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사 페스티발 , 포르투갈
2016년 7월, 연일 수은주의 기둥이 40도를 넘어서던 무더운 여름날, 포르투갈에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천여 명의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댄스 페스티벌 행사의 주차장에서 불이 났고 700여 대의 차가 한순간에 불에 타 없어졌다. 포르투갈의 주요 신문과 방송은 이 화재 기사를 내보냈고 근래에 가장 큰 규모의 화재라고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테러 사건이 아니냐 의심했으나 테러의 증거는 없었고 다행히 인명 피해도 없었다. 무더운 날씨에 의한 자동차 가스 폭발이 원인으로 의심되는 그 화재의 현장에 내가 있었다.
유럽 최대 규모의 포크댄스 축제인 안단사 페스티벌에 참가한지 3일째 날, 이제 이곳의 생활에 제법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새벽이면 급속도로 떨어지는 기온에 몸을 웅크려 덜덜 떨다가 아침 해가 떠오를 때쯤 기온이 올라 겨우 잠이 든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땀이 벅벅이 되어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눈을 뜨자마자 텐트에서 나와 호숫가로 풍덩 뛰어든다. 어느새 햇볕에 적당히 데워진 물속에서 물장구를 치고 놀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상쾌해진다. 젖은 머리를 타월로 대충 닦아 내고 아침 요가를 하러 간다. 요가 수업이 끝나면 길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식당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를 쫓아 오늘의 점심은 뭘 먹을지 정한다. 오늘은 전부터 눈여겨보던 인도 음식을 파는 곳에서 카레 하나를 주문해 먹고 디저트로 요구르트 아이스크림까지 챙겨 먹었다. 부른 배를 잡고 어슬렁거리며 다음 수업은 뭘 들을까 찾아다닌다.
벨리댄스와 힙합을 접목해 추는 수업이 있었고 아프리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수업이 있었다.
오늘 배우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자. 뒤로도 다양한 댄스 클래스들이 있었지만 햇볕이 너무 뜨거웠고 호수로 돌아가 수영을 더 하고 싶었다. 잔잔한 호숫물 위에서 배영을 하며 느긋하게 한여름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귀가 반쯤 물에 잠겨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때였다. 멀리서 괴성이 들렸다. 그럴 리가 없는데 마치 누군가 한국말로 “불이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여전히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며 혼잣말을 했다.
'여행지에서 그 나라말을 못하면 불이 나도 불이 난 줄 모르고 여유 부리다가 큰일 날 수도 있겠는걸'
하지만 잠시 후 하늘 시커멓게 뒤덮은 연기에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주차장 쪽에서 불이 난 모양이었다. 검은 연기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세력을 넓히며 하늘을 서서히 점령해가고 있었다. 그때 주차장 서쪽 끝에 조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대로 튕기듯 몸을 일으켜 주차장을 향했다. 텐트를 지나면서 이 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잠시 휴대폰을 챙겨갈까 생각했으나. 이런 위급한 상황에 사진을 찍는 것이 누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저으며 곧바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사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눈앞에서 수백 대의 차들이 굉음을 내며 폭발하고 있었다. 펑 소리가 나며 차 한 대가 폭발하면 불은 곧바로 바로 열의 차로 옮겨붙었다. 자동차 한 대가 시커먼 고철로 변하는 데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불이 옮겨붙으며 주차장 전체가 불 바다로 변하고 있었다.
저 주차장 끝에 조의 차가 있는데, 조는 지금 어디 있는 거지?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누구라도 와서 저 무시무시한 불의 행진을 저지해주기를 바랐다.
그때 한 남자가 울부짖으며 소화기를 들고 주차장으로 달려들었지만 다른 남자가 그 남자의 접근을 막았다. 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었다. 소화기를 들었던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바리케이드를 만들며 행진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아름다운 연주에 맞춰 손을 잡고 춤을 추던 것처럼 그들은 발을 맞춰 강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텐트에 두고 온 휴대폰이 생각나 텐트촌으로 가려 했으나 텐트촌 입구는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텐트촌까지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가득 덮고 있었다. 뒤에서는 자동차가 펑 터지며 불에 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려오고 있었고 뜨거운 연기가 피부에 훅 하고 와 닿았다. 나는 수영복 차림 그대로 소지품 하나 챙기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떠밀려 강가를 향해 걸어야 했다.
손으로 만든 바리이트 행렬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 강으로 향했다. 축제 장소에 모여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강 위에 세워진 넓은 다리르 빽빽하게 채웠다. 전쟁통에 피난 가는 행렬이 이런 모양일까 싶었다. 나는 헐벗었고 (수영복만 입고 있었으니) 굶주렸다. 우리 뒤로 시커먼 연기가 계속해서 피어 올랐다.
다리 하나를 건너자 넓은 평야와 호수가 펼쳐졌다. 행렬은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너나 할 것 없이 호수로 뛰어 들어 수영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도 망설일 것 없이 호수로 뛰어 들었다. 차가운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자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숨과 함께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걱정들도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 때만큼은 언제든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손에 아무 것도 든 것 없이 수영복만 입고 나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