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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Aug 11. 2021

피카소그리고...

파리 여행기

때는 바야흐로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독 혼자 여행하길 좋아했던 나는 일찌감치 유럽 배낭여행을 꿈꿔왔다. 취업과 동시에 여행자금을 따로 모았고 그렇게 5년을 모아 드디어 원하는 배낭여행의 기회를 잡았다. 이직을 하는 찰나 벼르고 벼르던 파리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동안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는지 모른다. 두 권의 배낭여행 책과 씨름했고 두 달 일정의 계획표는 이미 꼼꼼히 체크했으며 지역마다 드문드문 숙소도 미리 예약했다. 다행히 그즈음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한국의 젊은 여인들은 홀로 배낭을 메고 유럽의 곳곳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여행기를 블로그나 카페에 공유하고 있었고 나도 먼저 떠난 그들이 남긴 정보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원하던 여행길이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컸다. 영어가 술술 잘되는 것도 아니고 믿는 구석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아주 발달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믿는 건 나 자신뿐. 도시 곳곳에 내가 가야 할 숙소의 지도를 보고 또 보고 얼마나 여러 번 봤는지 모른다. 다행히 나는 늘 아버지 옆자리에서 지도를 봐드려서 지도 보는 건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파리 IN 런던 OUT 

내가 밟을 첫 도시는 파리.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잊지 못할 추억은 피카소였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중학교 때부터 미술관 가기를 좋아했다. 길을 가다가도 전시회 푯말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파리에서 머물 수 있는 2주 동안 가난한 여행객의 가장 큰 사치는 어디서나 들를 수 있는 미술관이었다. 어쩌면 미술관 가려고 파리를 선택한지도 모르겠다. 가난한 여행객의 점심은 늘 요구르트와 비스킷. 피카소를 찾아간 작은 동네에는 그곳에 어울리는 공원이 하나 있었다. 마침 시간도 늦어서 간단히 요기를 할 생각으로 벤치에 앉아 비스킷을 꺼냈다.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먹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그날 나의 점심은 한국에서 가져간 ACE. 아마도 비상식량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것도 반 밖에 남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늘 들고 다니던 노트와 비스킷을 먹으며 한낮의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데 어느 중년의 외국인이 내 옆에 거리를 두고 앉았다. 벤치가 그것뿐이었을까?


낯선 사람이잖아. 거리를 둬야지. 했으나 이런 오지랖 퍼. 파리에 갔어도 그 오지랖은 어찌할 수가 없다. 난 눈인사를 건네고 혹시 생각 있니? 하고 물으며 비스킷을 권했다. 그렇게 낯선 인연이 시작되었다. 서로의 경계를 풀고 우린 짤막한 영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스라엘에서 파리에 아들을 만나러 온 그는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단지 기억나는 건 그날의 따스한 온도와 공기 그리고 낯설지만 마음이 쓰이는 연민정도... 


그는 눈에 띄게 잘 생기지도 무척 지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단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국민으로서 중년까지 살아간 그의 아픔과 삶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젊은 나에게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작은 충고 정도였다. 그의 목적지도 피카소였다. 우린 미술관이 닫기 전에 서둘러 일어나 함께 피카소의 작품을 감상했다. 얼마나 오래 이야기를 나눈 걸까? 분명 오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작품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보려고 애를 썼다. 가끔 그가 전해주는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전문용어로 사실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공감은 나누지 않았나 싶다. 미술관을 나와서도 아담한 카페에서 차를 마셨으니까. 그는 무엇을 마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핫쵸코를 주문했다. 커피도 아닌 핫초코. 해가 어둑어둑 질 무렵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눴고 아들과 저녁 약속이 있는 그와 헤어져야 했다.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어 우린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그의 흔적은 아직도 그 여행노트에 남아있다.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 세 권의 제목과 그의 이메일 주소. 물론 돌아와서 그에게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 어떤 이야기도 그때 그 벤치에 앉아서 나눴던 그 감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지닌 아픔을 나누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내가 누릴 많은 자유와 즐거움은 그런 자비를 베풀 만큼의 여유를 주지 않았다.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그와 헤어지고 나는 그 미술관을 세 번이나 다시 찾았지만 그 날 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곳곳에서 그와 나눈 이야기가 생각났고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는지도 기억났다. 만약 우리가 그날 이후 파리에서 다시 만났다면... 


잠시 잊고 있었다. 


곧 특별전이 끝난다고 한다.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만나는 피카소는 어떤 느낌일까? 여행에서 대부분의 장소가 장소로 기억나지 않고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응당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조명 아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그 작품들이 우리들의 언어로 들려줄 수만 있다면 나도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 그리고 또 다른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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