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바르셀로나 #5
토요일 산츠 역 앞에는 장이 서는 것 같았다. 오래된 골동품, 수제 가방, 빵, 햄, 절임 과일, 과자 등등 눈과 코를 사로잡는 물걸들을 파는 가판이 도로 중앙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점심으로 뭘 먹을까 장터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매튜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겠냐고 제안했다. 매튜는 좀 전까지 같이 워크숍을 들었던 프랑스 리더다. 이번 드래그 더 블루스는 비기너/인터미디어트/어드밴스드/어드밴스드 플러스까지 네 개의 그룹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었는데 그룹 하나를 선택하면 계속 같은 수업을 듣게 되어서 그룹 안에서 친해지기가 쉬었다. Grnoble이라는 나는 절대 완벽히 발음할 수 없는 지역에서 왔는데 여기서 8명이 함께 왔다고 했다. 한국으로 치면 대구 같은 느낌이랄까. 여기서 온 사람들은 블루스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고 단합도 잘 되는 듯 보였다. 그리고 뭘까 이 미친 친밀감, 외가 친척들을 만난 느낌이었다. 나의 엄마 쪽 조상이 이쪽에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나를 향해 보여주던 따뜻한 눈빛, 환한 미소가 이따금 생각난다. 내년엔 그곳에 가려고 프랑스어를 배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프렌치 한 명이 다가와서 물었다.
"너 프랑스어 할 줄 알아?"
"아니,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데"
"아니 그런데 어떻게 프렌치들이랑 어울리고 있는데?"
"몰라, 나도 그게 궁금해"
춤을 춘지 10년이 넘어가면서 배우는 것에서는 좀 시큰둥해지는 시기가 있는데 막상 수업을 듣고 나면 머릿속에 조명이 들어온 것처럼 눈이 번쩍 떠진다. 변화를 시도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있어야 배움도 재밌어지는 것 같다. 최근에 팔뤄가 아니라 리더로 연습하면서 궁금해졌던 것들, 리딩을 존중하면서도 표현력이 좋은 팔뤄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던 것들이 이번 워크숍을 들으면서 해소되었다.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 한국에 돌아와 강습을 열기도 했다. 강습 같이 들었던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했다. 바로 ' appreciation'! 춤을 출 때 파트너가 뭔가 다른 동작을 제시하면 너무나 기쁘게 받아들여달라는 거였다. 다들 말을 어찌나 잘 듣는지 손만 들어 올려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감탄하고 엉덩이라도 뒤로 살짝 뺄라 치면 뱃속에서부터 환호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식당에서 음식이 나올 때도 이 'appreciation'을 연습했다. 이 사람들 왜 이렇게 밝아. 바르세롤나 사람들이 다 이런가, 아니면 우리가 춤을 추기 때문일까.
컴핏은 믹스 앤 매치와, 솔로 댄스 두 개의 부문이 있었는데 맥스 앤 매치는 리더로 나가서 ( 이 행사 참여를 늦게 결심해서 팔뤄는 이미 마감이었다) 참여에 의의를 두었고, 솔로 댄스는 예선을 통과하고 결선에 올랐다. 서울에서 한낮 연습모임 팀과 솔로 댄스를 연습했던 걸 펼쳐 보일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뻐했는데 기량을 다 펼쳐 보이진 못했다. 대회 방식이 예상과 다르게 대결 모드 형식으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결선 직전 ruffin 형식으로 대회가 치러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난 안될 거라고 지레 포기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을 관객 중에서 뽑았고 두 사람씩 대결을 붙여 즉석에서 승패를 가르는 형식이었다. 나는 이곳 출신도 아니고 경쟁하는 건 더더욱 자신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후회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나를 한계 지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믿고 응원해줬어야 했다. 토이에게 배웠던 알파벳 댄스를 꼭 추고 싶었는데 못했던 게 제일 아쉽다. 그래도 심사위원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댄서가 나에게 점수를 줬고 다른 강사도 와서 컴핏에서 리더로 나선 거 너무 좋았다고, 난 너에게 플러스 점수를 줬다고 꾸준히 해보라고 격려해줬다. 언제난 느끼지만 블루스 강사들은 참 스위트 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색깔의 라이브 음악, 내 인생 최고라고 꼽아도 좋을 춤 한곡, 말이 안 통해도 마음이 통한다는 게 느껴지는 사람들.. 너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파티가 끝나자 허무했다. 다음에 꼭 만나자고 연락처를 나누고 아쉬운 포옹을 하고 헤어지지만 우리가 정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난다고 해도 우리가 지금보다 서로를 더 알 수 있을까. 경험이 많을수록 마음을 맘껏 줄 용기도 없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떠나보내고 돌려받지 못한 마음들이 이미 너무 많았다.
무엇을 바랐던 것일까. 여기 오면 뭔가 특별한 것을 찾을 줄 알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가 아주 강한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고 생각했다. 혹시 이것이 그 이유일까 싶어 아주 작은 사건도 흘려버리지 않고 의미를 찾아봤다. 평소 같으면 돌아가거나 도망가고 말았을 일도 용기를 내어 부딪혔다. 이곳의 나는 보통의 나와는 조금 달랐다. 내가 이곳을 온 이유가 이것일까, 조금 더 매력적인 버전의 나를 발견하기 위해? 그것도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는 남자, 싸비를 만나기 전까지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매거진 다음 글을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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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블루스 파이널 영상, 내가 너무 잠깐 나오지만 링크 첨부 >
https://youtu.be/hD-8 NLY0 r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