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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에다 Oct 24. 2021

까마귀 소리는 늘 같을까요?

소리에 대한 편견들

 12년 전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며, 처음으로 갖게 된 자유 시간이었거든요. 생각을 정리할 겸, 마음을 정리할 겸 일주일간 제주도에 머물렀습니다. 오름, 올레길, 한라산 등을 찾았습니다. 


 하루는 한라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조금 늦게 등반을 시작한 덕분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새소리, 물소리 그리고 바람소리가 함께 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경치를 눈에 담으며 천천히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가 흘렀고, 앞에 백록담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가다가는 내려오는 길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을 때였어요.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올라갈 때는 별로 느낌이 없었는데, 내려올 때 만난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조금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까악! 까악!" 빨리 내려가라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시계를 보니 시내로 가는 버스가 끊길 시간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 보았지만 마지막 버스는 이미 지나간 후였어요. "까악! 까악" 까마귀는 계속 제 주변을 돌며 울어댔습니다. 평정심을 갖으려 했던 마음이 그 울음소리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 한 대가 제 앞에 섰습니다.

  한라산을 올라갈 때 서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던 부부에게 다가가 "제가 찍어드릴까요? "라고 물어본 후 사진을 찍어 드렸었는데 바로 그분들이었습니다. 구세주였죠. 시내까지 저를 태워주셨습니다. 참, 다행이었죠. 그때를 생각하면 사람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남았지만, 까마귀 소리도 제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후에도 까마귀 소리가 나면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하면서 안 좋은 감정과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등의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등 까마귀가 흉조라고 이름 붙여 놓은 다른 사람의 생각들에 제 경험을 맞추기 시작했죠.


 그 후 시간이 흘렀고, 3년 전이었어요. 비 오는 날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걸어오는데, 나무에서 한 새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께엑, 께엑... 께엑" 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그 새를 확인하면 빠르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조금 더 듣고 싶었습니다. 그 나무를 천천히 지나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소리는.. 오리 소리와도 비슷한데, 나무에서 나면 오리는 아닐 테고, 참새, 까치의 소리와는 다른데.. 까마귀 소리가 아닐까?' 그렇게 뒤를 돌아 확인해 보았습니다. 네, 까마귀였습니다. 


 동물들의 소리는 생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외형과 많이 닮아 있죠. 사람은 말로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지만 동물들은 그렇지 못하니 위급할 때는 있는 힘껏 울부짖고, 또 그렇지 않을 때는 침묵을 하는 등 자신의 상태가 여과 없이 소리로 드러납니다. 그날은 까마귀의 소리가 조금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비를 맞아 추웠나 봅니다.


 까마귀가 처음부터 흉조였을까요?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삼족오(三足烏ㆍ발이 세 개인 상상의 까마귀)'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으세요?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자 태양의 상징입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자주 등장을 한걸 보면 옛날에는 까마귀를 귀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건 검은 털 색깔이나 울음소리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까마귀 소리를 새롭게 듣던 날부터 마음가짐이 바뀌었습니다. 새들의 소리를 들을 때, 우리가 배워 온 그 소리를 기억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까마귀는 '까악 까악', 참새는 '짹짹' 오리는 '꽥꽥'  이 아닌 그때 나는 그 새들의 소리를 마음에 담습니다.  아이들과 유치원, 학교를 가는 길에 새소리가 들리면 "어~ 지금 무슨 소리로 들려?" 하면서 놀이를 하곤 합니다. 외계어가 나오기도 하고, 그 소리를 언어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편견을 깨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제주도의 일을 떠올려 보면 '까마귀가 울어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긴 게 아니라, 까마귀가 나를 위해 빨리 내려가야 될 시간이라고 알려 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돼요. 그래요. 새, 동물에 대한 소리에도 우리는 편견을 갖고 있듯.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는 편견을 갖고 있진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편견을 깨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지금 있는 그대로 들어보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새들의 소리, 동물의 소리, 사람의 목소리,  

내 목소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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