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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에다 Oct 19. 2021

소리는 늘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피아노 연주를 듣는 것처럼 내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면..

 가족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 거실로 나왔습니다. 최대한 조용히 나오려고 했지만 몸의 무게를 실은 발소리와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아이들이 깨지 않았을까?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낸 후 머그잔에 따랐습니다. 물을 따르는 소리,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소리, 물이 지나가는 그 길을 따라 장기들이 잠에서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식탁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합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시계 소리, 또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호흡을 하며 멀리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이른 시간이지만 밖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이 있을까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은 연주 <4분 33초>로 유명한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도 ‘침묵이 존재하는 순간’을 경험해 보기 위해 무향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 소리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크게 듣게 됩니다. 그 후 그의 음악적 세계관에 큰 변화가 생겼고, '죽을 때까지 소리는 나를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4분 33초>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습니다. 존 케이지가 등장합니다. 청중에게 인사를 한 후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타임벨을 누릅니다. 그렇게 5분여의 시간이 흐르고 타임벨이 연주의 종료를 알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피아노 뚜껑을 여닫고, 타임벨을 누르는 등의 퍼포먼스만을 보여줄 뿐 건반을 누르는 행위 등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소리 자체에 집중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평소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내는 익숙한 환경음이 낯설게 다가오고, 모든 것이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모든 순간 소리가 존재한다는 것’도 느끼게 됩니다.


 존 케이지의 깨달음처럼 소리는 어느 곳에나 존재합니다. 우리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이가 일 뿐이죠.


 눈은 보기 싫은 대상을 향해 감을 수 있지만 귀는 그렇지 못합니다.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각은 내가 원하는 것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려야 하지요.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나는 다른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청각은 방향과 상관없이(360도) 내가 마음을 주고 주의를 기울이면 나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잠시 눈을 감아 봅니다. 그리고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봅니다. 평소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곡이 들립니다. 내 입에서는 "아, 좋다"라는 말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이제는 내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봅니다. 우리는 늘 말하고 있지만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평생 우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내 목소리를 듣는 일이 아직 어색하고 낯설다면 평소 좋아하는 연주곡을 듣는 것처럼 내 목소리를 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듯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내 감정을, 내 마음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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