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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림 Aug 06. 2023

숲해설가 최고의 복지

아이들 마음의 문에는 걸쇠가 없어요.


올해 숲체험 프로그램 첫 손님으로 온 유치원 7세 아이들. 겨울눈을 뚫고 나오는 새잎과 4월의 온화한 햇살처럼 아이들이 왔다. 겨우내 집과 유치원과 학원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오니 마냥 신이 나나 보다. 앉아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해도 엉덩이 스티커가 자꾸 떨어지는지 자꾸만 일어나 나에게 온다. 아이들은 새순이다. 봄나무 가지마다 총총, 땅 위에 지천으로 쑥쑥 돋아나는 새순처럼 봄을 맞은 아이들은 행복에 겨워 몸을 가만히 둘 줄을 모른다.


질문은 또 어찌나 많은지.


산딸기 줄기를 가리키며 "선생님! 이건 왜 빨개요?"

(관찰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딸기처럼 붉은 산딸기 줄기를 물어본 어른은 없었다.)


꽃다지를 가져와 씨앗을 보며 "선생님 이건 왜 하트 모양이 아니에요?"

(냉이 열매는 하트 모양인데, 이건 꽃도 비슷한 게 왜 열매 모양이 다르냐는 거다.)


코딱지만 한 꽃마리 꽃을 가져와 "선생님 이 꽃은 왜 파란색이에요?"

(역시 작은 것들은 아이들이 더 잘 본다.)


민들레와 꽃다지를 꺾어와 "선생님 개나리요~"

(아이들에게는 ‘노란 꽃=개나리’라는 공식이라도 있나 보다.)


빗방울을 잔뜩 머금어 빵빵해진 먹구름을 폭 찌른 것처럼 아이들의 입에서 온갖 질문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온다.






"선생님 저기 거미요!"

"여기 새똥 있어요!"

"여기 거미줄 있어요!"


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지천에 깔린 꽃과 곤충과 똥에 아이들은 자꾸만 눈과 마음을 빼앗긴다. 오늘도 준비한 것들을 미처 다 꺼내보지도 못한 채 수업이 끝났다. 그때그때 아이들의 마음을 끄는 것을 함께 보고 만지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가방 속 교구와 준비물들은 빛을 보지 못하기 일쑤다.


수업이 끝나고 인사를 나누려는데 두 녀석이 다리에 매달리는 통에 계단에서 발을 헛디딜 뻔했다. 한 둘이 시작하니 꿀통을 찾은 꿀벌처럼 열 명이 넘는 애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몸에 달라붙는다. 장수말벌이 나타나면 꿀벌 수십 마리가 에워싸 열을 내서 장수말벌을 쪄 죽인다더니 말벌의 심경을 단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말리고, 내가 살려달라고 여러 번 외치고 나서야 요란한 인사가 끝났다. 아! 아이들은 어찌나 이렇게도 쉽게 마음을 열어 버리는가. 고작 한 시간쯤을 같이 보냈을 뿐인데 그 사이 진득하게 정을 붙이고야 만다. 그러고는 내일 여기서 또 만나잔다.


"그래. 내일 만나자. 내일 6시 반에 여기에서 만나는 거다? 근데 있잖아. 아침 6시 반이니까 너희들 일찍 일어나야 돼!"

우스갯소리를 던졌더니 진짜 나오겠다는 아이들이 반, 아침이라는 말에 대답 못하고 배시시 웃고만 있는 아이들이 반의반, 장난인 걸 알고는 "싫어요! 일찍 안 일어날 거예요!" 말하지만 얼굴 한가득 짓궂은 미소를 짓는 아이들이 반의반이다.


유치원 버스에 올라타서도 연신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버스 안에서 소리를 내지르면 안 되니까 동그랗고 말랑한 손가락으로 ‘6시 반’과 ‘여기’를 만들면서 열심히 말하는 아이들. "6시 반에 만나요!" 하고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맑고 귀여운 녀석들. 이런 아이들을 매일 같이 만나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나눌 수 있다니. 숲해설가 최고의 복지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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