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단사 페스티벌, 포르투갈
안 단사 페스티벌,
세계 민속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댄스 축제.
일주일 동안 낮에는 워크숍이 밤에는 공연이 이어지며 쉬지 않고 음악이 흐른다.
“너 분명 그곳을 사랑하게 될 거야”
조가 단언하듯 말했다.
그렇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곳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티켓 값을 지불했더니 손목에 안 단사 이름과 로고가 적힌 갈색 팔찌를 채워준다. 매번 입장할 때마다 팔찌를 꼭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입구에서 팔찌를 보여 주고 안으로 들어서니 큰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아래로 작은 전구들이 긴 줄을 이어 매달려 있다. 전구를 따라 내려가며 주황색 빛을 내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 모습이 꿈에 그리던 모습과 너무도 비슷해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몇 년 전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적어뒀던 꿈이다.
몸집이 작고 날랜 소년이 붉은색 지붕이 가득한 곳으로 나를 안내한다. 나는 그를 따라 지붕 위를 걷다가 뾰족한 지붕의 건물 꼭대기 층으로 들어갔다. 문 하나를 밀고 들어선 그곳에는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골목골목 주황색 등을 밝히고 있는 상점들이 여러 갈래로 늘어서 있고 누군가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꿈속의 나는 갈래길에 서서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고민했다. 그 꿈을 꾸고 난 뒤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꿈에서 깨고 나서 그 길의 끝에 뭐가 있었을지 너무도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점점 가깝게 들려오는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군침이 돌게 하는 음식 냄새가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알려 준다. 꿈꾸는 듯 설레는 마음으로 곳곳을 살펴보며 걸었다.
먼저 내려가던 조는 벌써 친구를 만났고 나를 쏘라고 소개했다. 이제 내 소개 뒤에는 온리 잉글리시(영어만 가능 포르투갈어 못함)가 붙는다. 나중에는 여기에 슬로(그나마 천천히 말해줘야 함)가 더 붙었다. 사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인사했고 이제 더 말하고 싶지도 않은 지경에 왔으며 그들의 말은 영어든 포르투갈어든 알아듣기 힘들었다.
식당에서 풍기는 냄새가 제법 그럴싸해서 배가 고파왔다. 조는 나를 저 아래 베지테리언 식당으로 안내했다. 정말 근사한 식당이라고 자기는 항상 저곳에 간다고.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우리가 거기서 저녁을 먹었던가 먹지 않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상관없었다. 나의 관심은 온통 고기 냄새나는 옆 가게에 쏠려 있었으니까.
중앙 무대에서는 아코디언 연주하는 덩치 크고 빨간 옷을 입은 여자가 화려한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혼자서 무대를 완전히 장악한다. 사람들은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춘다. 어떤 방식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잘 몰랐기 때문에 끼어들지는 못했고 무척 신나 보인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흙먼지가 많이 일었고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워댔기 때문에 코가 간질간질해져서 금세 자리를 옮겨야 했다. 왼쪽으로는 계속 숲길이 이어져 있었고 작은 언덕 하나를 넘을 때마다 커다란 무대가 하나씩 숨겨져 있었다. 주로 아코디언을 중심으로 전통 음악이 연주되고 사람들은 원을 그리고 다 같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일정한 패턴의 동작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짝을 바꿔가는 포크 댄스, 출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낭만적이다.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는 아직 이 춤이 어떻게 추는 건지 잘 모르겠고 음악은 참 듣기 좋으나 쉽사리 끼어들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편 무대에서 익숙한 음악이 들린다. 스윙 재즈였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리듬이 몸에 착착 붙는지. 앞서 포크댄스를 출 때는 춤을 가르쳐주던 조가 음악을 듣고 리듬을 잡으라고 계속 면박을 줄 때는 나름 음악을 잘 듣고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자꾸 음악을 들으라고 하나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진짜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탄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아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한 곡이라도 좋으니 린디 홉을 출 수 있다면 머릿속이 좀 더 개운해질 것 같았다. 제발 스윙 아웃만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길 기대하며 리더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춤을 신청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누구라도 잡아볼까 하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 조가 왔다. 자기는 이제 피곤해 쉬어야겠다고. 밤이 깊었으니 나도 들어가 쉬겠다고 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일찍 쉬어줘야지 먼 길 운전해 오기도 했고, 돌아가는 길에 메인 무대에서 멋진 음악이 들려 잠깐 멈춰 섰는데 40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 무대에 있었다. 노래와 연주와 춤과 시 낭독이 함께 하는 무대였다. 20개국의 나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보름 동안 합숙하며 만들어낸 무대라고 했다. 연주자와 무용수들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시선 하나 걸음 하나 가벼운 것이 없었고 묵직한 에너지로 무대를 채워 가고 있었다. 조와 나는 잔디밭에 그대로 자리를 잡았다. 좀 더 그들의 무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닥은 낮의 온기가 남아 있는지 기분 좋게 따뜻했으나 바람이 차가웠다. 이대로 있다가는 감기가 들 것 같아 먼저 들어가겠다고 했다. 조는 음악을 좀 더 듣고 따라가겠다고 했다. 텐트로 돌아와서 긴소매 옷을 꺼내 입고 이불을 덮고 자려고 했는데... 아... 이불이 없다. 얇은 스포츠 타월 말고는 덮을 것이 없었다. 다시 공연장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너무 피곤해 온 몸이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는지라 거기서 나가지 못하고 몸을 최대하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밖에서는 쿵쾅거리는 음악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빡 잠이 든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새벽 3시가 넘어 있었다. 파티가 거의 끝이 났는지 사람들이 저마다 텐트를 찾아 돌아오는 소리였다. 큰 그림자가 내가 누워 있는 텐트 앞에서 어른 거렸다. 나는 조의 이름을 불렀다. 그림자는 사라졌다. 약간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여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일부러 휴대전화 플래시를 이용해 불을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조가 휴대폰을 두고 간 것을 알기에 텐트 위치를 알리려고 누군가 가까이 오는 게 느껴질 때마다 플래시를 켜고 문 쪽을 비췄다. 그렇게 삼십여분이 흘렀을까. 더 이상 잠도 오지 않고 다시 눕기에는 너무 추웠기 때문에 몸에 열을 좀 낼 겸 텐트에서 나와 다시 공연장으로 향했다. 공식적인 행사는 끝난 듯 큰 무대 위는 조용했지만 무대 아래 곳곳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앉아 파티의 여운을 즐기고 있었다. 누군가 바이올린으로 익숙한 멜로디를 연주했다. “뽀루나 까베짜”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음악이다. 무리 중 한 커플이 일어나 탱고를 추기 시작했다. 그들을 비추는 높은 나무에 매달린 붉은 조명이 춤추듯 일렁인다.
아무래도 나 아직 꿈을 꾸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