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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책장 Mar 28. 2022

한 고개 넘어 다음 달에는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다음 달에는> 전미화 그림책 / 사계절

 전미화 작가의 그림책만 모아서 보았던 때가 있었다. 그림책의 세계로 처음 들어왔을 때이다. 그림책은 '아이들이 읽는 책이니까 밝고, 화사하고, 예쁜 그림들로만 가득 있겠지.'라는 틀에 구멍을 내준 작가이다. 작가의 신간이 나올 때마다 지인이 카톡 프로필을 통해 새소식을 전하는 느낌이다. 거칠어 보이는 굵은 선들로 녹록지 않는 삶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 휙휙 거침없는 선은 힘든 현실을 마주하고 위로하는 동시에 살아내는 데 힘을 준다. 


전미화 작가가 전하는 또 하나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위로와 희망을 주는 그림책을 만났다.

아빠와 아들이 한밤중에 짐을 싸서 온 곳은 공사장 앞에 있는 봉고차였다. 이제부터 아빠와 아들은 이 봉고차에서 추위를 피하고, 먹고, 자고, 책을 읽어야 한다. 아빠는 공사장에서 받은 점심을 봉고차로 가져와서 아이와 먹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한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어


빚쟁이에게 쫓기면서도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주위가 온통 캄캄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아빠의 커다란 어깨에 짊어진 짐을 본다. 그 가방 속에는 아이가 즐겨 읽는 그림책 한 권도 있으리라. 아이를 지켜내려는 아빠의 큰 손.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큰 지붕인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따라간다. 그렇게 큰 지붕이 운다. 울면서 말한다. 다음 달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고. 그다음 달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기다린다. 온 세상인 아빠가 흐느껴 울면 아이의 작은 손이 커다란 아빠의 등을 토닥인다. 아빠는 힘에 버거운 어느 날은 눈물을 쏟기도 하고 어느 날은  목욕탕에서 아이의 등을 밀어주고, 도서관에 함께 가며 그렇게 일상을 살아낸다. 아빠의 등을 토닥여주는 아들의 작은 온기는 힘든 현실을 이겨낼 의지를 준다. 아이는 그런 존재다. 


계속 다다다음 달을 보내고서야 다음 달 아이는 학교에 갔다. 아빠는 다음 달에는 봉고차가 아닌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다음 달을 믿는다. 

다음 달에는 더 이상 봉고차가 생활고와 빚쟁이를 피하는 피신처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빠와 아이가 피곤한 일상을 박차고 나와 산으로 바다로 달리는 고속도로에 있기를. 돌아갈 집을 두고 말이다.

 봉고차에서 창밖을 보는 아이의 커다란 눈이 눈앞의 내일은 어두울지 몰라도 다음 달에는 초 하나라도 밝힐 수 있다는 믿음을 봤으면 좋겠다.

삶이 고단하고 이 고단함의 끝이 안 보이더라도 주먹 불끈 쥐고 <다음 달에는> 이렇게 힘에 부치는 것들이 하나 둘 정도는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갔으면 좋겠다. 나도 그렇다. 당장 달라질 것 같지 않은 것이 내일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년을 기다리는 건 또 멀어서 먼 산을 바라본다.  내 속도로 가다 보면 다음 달에는 조금은 바라던 것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우리에겐  한 고개 한 고개를 넘어갈 다다다음 달도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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