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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Aug 12. 2023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야

작은 생명체를 대하는 법 알려주기

여러 아이들을 만나다 보면 숲에 사는 낯선 생명들에 호기심보다 거부감이나 두려움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제법 많이 본다. 거미나 날벌레를 마주하면 귀청 떨어져라 소리부터 지른다거나 벌레를 발견하는 족족 밟아 죽인다거나 모기는 죽어 마땅하다며 손뼉 치기 바쁜 아이들. "이건 뭐예요?" 하고 물어보길래 "응, 걔는 산바퀴야."라고 대답했더니 질겁하며 도망가버리는 바람에 "바퀴벌레가 집에만 있는 줄 알았지? 산에도 살아. 빨빨거리며 기어 다니는 게 귀엽지 않니?"라는 말은 입에서 꺼내지도 못했다.


어린아이들은 곤충을 궁금해하고 만지고 싶어 하는데, 오히려 초등학생 어린이들, 특히 여자아이들이 소리 지르고 도망간다. 놀란 마음에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모기가 자꾸 따라온다며 무섭다고 수업 내내 울던 아이도 있었다.― '곤충들의 출현 횟수 및 1회 출현 시 개체 수'와 '아이들의 비명 횟수와 크기'는 정비례 관계이므로 모기와 파리, 개미, 거미의 수가 늘어나는 초여름에는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숲에 온 아이들과 인사를 나눈 후에는 이런 말을 전한다.


"여기는 여러 곤충과 동물들의 집이야. 우리는 그 애들의 집에 잠시 들른 거고.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거미가 나타났다고 꺅! 파리가 나타났다고 꺅! 하면 걔들 기분이 어떨까? 너희도 한번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너희들이 집에서 펴~언하게 쉬고 있는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들어오더니 너희를 보고 꺅!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가는 거야. 그럼 기분이 어때?"


물론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아하!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이해가 갑니다. 곤충을 만나면 소리 지르지 않겠어요."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좋은데요? 전 괜찮은데요?" 라며 넉살을 부린다. 그래도 이걸 한 번쯤 짚고 시작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다르다. 아이들은 듣지 않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 다 듣고 제 안에서 나름대로 생각을 정립한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기' 다음에는 '안녕 연습'을 한다. 곤충이 나타남을 알리면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 "안녕~"하고 인사하는 거다. '곤충 발견 → 소리 지르기'라는 무조건 반사를 '곤충 발견 → 인사하기'라는 조건 반사로 바꾸기 위한 연습인 셈이다.


"저기 벌이 나타났다!"

"안녕~"

"저기 사마귀가 있네?"

"안녕~"

"앗 여기 모기다!"

"짝!"

아니 그게 아니고...

아무튼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다. 나름 재미가 있는지 놀이하듯 안녕 연습을 한 다음 숲에 들어가면 아이들은 곤충을 볼 때마다 안녕을 남발한다. 나중에는 "안녕"을 하려고 곤충을 부러 찾는 아이들도 있다. ‘안녕 연습’이 '안녕 놀이'가 된다. 유난히 겁이 많던 여자아이들이 곤충을 마주했을 때 “으악!"하고 순간 놀라더니 자동적으로 "아.. 안녕~" 하고 손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주기적으로 숲에서 만나는 아이들과는 자연이름을 짓는다. 그중 기어 다니는 곤충만 보면 밟아대는 아이가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애 이름은 ‘거미’였다. 자연이름 짓기는 대체로 아이들의 의견을 따르므로 분명 본인이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어서 거미라 지었을 텐데, 다섯 살 ‘거미’에게는 발로 밟는 게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던 걸까. 어느 날도 숲길을 함께 걷다 말고 자꾸만 멈춰서 곤충들을 밟아대기에 “거미야, 네 이름이 거미인데 자꾸 거미들을 밟으면 어떻게 해. 거미들이 친구라 생각하고 다가왔다가 놀라겠어.” 하고 얘기했다. 머쓱해진 ‘거미’는 딴청을 부리는 듯했지만 발 옆을 기는 거미와 자기 이름과의 연결고리를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그날 거미는 평소보다 곤충들을 덜 밟았다.


올봄에는 아이들과 계곡에서 놀다가 개구리 한 마리를 만났다. 어디가 불편했는지 개구리는 한 아이 손에 쉽게 잡혔다. 얼룩덜룩한 무늬, 길쭉한 다리, 미끌미끌한 피부. 징그럽다더니 아이들은 계곡 한 편에 개구리 전용 수영장을 만들어주면서 금세 개구리와 친해졌다. 나중에는 귀엽다며 너도나도 손가락으로 쓰다듬기도 했다.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그랬듯 이 얼룩덜룩 개구리도 아이들에게 수많은 개구리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벌레를 죽이지 마라, 곤충을 좋아해 보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거미의 생김과 거미줄에 감탄하는 모습, 지렁이나 지네, 노린재 같은 것들을 손에 올리는 모습을 가능한 자주 보여주려 한다. 곤충과 동물의 이름을 알려주고 가까이서 여유를 갖고 탐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손 위에 있는 곤충이 무해하다는 판단이 서면 아이들은 두려움을 잠시 접고, 그 틈으로 호기심을 내비치며 말한다.

“저도 한 번 만져볼래요.” 


아이들마다 성향과 성격, 과거의 경험, 자라는 환경 등 모두 다르므로 스스로 마음을 열도록 기다린다. 기다림은 몇 분, 몇 주, 또는 몇 달, 어쩌면 해를 넘길 수도 있지만 그게 그 아이의 마음인 거다. 그저 적당한 거리에서 아이들의 경험을 지켜보고, 그 경험이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주려 한다.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대상을 알아야 한다.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좋아하는 마음도 자연스레 다가온다. 나보다 작고 연약한 생명을 향해서 열린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면, 아이들은 건강하고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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