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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아 Apr 24. 2018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포르투갈, 안 단사 페스티벌


유럽 최대 규모의 포크 댄스 페스티벌인 안 단사 페스티벌 참가 3일째, 주차장에서 발생한 원인 모를 자동차 폭발과 화재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다리를 건너 강 너머로 대피해야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여유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들에게는 전재산에 가까울 차 한 대가 깡그리 불타 없어지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들은  강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음악을 연주하고 여전히 춤을 췄다. 불에 타 없어질지도 모르는다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이므로, 걱정은 그것을 확인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조를 붙잡고 '네 차가 불에 타 버릴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울먹이자 조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이들의 낙천적인 태도 때문에 휴대폰과 노트북을 텐트에 놓고 온 나의 걱정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그대로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시원한 물이 가슴까지 차오르자 저절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머릿속까지 시원 해지는 기분이었다. 페스티벌 장소에서 검은 연기 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이 보면서 수영을 했다.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하늘에서 굉음이 나더니 경비행기가 날아온다. 날개 양쪽 아래에 물탱크를 담은 소방용 비행기다. 비행기는 가볍게 물을 스치는 가 싶더니 물탱크에  강물을 가득 담아 올라간다. 강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화재 진압은 계속되었고 곧이어 헬리콥터가 하얀 가루를 뿌리며 날아왔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화재 장소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우리는 강을 지나 섬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아무래도 이 불은 주차장에 있던 700대의 차를 모조리 다 태운 뒤에야  멈출 것 같았다.

따가운 8월의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 자리 잡았다. 한쪽에선 여전히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다. 꼬마 친구들이 물이며 과일 등 구호품을 전달해주고 갔다. 그마저도 넉넉하지 않아 겨우 갈증을 달래줄 만큼만 목을 축이면서도 조는 친구들에게 농담을 건넸다.

"훌륭한 애피타이저를 먹었으니 메인 코스도 기대되는 걸"


그렇게 서너 시간이 흘러 화재는 완전히 진압되었고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은 참담했다. 주차장에 있던 700여 대의 차가 거의 모두 다 불탔고 하얀 석회가루를 덮어쓴 채 앙상한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혹시나 뭔가 남아 있는 게 있을까 싶어 차로 갔던 조는 암담한 소식을 전했다.

"모든 것이 다 녹아 버렸어. 차 키는 물론이고, 번호판 마저도"


저녁에 데이비드를 만났다. 별 일 없는가 물었더니  내일 떠나기로 했는데 카풀해주기로 했던 차 주인의 차도 불에 타버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밤까지  왁자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차분해져 있었다. 댄스홀에서 춤추는 사람들의 인원이 삼분의 일은 줄어든 것 같았다.  차 안에 있던 이불까지 타버려 오늘 밤을 보내기 위한 대비를 하느라 춤을 추러 틈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연주는 계속되었고 누군가는 계속 춤을 추었다.  나는 연주홀 옆에 쌓인 짚더미 위에 앉아 연주를 들었다. 밤공기를 뚫고 청명하게 울려 퍼지는 아코디언의 음색은 애잔했고 아름다웠다. 그렇다. 아름다웠다. 한낮의 난리통에 걱정하고 근심하느라 긴장된 몸이 한순간에 녹아내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대 위를 비추는 푸른 조명이,. 그 안에서 반짝이며 춤추고 있는 사람들의 몸짓이 그들을 둘러싼 밤공기를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음악이 그대로 주저앉아 하엽없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아침이 밝았다. 공기에선 여전히 불에 그을린 차체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물을 뜨러 수돗가에 가는데 누군가가 아침 인사를 건넨다. 

"잘 잤니?  어제의 그 난리에도 불구하고?"

"네, 잘 잤어요. 아저씨는 어제 별 일 없으셨어요?"

"우리 차도 다 불탔지. 하지만 괜찮아. 어쨌거나 인생은 계속되니까"

Life is go on.

어제오늘 가장 많이 들었던 문장이다.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춤을 춘다고.


운 좋게 화재 사고에서 비껴간 사람의 차를 얻어 타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조의 어머니가 반기며 부엌에서 달달한 과자를 내어 주셨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나를 보더니 조의 어머지가 흐뭇해하셨다. 

"이렇게 힘든 시기에 꼭 필요한 게 뭔지 내가  잘 알지 "

그리고 나에게 주려고 챙겨 두었다며  포르투갈 신문을 건네주었다.  그날의 화재사고가 일면에 특필된 신문이었다. 힘들고 고생스러웠던 기억이 추억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내가 여기 있었지. 그리고 또 이렇게 잘 살아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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