실

거실에서 바라본 내방(왼쪽)과 동생 방(오른쪽)

중간에는 유칼립투스 폴리안 나무를 놓아두었다. 키가 커졌으면 좋겠는데 자꾸 옆으로만 자라고 있다.  

동생 방

내방

마지막으로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욕실(feat.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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