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사 페스티벌, 포르투갈
사람들이 수영하는 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잠에서 깨어난 나도 주섬주섬 수영복을 챙겨 입고 텐트에서 그대로 빠져나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대신 호수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는 것으로 샤워를 시작했다. 조는 이보다 더 좋은 아침의 시작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늦게 잠든 데다 추위에 떠느라 한 순간도 제대로 못 잔 터라 조금 지친 채로 페스티벌 장소로 갔다.
어제저녁의 그 넓고 화려한 무대가 오늘은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필라테스는 요가 같은 음악에 느릿한 동작으로 진행되었는데. 아주 부드러운 동작에서 조금 힘든 동작으로 점진적으로 이어가는 흐름이 좋았다. 아주 아주 느리고 부드럽게 햇살 아래서 뒹구는 기분이 좋았다. 언뜻언뜻 천막 사이로 파고드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얼굴이 조금 따갑기는 했지만. 필라테스가 끝나고 베지터리안 식당에서 조를 만나기로 했는데 언제 그가 올지 알 수 없었다. 무언가를 사서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주문해야 할지 모르겠고 날은 덥고 햇볕 아래 서 있기는 곤욕이었다. 한 참 뒤에야 조를 만났는데 그는 요가 연습하러 갔다가 얼떨결에 7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수업을 해야 했다고 했다.
조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해 주고 다시 사라졌다. 혼자서 밥을 먹는데 옆에 누가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수업 뭐 들어 봤냐고 삼바 수업이 있는데 괜찮을까 묻는다. 그런 게 있었나. 약간 기분이 좋아졌다. 이따가 나도 삼바 수업을 들어야지. 식사를 다 마쳤는데도 조는 보이지 않았다. 이 날은 하루 종일 이런 것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혼자 수업을 듣는 것은 괜찮았지만 왠지 밥은 같이 먹어야 할 것 같고. 분명히 여기 있겠다 했으니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그가 나를 찾을 것 같은 불안함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는 또 내가 맘껏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어딘가로 데려가 줘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이 어디까지여야 할지 분명치 않아 서로가 피곤한 시간이었다.
점심 때는 나 혼자 식당가로 나와서 햄버거를 사 먹었다. 포르투갈에 와서 나 혼자 스스로 주문한 첫 식사였다. 내가 그렇게 사 먹은 햄버거가... 2주 만의 첫 고기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 굶주려서 마음이 우울했는데 두툼한 쇠고기 패티에 감자튀김까지 쓱싹하고 나니 엄청나게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조는 뭐 혼자서 잘 놀고 있겠지. 친구들도 엄청 많던데.
그렇게 여유로운 마음일 때 바투카다 행렬을 만났다. 허리에 커다란 북을 달고 강렬한 리듬을 연주하는 무리가 내가 있는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행사장 곳곳을 돌던 긴 행렬은 광장에서 커다란 원을 그렸고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원 안으로 들어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춤추며 엄청난 에너지를 경험했다. 우리들의 뛰어오를 때마다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마음껏 몸을 움직였다.
아 이런 게 춤이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때 광장 구석에 앉아 있는 조를 발견했다.
어디 있었어?
수피댄스 배우러 갔다가 토할 것 같은 기분이라 뒤에서 쉬고 있었어.
그는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에너지가 많이 약해진 것 같다고. 그리고 언제라도 페스티벌을 떠나고 싶으면 말하라고 했다. 그는 여기서 즐겁지 않다고. 이 에너지가 부담스럽다고..
넌 항상 이 축제를 즐겼다고 말했잖아.
그랬지. 하지만 사람은 변하니까.
혹시 책임감 때문에 피곤해지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런 것도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제안했다. 이제 우리 서로를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각자 마음껏 즐기기로!
그는 어차피 11시에 멍크와 명상을 하러 가기로 했다며 그때 까지만 같이 있자고 했다. 어떤 밴드의 음악에 춤을 출까, 마음에 드는 음악을 골라 춤추는 무리에 끼어들었다. 하루를 보냈다고 이제 이렇게 춤추는 방식에 좀 더 익숙해졌다. 좀 더 느린 음악이 시작 되었으때 한 커플이 다가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들의 손을 잡았고 다시 또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잡은 우리는 음악에 맞춰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뱀의 꼬리를 쫓아가는 것처럼 원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또 빠져나왔다. 음악에 맞춰 걷는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를 수 있는 줄은 몰랐다. 우리 발길 아래서 피어난 흙먼지가 무대 아래 설치된 조명을 받아 부연 안개처럼 흩어졌다. 여기 산골짜기 전체가 안개에 싸인 듯 신비스러운 느낌이었다. 어제는 사람들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그렇게 싫더니 오늘 내가 일으킨 흙먼지는 신비스러움을 더해주는 것 같다. 정말 미스터리 한 일이지?
농담을 던지고 싶어 조를 찾았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아마 그는 인도에서 온 붉은 옷을 입은 수도승과 함께 명상을 하러 갔나 보다.
자 나도 좀 더 즐겨볼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으니 춤을 먼저 신청하기도 쉽지 않다. 누가 춤을 출 줄 아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춤추는 사람들을 눈여겨봤다. 금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빨간색 통이 넓은 바지에 초록색 상의, 마치 무대 의상을 입은 듯했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족 같은 그가 나에게 춤 신청을 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냐고 깜짝 놀라며 자기는 스코틀랜드에서 온 아코디언 연주자이고 얼마 전 볼리비아에 민속음악 축제에 갔다가 이리로 왔다고 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트리 타임스 왈츠를 추는 법을 알려줬다. 내가 금방 따라 가자 분명 다른 춤을 추었나 보다고 알아본다.
응 나 이제 감 잡았어.
데이비드는 이제 나에게 리드를 부탁했다. 잘 모르는 춤을 리드한다는 게 어색했지만 그래도 몇 곡을 더 췄다. 나는 이제 이 춤을 이제 막 처음 배웠고 더군다나 리드는 생각지도 못한 영역이니까. 이 정도면 잘 하는 거지 뭐 하며 스스로를 북돋우며 리딩을 하고 다시 역할을 바꿔 리드를 팔로잉 하기를 반복하는 사이 밴드의 공연이 끝났다.
또 누구랑 춤을 출 수 있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조가 보였다.
그는 땀에 흠뻑 젖어서 신나서 춤추고 있다.
이봐! 너 명상하는데 간다고 하지 않았어?
오.. 완전히 잊고 있었어. 내일 멍크가 나에게 와서 왜 안 왔냐고 하면 완전히 잊어버렸어요 미안해요 라고 하지 뭐.
너 정말 즐겼구나. 춤 명상한 거네라고 말했다. 그는 알아듣지 못하는 듯했지만
돌아가는 길에 메인 무대에서 신나는 음악이 들려 잠시 멈추었다. 저절로 춤이 나오는 음악이었다. 저녁때 들은 아프리카 음악과도 조금 비슷하고. 신나게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그가 잠깐 짐을 가지러 식당에 다녀오겠다고 한다. 나는 오랜만에 주변 사람과 어우러져 마음껏 맘대로 춤췄다. 옆에서 춤추던 남자애가 나를 계속 흘끔거리더니 만화경을 가져와서 보여준다. 금속으로 만든 원통형 망원경이 금속 줄에 매달아져 있었는데 꽤 근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거 파는 거였나. 알았으면 하나 샀을지도 모르겠다.
텐트로 가는 동안에도 신나게 춤추면서 걸었다. 조는 내가 정말로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정말로 나를 신경 쓰고 있었던 거다. 아마 내가 어느 순간 불편해하고 잘 웃지 않는 모습이 신경 쓰였을 거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다는 것을. 동행을 위해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지금 이 순간을 맘껏 즐기는 것이었다.
저기 저 별 좀 봐!
호숫가에 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은하수인가 싶었다 우윳빛으로 흩뿌려진 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 보다 더 추웠다. 이제 겨우 화요일 저녁, 떠나는 날은 목요일 아침인데 여기서 하루를 더 버티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