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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Sep 08. 2021

넘고 싶은 벽이 있습니다

영어에 대한 욕망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다. 가슴속에 묻어둔지 족히 20년은 됐다. 짝사랑보다 더한 외사랑으로 애태우며 가슴앓이 해왔다. 내가 넘기 제일 힘든 벽은 바로 환경이다. 꾸준히 자극받을 수 있는 환경. 혼자 유학을 갈 수도 없고 이민을 갈 수도 없으니 환경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얼마나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처음부터 반했다. 화면에서 만난 첫 영어는 내 귀를 간지럽혔다. 소리하나하나가 모두 매력적이었다. 더군다나 이국적인 자연환경과 생활모습은 더욱 간절함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시작이 잘못됐다. 가만히 앉아 문제집만 파고들었다. 어떻게든 높은 점수가 중요했다. 내 입에서는 결국 한 마디도 나오지 못했다. 읽을 수는 있었다. 무슨 의미인지 간신히 이해는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입에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영어로 말할 기회가 왔다. 아주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했지만 깊은 대화는 쉽지 않았다.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기만 했다. 


새벽에는 운동을 하고 출근했다가 저녁에는 회화반에 다녔다. 쉬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말고는 영어를 쓸 일이 없었다. 대학 4년 동안 외국인 교수를 졸졸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고 외국인 친구를 일부러 만들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영어에 기울인 내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항상 외국인과 함께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내가 하는 일이 꼭 영어를 잘해야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냥 적당히 발만 걸쳐놓은 것일까? 어떻게든 끝까지 매달렸어야 했나 보다. 그런데 그 미련이 아직도 남아있다. 유창하지는 않더라도 책 한 권 읽고 내가 생각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정도는 되고 싶었다. 결국 밑도 끝도 없이 영어 원서 토론모임에 가입했다. 8권의 책이 주어지고 일주일에 한 번 감상 토론을 하는 모임이었다. 모임을 이끄는 리더는 평소 내가 꿈꾸던 사람이었다. 글을 잘 쓰고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지녔으며 영어를 잘하는 사람. 첫 모임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초조했다. 일단 책을 다 읽었지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영어로 몇 마디 자기소개서를 적어보고 예상 질문을 뽑았다. 그런데 답을 적을 수가 없었다. 손에 땀이 났다. 현실 속의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120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은유 작가가 물었다. 

나는 왜 외국어 습득에 도달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나는 왜 꼭 필요치도 않은 외국어를 하려고 했을까


내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나는 왜 외국어 습득에 도달하지 못했을까가 아니라
왜 꼭 필요치도 않은 외국어에 목을 맬까


나를 꾸밀 또 다른 지적 장식물


씁쓸했다. 창피했다. 솔직하게 나를 보고 나니 더욱 쓰라렸다. 책이 이해가 가지 않아요. 질문도 그리고 패널들의 이야기도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밖에 쓰지 못하는 내가 참 한심해 보였다. 괜찮습니다. 그 마음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책을 읽는 여정이 결코 괴로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이 난다. 


약해지는 내 마음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에는 언어니까. 조금 더 힘을 내보자. 조금씩 걷다 보면 문이 보이겠지. 어느 순간 환해지며 입이 떨어지는 그 순간을 그 환희를 만끽해 볼 그날을 위해. 일단 해보자.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난관에 봉착하면 욕망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고 싶은 일이면 문제를 해결할 궁리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문제를 핑계 삼아 그만둘 명분을 만든다. - 은유 쓰기의 말들


나는 아직 그만둘 명분을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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