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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l 27. 2021

각본 없는 드라마
- 올림픽 애정 기간

2020 도쿄올림픽

연일 찌는 듯한 무더위를 날려줄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손에 땀을 쥐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

늘 듣는 고리타분한 수식어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 


과연 열릴 것인가 취소될 것인가? 걱정도 많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올림픽.

일본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열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개막식부터 열렬히 응원하는 구성원이 우리 집에 

짠! 하고 나타났다. 애국심이 끓어 넘치는 10대!

이렇게 십 대가 응원하고 나서니 옆에서 보지 않고서 배길 수가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십 대가 응원하고 나선다면?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축구, 양궁, 유도, 탁구, 수영 외 기타 다양한 종목을 관람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

내 주된 관심사는 오로지 수영이다.


고3 수능을 보고 나서 살을 빼겠다고 새벽 수영을 등록했다.

새벽 초급반답게 젊은 회사원들과 나 같은 예비 대학생이 많았는데 

나랑 얼마 차이나 보이지 않는 수영강사는 유독 나를 가지고 잘 놀렸다.

팔을 돌리지 말고 어깨를 돌려야지!

호흡할 때 머리 들지 말고!

힘차게 더 힘차게 발차기하라고!

물을 타야지 왜 물을 거슬러~

누가 모르나?

말은 쉽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어쩌라고!!!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고 방법은 오직 하나, 열심히 연습해서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그리고 새벽 6시 수업이 끝나면 10시까지 연습에 매달렸다.

세상에 내가 수영 선수될 것도 아닌데 뭐 때문에 이렇게 연습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연습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결과 앞에서 시범을 보일만큼 실력이 늘었다. 

덕분에 몸도 가벼워지고 자신감도 붙었다. 

사실 내가 기가 죽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나와 나이가 같았던 예쁜 여학생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늘씬하고 얼굴도 예뻤다. 그 반에 있는 새내기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도 그 친구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린 금세 친구가 되었고 함께 죽어라 연습을 했다. 덕분에 미모에 기죽지 않을 만큼 실력이 붙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이후로 나는 십 년 가까이 새벽 수영을 다녔다. 다른 지역으로 취업을 하면서 가까운 곳에 수영장이 없어서 그만두었지만 출산 후 다행히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운동이 되었다. 결혼 후 남편을 새벽 수영장에 강제 등록해서 부부 수영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도 모두 수영을 배워서 온 가족이 주말이면 수영장에서 함께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수영이다 보니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거나 장비를 구입해서 따로 연습도 해보고 작은 대회에 나가기도 했었다. 나도 제법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세계에서 노는 선수들이 모인 올림픽대회를 보면 정말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수영을 할 수 있을까? 물에서 날아다닌 다는 표현이 딱 맞는 선수들을 보면 황홀함까지 든다.


특히나 이번에 등장한 천재소년 황선우 선수를 보며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놀라운 스피드와 패기로 예선전에서 이미 메달권 진입을 예상했다. 물살을 가르며 펄쩍펄쩍 날아오르는 모습은 신기루에 가까웠다. 몸이 어쩜 저렇게 가벼울 수가 있을까? 곧게 손을 뻗어 힘차게 나가는 모습은 가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1분 44초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150m까지 주변에 아무도 없어 본인도 이거 진짜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데 나도 숨을 죽이며 지켜보았다. 

9년 만에 진출. 결승전에 진출한 유일한 동양인. 

아쉽게도 50m에서 체력 저하로 7위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가 보여준 기량은 앞으로 수영에서 애국가가 한 번은 울리겠다는 희망을 갖도록 해줬다.


예선전에서 너무 잘해서일까? 메달 획득에 실패한 후 대부분의 기사에서는 결과만이 집중 보도되었다. 하지만 댓글만큼은 그를 향한 진심 어린 응원이 끝없이 이어졌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 잘했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선수이다. 무엇보다 수영이 너무 재미있고 그냥 수영하는 게 즐겁다는 그의 인터뷰에 웃음이 나온다. 부담이 전혀 안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재밌어서 한다는 그의 말에 큰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번 올림픽은 무엇보다 목숨을 걸고 출전한 경기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더 나은 날들을 기다렸지만 하루하루 더 심각해져만 가는 코로나로 연일 불안한 날이 계속되고 있다. 1년 전의 오늘을 기대하기보다 조금은 괜찮았던 2단계를 생각하고 여기서 더 이상 격상되지 않기를 바라며 일상을 이어간다. 그래서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더욱 고맙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평범한 나로서는 가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 긴 시간을 버텨온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제발 부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금메달보다 더 간절히 바란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하고 이상적인 올림픽 애정 기간이다.


p.s Pixabay로부터 입수된 Wokandapix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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