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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아 Nov 14. 2019

카지노에서 열린 금요일의 파티

2019년 10월 바르셀로나 # 4

Drag the Blues 2019

유럽에서 열리는 가장 큰 블루스 행사,  바르셀로나 드레그 더 블루스.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사라고 들었는데 지금 이곳의 정치 상황과 오거나이저의 신변의 변화 등 여러 사정으로  행사 진행이 힘들었는지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내가 처음 경험한 해외 블루스 행사가  바로 이 드래그 더 블루스이기 때문에 마지막을 놓치지 않고 오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보통 카탈루냐 호텔에서  금요일 토요일 메인 행사를 진행하는데  금요일에 까달로냐 광장에서 시위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금요일 행사는 해변에 있는 카지노 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진짜 카지노니까 입장을 위해 신분증을 꼭 지참해 달라고 주최 측에서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했다.  선착장 출구를 못 찾아 헤맨대다가 지하철이 드문드문 다녔기 때문에 디너타임 30분을 남겨두고야 카지노에 도착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저녁 먹는 건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열차를 기다리면서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모른다.  검은 양복을 입고 귀에  하얀색 동전 모양의 이어폰을 끼운 덩치 큰 남자들이 입구에서 가방 검색을 하고 신분증 확인을 마친 뒤에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안쪽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었고 현란한 색들의 기계들이 돌아가며 유혹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데 눈을 팔 시간이 없었다.  저녁 뷔페를 제공하는 시간이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걸음을 바삐 옮기며 파티 장소를 찾았는데 눈에 띄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자의 손목에 파란 띠가 둘러져 있길래 파티 참가자 중 한 명인 것을 알았다. 파티 장소 어디냐고 물으니까 자기랑 같이 가자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여자는 여유 있게 화장을 고치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손도 천천히 씻고 다시 거울을 한번 더 보고 나서야 나를 데려갔다. 3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내 속은 웰던으로 새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는 걸 고백한다. 파티장은 카지노 안쪽 아주 두꺼운 문 뒤에 있었다. 문을 열었을 때 들리는 음악 소리가 문을 닫으며 순식간에 안으로 흡수되었다. 밖에서는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를 정도로 방음이 완벽했다. 술과 음료를 제공하는 빠의 노란 불빛이 갖가지  종류의 술병에 반사되며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고  밴드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와 있었다. 어제 프리 파티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리사가 반갑게 맞아줬다. 리사는 대만에 살고 있는 프랑스 여자애였는데 한국의 블루스 댄스 행사에 왔을 때 나를 본 적이 있다며 먼저 와서 인사해주었다. 어디에 서 있으면 좋으지 모르겠을 정도로 어색한 분위기였는데 리사가 인사를 건네는 순간 세상이 밝아졌다. 은인을 가리켜 빛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빠에 가서 어떤 종류의 음료든 무료로 제공한다기에  스파클링 워터를 주문했다. 손놀림이 재빠른 시크한 표정의 바텐더가 레몬이 든 얼음잔과 함께 화려한 무늬의 유리병을 건넸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손이 물병을 가져가려는 내 손을 막았다.

"여기서 물은 허용이 안돼!"

호세였다. 나는 깔깔깔 웃으면서 내 물을 지켰다. 호세는 바르셀로나에 사는  푸근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의 리더. 어제 몇 곡의 춤을 추며 친해졌다. 바르셀로나 파티는 유독 디제이 음악이 좋은데 호세도 디제이 중의 한 명이었다. 스탠딩 테이블에서 서서 웨이터들이 가져다주는  깜짝 놀랄 만큼 맛있고 따뜻한 핑거 푸드를 먹는 동안 유럽 여러 나라에서 온 댄서들이 말을 걸었다. 모두들 저 멀리 한국에서 블루스 하나 추겠다고 여기까지 온 여자애 (여기서 나는 그들에게 매우 어려 보이므로 여자애라고 하자 )가 신기한 것 같았다. 여기서의 나는 용기 있고 흥미롭고 쏘 스위트 한 사람일 수 있다.

 리사도 나도 택시비를 아끼고 싶었기 때문에 12시쯤 파티장에서 나왔다. 전철역까지의 길은 내가 안내했다. 신기하다. 리사가 말했다. 어쩜 이렇게 우연처럼 서울에서 스쳐갔던 우리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나게 되었을까. 게다가 지금은 네가 길을 알려주고 있고.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다. 호텔에서 전쳘 역까지 10분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행여나 길을 잘못 들까 봐 바짝 긴장했다. 예상은 했지만 밤이 늦어 전철은 더 드문드문 다녔고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가 기다리는 열차는 오지 않았다. 파티에서 만난 다른 여자애가 들어왔다. 넌 어디 사니. 영어로 물었던가. 까달로냐 광장 근처. 그녀가 스페인어로 대답했다. 스페인 친구인가 보다. 우리는 서툰 스페인어로 물었다. 어디서 왔어? 파리에서 왔어. 프렌치라고? 나도! 우리 왜 그동안 힘들게 스페인어를 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거야. 그때부터 역사 안이 활기차 졌다. 잠시 후에 또 다른 프랑스 친구들이 왔다.  여전히 열차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지만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프랑스 다른 지역에서 온 댄서 중 한명이 까딸로냐 호텔을 숙소로 정하는 바람에 오늘 파티에 못 왔다는 이야기도 했다. 메인 행사장에 호텔을 잡다니 정말 좋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오늘 그 앞에서 불기둥이 타올라서 경찰이 밖에 못 나가도록 했대. 상황이 너무 웃기지 않니. 웃픈 상황에 깔깔 웃었다. 여전히 열차는 오지 않고 있었다. 시간은 1시 가까이 되었다. 이제  열차를 탄다고 해도 환승 열차는 끊기는 시간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산츠역까지 가서 같이 택시를 타자.  포르투갈에서 온 친구들도 역 안으로 들어왔다. 파티 끝났니? 응. 우리도 끝까지 춤추다 올 걸 그랬나. 후회하는 사이 열차가 들어왔다. 너희들 진짜 운 좋다!  늦은 시간 지친 몸으로 한 시간을 기다렸던 우리는  다 같이 환성을 질렀다.  계획대로 산츠역 앞에 있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그 작은 차 안에 좁게 앉아 있으면서도 해냈다는 마음에 들떴던 마음, 별 거 아닌 농담에도 깔깔거릴 수 있었던 가벼운 마음을 기억한다.  숙소로 돌아와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내일 정오부터 강습이 시작되고 대회 예선도 치러야 한다. 피곤하지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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