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림 Aug 15. 2023

다채롭게 살고 싶다면 이 눈을 깨우세요

이 눈은 쓰면 쓸수록 더 좋아진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당연히 숲에 있는 것들도 그렇다. 우리의 얼굴과 머리 색, 키와 손발의 크기가 모두 다르듯 숲에도 같은 모양의 나뭇잎은 없다. 돌멩이, 나뭇가지, 꽃, 열매 모두 마찬가지다. 6살 아이들을 만나는 날, 나는 서로 다른 다양한 모양들이 숲 속에서 어우러져 산다는 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모양들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여러 도형을 손바닥 만한 카드로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푹!' 아이들이 둥그렇고 보드라운 손을 주머니 속에 넣고 모양 카드를 뽑는다. 뽑기는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놀이.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 넣은 아이의 입가에서 "푸흐흐" 하고 장난기 어린 웃음이 새어 나온다. 초승달처럼 한껏 휘어진 눈에는 '어떤 모양이 나올까?' 잔뜩 기대감이 서려 있다. ○ ♡ △*□ ☆. 다채로운 모양 카드를 뽑아 든 아이들이 숲을 돌아다니며 제 손에 들린 모양과 똑같은 것을 자연 속에서 찾는다.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이 이파리 저 이파리 살피고, 나무와 땅을 샅샅이 뒤진다.


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이나 ♡는 오히려 간단하지만, 자연에서 ○, △, □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이내 아이들은 난관에 봉착한다. 나는 함께 모양을 찾으면서 곁눈질로 슬쩍슬쩍 고민에 빠진 아이들을 살핀다. 대체로 아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하기 어렵다는 걸 알아채고 인정하면 선생님이나 보호자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지만 가끔, 그럼에도 어떻게든 스스로 해보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날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네모(□)가 그려진 모양 카드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너구리(자연이름)는 도저히 이 인위적인 모양과 똑같이 생긴 '무엇'을 자연 속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이거 맞아요?", "선생님, 모르겠어요.", "이거 없어요."

애초에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답을 찾던 아이들이 슬슬 지쳐서 내게 올 때쯤에도 네모를 든 너구리는 두리번거리다 앉았다 일어났다 하며 주어진 문제를 풀고자 애썼다.


"너구리야, 네모 찾았어?"

내가 다가가며 묻자 너구리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던 차에 자기 모양을 완성한 아이들이 같이 찾아보자며 다가왔다. 서너 명이 힘을 합쳐 찾아봐도 네모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아이들이 지쳐서 포기해 버리거나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기 전, 이제는 내가 나설 때다. 다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살짝 찔러주기!


"네모가 없으면, 여기 있는 것들로 우리가 네모 모양을 만들면 어떨까?"

먹구름처럼 고민이 잔뜩 끼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마른 고사리에 물을 준 듯 밝아지며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잔뜩 주워오더니 네모 모양 틀을 만들었다. 주워온 김에 세모도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모습이다. 우리는 사물을 윤곽으로 인식하고, 테두리를 그리며 선으로 형태를 만드는 것에 익숙하니까. 그때 한 아이가 작은 나뭇잎을 여러 장 따와서 한 줄로 세워 네모를 완성했다. '선'을 그려 형태를 만들지 않고 '면'을 채운 것이다. 끝이 뾰족한 나뭇잎을 듬성듬성 줄지어 세우면 테두리가 덩달아 뾰족해지니까 선에 가깝게 만들기 위해 나뭇잎끼리 겹쳐 세우는 디테일까지 챙기면서. 마치 졸업사진이나 결혼식 단체사진을 찍을 때, 사진작가가 "조금씩만 가까이 모여 서주세요." 하면 몸을 틀어 서로 겹쳐 서듯 말이다. 형태를 인지하고 나름의 묘수를 발휘해 모양을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아이의 능력에 놀랐다.


아이들은 또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동글동글한 잎 두 장을 겹쳐서 하트를 만들고, 뾰족한 잎의 윗부분만 찢어 내어 세모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모양 카드와 비슷한 형태를 온전히 갖춘 자연물을 찾아오더니 이내 찢고, 겹치고, 부러뜨리고, 합치면서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 냈다. 형태를 통으로 인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부분을 보는 눈이 생긴 거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 아이들은 부분을 이용해 전체를 구성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동안 아이들의 머릿속은 얼마나 반짝반짝 빛을 내며 바쁘게 돌아갈까. 창의성이라는 것이 이렇게 놀면서 저절로 길러진다. 역시 아이들은 몸을 움직여 놀어야 한다.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몸도 머리도 마음도 성큼 자라나 있을 테니.



숲을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는 경험이 쌓이면 숲을 보는 눈은 점점 더 밝아지고, 관찰력은 더욱 세심해진다. 나는 이걸 '숲의 눈'이라 부른다. 숲의 눈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잘 쓰지 않아 몸속 어딘가에 조용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숲을 자주 다니면서 숲 속에 있는 다양한 형태, 질감, 색깔을 가진 자연물에 익숙해지면, 숲의 눈은 점점 밝아진다. 실제로 한 달에 한번 숲에 오는 아이들과 한 주에 한번 오는 아이들의 숲 시력은 다르다. 매주 약속한 시간에 숲에 와서 한바탕 놀다 가는 아이들은 숲에서 온갖 재미있는 것들을 잘도 찾아낸다. 우리의 생물학적 눈은 쓸수록 퇴화하지만, 숲의 눈은 쓸수록 좋아지는 것이다.


숲의 눈을 깨우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감각도 계속 갈고닦고 사용해 주어야 발달하는 법이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봉숭아 열매와 같이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은 알 수 있을 거다. 이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한지. 그리고 그것들이 얼마나 자신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말이다.







이전 12화 어린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사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