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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아 Nov 16. 2019

이상하고 웃긴 남자

2019 년 10월 바르셀로나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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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비는 내 춤을 거절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하더니 그녀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소셜댄스 세계에서 이것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다. 음악이 마음에 들지않는다거나 피곤해서 춤 신청을 거절할수는 있지만 그랬다면 적어도 그 음악이 끝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춤을 추지 않는게 관례다. 나는 그가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와 춤 추려던 마음을 포기하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멀리 있을 수록 그가 더 잘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가 가진 강렬한 에너지가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안되겠다. 어떻게든 말을 붙여봐야겠다. 다시 춤을 신청했다. 그는 노래 한곡이 끝날때까지 쉼없이 떠들었다. 음악 소리가 커서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가 조증 환자라고 생각했다. 내 예감은 정확히 틀렸구나.  잠시 흥미로웠던 마음을 깨끗이 접었다.

라이브 밴드의 음악이 끝나고 디제이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왔을때도 느꼈지만 이곳이 디제이들 선곡은 정말 좋다. 어떤 때는 라이브 음악보다 더 좋다. 지금 나오고 있는 음악이 어떤건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샤잠을 켰다.  갑자기 싸비가 나타나 내 앞을 막더니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제목을 찾고 있는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향해 눈을 한번 흘기고는 노래 찾기 버튼을 눌렀다. 그의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보다 클리는 없었다. Fortydays and forty nights 무디워터스 노래였다. 여전히 광대처럼 행동하고 있는 싸비를 보자 웃음이 터졌다. 얘 뭐지.

 드래그더 블루스 파티는 블루스 파티지만 라이브연주가 나오는 블루스 홀  외에 퓨전 음악이 나오는 작은 방이 하나 더 마련된다. 그런데 이 퓨전 음악이라는 게 무엇인고 하니 나의 음악적 지식으로는 도저히  장르를 알 수 없는 음악이다.  디제이가 여러 소리를 믹싱해서 음악이 끊기지 않게 계속 연결하는데 그것이 물소리 이기도 하고 새소리이기도 하고 숨 쉬는 소리 이기도 하고 심장 박동이 뛰는 소리이기도 했다. 가수가 나와서 노래르 부르긴 불렀다. 노래라하기에는 가사가 없고 멜로디도 난해한 음악이었다. 그럴수있다. 세상엔 장르를 규정할 수 없는 음악들이 많은 것이다. 문제는 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런 음악에 어떤 스텝을 밟을 수 있단 말인가. 초감각을 동원해서 집중해야 하는 일이었다. 몇번 시도했다가 너무 덥고 끝이 없는 음악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런데 싸비가 또 나를 이 방으로 데려왔다. 한곡 추고 적당히 끊고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음악이 잦아들고 숨을 고르고 여운을 즐기는 동안 어느새 다음 노래가 이어졌다. 그렇게 두곡 세곡 네곡.. 어느새 숫자를 세는 게 무의미해졌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제 그만 춰야하지 않겠니. 다시 홀로 나가자. 그때 디제이가 외쳤다. 마지막 곡입니다!  마지막 곡인데 그냥 나갈거야? 그래 춰야지. 어둡고 좁았던 퓨전 룸에서 나와 라이브 홀로  들어왔다. 땀에 절어 눅눅해진 머리카락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새로운 세계로 인도해준 싸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헤어지려던 참이었다.  홀에 있던 디제이가 외쳤다. 오늘 이 파티의 마지막 곡입니다. 이번엔 둘 다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마지막인것이다. 음악이 끝나고 홀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생존자들 모여서 사진 찍을게요!  새벽 5시. 남아서 춤추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한계 하나를 넘어선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나도 본인의 의지로 춤을 추는 게 아니었으리라. 어느 순간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말하기 쉽게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이끌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것에 몸을  맡겼던 사람들의 표정은 이처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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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핏 결과는 너무 실망이야. 나라면 너에게 점수를 줬을꺼야.   

2019 드래그더 블루스 모든 행사와 파티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싸비가 말을 걸었다.

-보고 있었어?  너가 있는 줄 알았다면 더 잘했을텐데.

-컴핏 상대에 대한 배려심에서 플러스, 적절한 뮤지컬리티에서 플러스...

싸비는 마치 심사위원인 것 처럼 점수판을 들고 점수를 체크하는 시늉을 했다.

-그럼 너가 심사위원으로 나섰어야지.

나는 뾰로통하게 대답했다.  결과보다는 스스로  먼저 위축되었던 자신에게 실망한 상태였다.

-아 너에게 줄 것이 하나 있다.

싸비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숨겼다.

-너가 이것을 갖게 되면 넌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게 될거야. 너의 외면과 내면을 완전히 바꾸어줄거야.

도대체 뭘까. 기대되었다. 컴핏 결과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찾고 있던 그것을 정말로 이 친구가 갖고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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