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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에다 Nov 17. 2021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

머리가 아닌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하세요.

몇 년 전 개봉했던 일본 영화 <일일시호일>이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다도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고, 관련 내용을 <목소리, 나를 담다> 책에 담았었다. 책에 적었던 영화 속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노리코는 20년 동안 다케다 선생님 아래에서 다도를 배우며 차와 인생의 소중함을 깨달아 간다. 다도는 준비하는 과정부터 많은 규칙이 존재한다. 다건을 접을 때 손동작, 손의 방향, 몇 번을 접어야 하는지, 먼지를 털 때 나는 소리까지도 매일 반복한다. 보이지 않는 과정도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방법을 머리로 외우려고 하는 노리코에게 다케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몸이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하세요."


영화에서 받은 감동을 이어 최근에는 다도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다법을 직접 개발하고 전수하고 있는 '숙우회' 사범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차를 준비하기 위해 다건을 다리고, 계절과 차와 어울리는 꽃을 준비하고, 함께 즐길 다과를 준비하는 일이 처음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차를 내리기 전 과정부터 마음을 담아 준비 하니 그 시간이 더 기다려졌다. 자리에 맞추어 다구들을 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향에 불을 붙이고, 잔과 수구 탕관을 데우고, 단전에서 차를 우린다. 차를 따르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차를 마신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우려내니 차의 맛도 더 좋게 느껴진다.


모든 걸 마치고 나면 다구들은 처음 시작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다. 처음과 끝이 같다. 한 번에 하나의 일만(하나의 동작만) 일어난다. 다음 순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닌 지금 하고 있는 동작에 마음을 둔다. 현재에 마음을 두고 내가 하는 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다건을 잡을 때나 잔을 들 때 새끼손가락이 유독 긴장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알아차림과 동시에 그 긴장은 자연스럽게 풀린다.


 이러한 느린 시간 속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말 실 수도 줄어들게 된다. 충분히 쉬고,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고, 이 말을 해야 좋을지 아닐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그리고 여유 있게 말하다 보니 날카로운 음성이 사라지고 온유하고 따뜻한 음성과 말이 오고 간다.


 다법을 배운다는 건 단순히 차를 마시기 위한 목적이 아닌 그 과정들을 통해 습관 지어지지 않은 처음의 나로 돌아가게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론 한두 번의 경험으로 불필요한 긴장하는 습관을 없앨 수는 없지만 매일매일 이것을 반복한다면 자연스럽게 처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차를 마시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연습을 한다.


영화 일일 시호일  주인공 노리코가 차를 통해 깨닫게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몇 번을 오간 뒤에야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

그리고 하나씩 이해할 때마다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茶 '차'라는 것은 그런 존재다."  -영화<일일시호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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