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호> 창비/ 제 2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원고 공모 대상작
달콤한 줄로만 알았는데 새콤한 맛까지 더해지는 사탕 하나를 받았다. 계속 궁금한 맛을 주는 사탕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쉴 틈 없이 빠져든다. 상상보다 맛있다. 다음 맛도 궁금해서 아껴 먹을 수가 없다. 다 먹으니 막대기에 껌까지 있다. (이런 사탕 없나? 껌바만 있나?) 질겅질겅 너무 오래 씹었더니 아무 맛도 안 난다. 그만큼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강력하다. 화장실은 먼저 다녀오길 추천한다. 앗! 책을 화장실로 들고 가는 방법도 있겠다. 왜 참고 봤는지 내 신장에게 미안하다.
껌까지 다 씹고 주위를 둘러본다.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 카페 안 사람들이 검은 줄무늬의 윤기 나는 털을 가진 호랑이로 보인다. 저마다 이 낯선 세계를 적응하며 살아가기 위해 공부를 하고, 핸드폰을 보고, 연인과 소통하고 차를 마시며 모여사는 법을 묵묵히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들이다.
많고 많은 호랑이 이야기 중 사람으로 둔갑하고, 사람 옷을 입고 어미 흉내를 내다 죽은 호랑이 이야기는 봤어도 단체로 호랑이가 사람으로 둔갑해서 우리와 어울려 사는 소재는 처음 만나는 것 같다. 신선하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숲 속에서 호랑이로 살 때 동물을 잡아 먹어 고기 맛좀 아는 호랑이는 고기 선별 능력이 탁월한 재능을 살려 정육점을 운영하기도 한다.(구봉삼촌) 전 국민의 엉덩이를 흔들게 했던 '범내려 온다'가 아닌가? 이런 덩실덩실 같이 살겠다고 내려온 호랑이를 잡겠다고 하는 호랑이 사냥꾼이 있다.
그 많던 금강산 호랑이는 사냥꾼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숲이 사라지면서 터전을 잃는다. 산신은 사람으로 둔갑해서 공동체 속에서 적응하며 살라고 변신술을 알려준다. 이렇게 사람들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호랑이와 대대손손 호랑이를 사냥해서 복수의 대물림을 하고 있는 사냥꾼의 이야기이다.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인 주인공 루호, 토끼 달수, 까치 설희 그리고 구봉 삼촌, 또 총을 들고 인간 호랑이를 찾아 헤매는 강태도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읽다 보면 혼자 살아가는 호랑이와 사람을 비교하는 대화들이 있다. 호랑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유는 서로 믿지 않고, 서로를 꺼리고, 본인의 영역을 빼앗길까 봐 다른 호랑이가 오는 것을 싫어하고, 서로 의심과 경계를 했기 때문이라고 구봉 삼촌은 말한다. 그래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가 사람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나?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를 믿고 연대하며 갖고 있는 편견을 벗는 용기가 필요하겠다. 루호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해치려는 사냥꾼 강태를 피하지 않았다. 괴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사람과 어우러져 살려고 무던히 애쓰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물러서지 않는다. 운명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을 해치려는 강태가 위험에 처하자 강태를 구한다. 루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태의 딸 지아는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를 불 줄 안다. 호랑이 사냥꾼과 사람으로 둔갑한 호랑이들과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세대가 된 것이다. 나와 다른 존재를 보고 아버지가 말한 편견에 갇힌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 사람(호랑이) 자체를 본다. 생김새는 나와 다르지만 같이 어우러져 가는 존재의 마음을 볼 줄 안다. 지아는 자기 눈에 호랑이로 보이는 루호가 사람이 된 얼굴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실제 보이는 호랑이도 사진 속의 단발머리 여자애도 지아의 친구 루호다. 나에게 친절을 베픈 호랑이가 단발머리 소녀 루호. 내가 지켜주고 같이 있고 싶은 친구이다.
계속 책을 읽다 궁금한 것은 루호의 출생이었다. 사람이 되어 함께 사는 호랑이들이 루호가 누구의 자식인지 몰라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고, 위협을 느끼고 걱정한다. 이 궁금증의 열쇠를 갖고 와서 사건에 휘발유를 부은 루호의 이복 언니 흑단을 따라가고 싶었다. 루호 너는 위대한 핏줄의 자식이라며 가족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을 겪으며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살아갈 사람들과 더 단단하게 묶인 루호는 말한다.
"난 호랑이답게 내가 살 자리는 스스로 찾겠다고 전해 줘."
루호야 사람으로 어울려 살겠다고 결정하고 성장한 건 좋은데 흑단을 따라가서 잠깐 아버지라도 뵙고 오지 그랬니? 루호가 스스로 찾겠다는 데 답이 있고 기다림이 있다. 나는 기다려야 한다. 루호가 자신의 출생이 궁금해질 때까지 . 그래서 다음 이야기가 더 나올 것 같다. 계속 파고드는 상상을 속편에서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