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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l 15. 2021

새우깡 vs 맛동산

아버지와 함께 한어린 시절 추억

아버지는 궁금하면 꼭 직접 해봐야 했다.

나의 첫 기억으로 아버지의 취미는 낚시와 사냥이었다. 어린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낚싯대와 다양한 도구가 들어있는 낚시가방과 텐트, 코펠을 가지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낚시를 가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낚시는 늘 홀로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막역한 친구가 없었고 더군다나 쉽게 곁을 내주는 성격도 아니셨다. 올곧은 대나무... 그래서 아버지의 낚시 벗은 나가기 좋아하는 내 차지였다. 


아버지가 낚는 물고기들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피라미나 쏘가리, 붕어였는데 그런 민물고기를 집에 들여봤자 환영받지 못할게 뻔하니 집에 오기 전에 물에 놔주거나 주변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오셨다. 엄마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으로 아버지와 풍류를 함께 즐기는 분은 아니셨던 것 같다. 


우리가 즐겨 찾는 곳은 어느 자그마한 강가나 저수지였는데 엉덩이 하나만 간신히 걸칠 수 있는 의자에 앉아 낚시찌를 바라보며 움직이는 그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숨을 죽였다. 그러나 어린 내가 그걸 참아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분남짓? 그래서 책과 연필, 종이를 꼭 가져가서 그림을 그리거나 조용히 책을 읽었다. 아무 재미도 없는 낚시가 그 나이에 뭐 그리 즐거웠을까? 사실 내가 아버지와 동행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바로 새우깡이다.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는 새우깡이다. 변함없는 새우깡 사랑은 벌써 30년이 훌쩍 넘어 이어지고 있다. 낚시가방을 손보고 짐을 다 챙겨 아버지는 내게 넌지시 물어보신다.

"아빠랑 낚시 가자!"

하지만 간혹 내가 싫은 기색을 내비치려면 얼른 아버지는 "새우깡 사줄게!" 하시면서 나를 꼬셨다. 나는 새우깡의 그 짭조름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은 따라나섰는데 가게를 가면 아버지는 꼭 가판대 앞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맛동산을 고르셨다. 그리고는 한 번은 새우깡, 한 번은 맛동산을 먹자며 내게 협상을 하셨다. 


낚시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또 하나는 바로 새우탕 라면이다. 낚시를 시작하기 전 망을 물가에 비스듬히 담가놓고 돌로 눌러두면 새우가 잔뜩 잡히는데 그 새우를 대충 씻어 넣고 라면을 끓이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낚시를 하다 무료하거나 출출하다 싶으면 꼭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아버지와 이마를 맞대고 라면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시아버지와 아버지를 모시고 흙내 나는 새우탕을 먹으러 맛집을 찾고는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이들을 꼬시는 건 아버지께 물려받은 재능인가 보다. 내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를 참 잘 따르고 좋아하는데 하기 싫은 일도 큰 트러블 없이 잘 유도해서 결국은 해내게 한다. 


하지만 낚시가 언제나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갑자기 비가 내려 급히 짐을 챙겨 양손에 잔뜩 나눠 들고 숲을 헤쳐 나오는 가 하면 뙤약볕에 비지땀을 흘리며 긴 기다림을 참아내야 했다. 그럼에도 그 순간들이 추억으로 간직되어있는 건 분명 즐거웠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한 다양한 경험은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우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안다. 그리고 일과 취미를 균형 있게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에 아직 전문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삶의 만족도는 굉장히 크다.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기려고 노력하고 책도 꾸준히 읽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한 번은 시도해본다. 덕분에 하나에 완벽한 전문가는 되지 못하더라도 여행, 책, 공연, 전시회, 스포츠 두루두루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이런 취미는 아이들과 책을 읽거나 내가 글을 쓸 때 좋은 소재가 되어준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반드시 끝까지 한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새벽이면 산에 가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치고 수영장을 찾는다. 무엇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다. 사실 약속에 대한 강박증이 살짝 있을 정도이다. 몸이 아파도 무조건 밀어붙이다 보니 운동을 심하게 해서 무릎이 벌써 아프고 잠이 부족하는 자잘한 불편함이 있다.


더불어 추억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은 어느 정도 맞다. 아이들과 추억을 쌓는 시기는 언제나 있을 것 같지만 내 경우를 보면 그렇지 않았다. 어느 정도 커서 각자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힘든 순간이 있을 때마다 서랍 속에 간직한 추억을 하나씩 꺼내 위안을 받는다. 그게 다 떨어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내 삶을 만족하고 나의 가치관으로 이끌어나가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하신 건 분명 아버지다. 덕분에 하고 싶은 일들을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하면서 소신껏 열심히 살아왔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유쾌한 성격으로 호감을 사는 편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엄청난 스펙을 가지고 남들이 바라는 삶을 사는 것도 좋겠지만 돌아보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도 훌륭한 삶인 것 같다. 


아버지는 항상 정도의 길을 걸으시며 바르게 살 것을 강조하시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기분에 맞춰 자신만의 기준에 살아오셨다. 그래서인지 크게 스트레스 안 받고 낚시 외에도 건축설계, 분재, 자전거등 다양한 취미를 이어오시며 즐겁게 살고 계신다. 자꾸 부정하고 싶은지 아버지께 감사하다는 이야기 외 다른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추억 많이 쌓아가며 오래오래 사세요."  


취미 :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p.s. 사진은 Pixabay로부터 입수된 Miranda Bleijenberg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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