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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Sep 07. 2021

내 안에 信義가 쌓인다

자녀와 나의 관계

When I'm trusting and being myself... everything in my life reflects this by falling into place easilyoften miraculously 

내가 나를 신뢰하고 나 자신이 될 때, 내 삶 속의 모든 것에서 그것이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이 종종 기적처럼 편안하게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삭티 거웨인)



신혼기간 동안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바로 잔소리였다. 자라면서 잔소리를 거의 들어보지 못해 이해하기 힘들었고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환경 탓이다. 남편의 그런 성향은 주변 환경에서 절로 습이 되어버린 것.


아이들에게 좀처럼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공부해라. 청소해라. 정리해라. 씻어라.

때가 되면 하겠지, 스스로 깨달을 것이라고 믿었다. 경험상 잔소리로 인한 장점은 크게 많지 않았다.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얄팍한 꼼수만 더 늘어갔다. 덕분에 아이들과의 관계는 무척 원만하다. 크게 싸울 일이 없었고 탓할 일도 없었다. 


방학이 끝나고 한동안 학교에 가지 못하다가 드디어 등교일이 되었다. 분주해진 아이들을 보며 살짝 걱정이 되었다. 

"엄마, 숙제 내일 학교 다녀와서 해도 될까?"

둘째가 숙제가 밀린 것이다. 평소 언니와 달리 자신의 일을 꼼꼼히 챙기지 못하더니 결국 왕창 밀린 문제집을 내밀었다. 그럼에도 말간 둘째 얼굴을 바라보다 안 되겠다 싶어 못을 박았다.

"아니, 다 하고 자." 

시계는 벌써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안 그래도 잠이 많은 녀석이 아침에 일어나려면 꽤나 힘들겠거니 싶었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더니 책상 앞에서 소리 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뒤면 진짜 10살이 되는 어린아이의 작은 울음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조용히 기다렸다. 

넌 할 수 있어. 조금만 울고 다시 집중하렴.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꼭 묻는 질문이 하나 있다. 여기 내가 원해서 온 친구 손! 그럼 망설임 없이 번쩍 손을 드는 친구가 꼭 하나, 둘 있다. 어찌나 대견한지 마음속에서 무한 칭찬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그다음 내가 꼭 잊지 않는 건 바로 남은 친구들의 마음 알아주기이다. 

"엄마가 가라고 해서 왔어요!"

잔뜩 짜증이 섞인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당연하다. 한참 놀고 싶은 초등학교 2~3학년 친구들이 어떻게 자진해서 공부 자리에 오겠는가? 그 친구들에게 의미심장하게 약속을 한다.

"선생님은 우리 친구들에게 영어로 질문을 한다거나 시킨다거나 영어를 가르치지 않아요. 그냥 선생님하고 열심히 한 시간 동안 놀다 가면 되는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좀 기다려봐. 내가 너의 마음을 안단다. 이렇게 약속을 하지만 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약속은 깨지고 만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아이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고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50분은 훌쩍 지나간다. 50분을 앉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준 친구들을 진심으로 칭찬한다. 열심히 수업에 참여해준 너희들 덕분에 이 시간이 정말 즐거웠노라고. 이 수업의 주인공은 바로 너희들이라고. 나는 너무나 즐거웠다고. 


그 순간 아이들은 자신이 뭔가 큰 일을 한 듯한 성취감에 젖어 으쓱해지고 나는 순수하게 내가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와 준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우리 서로 윈윈한것이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반짝인다. 



자식은 부모가 딱 믿는 만큼 자란다.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나를 믿고 있다는 신호만큼 강력한 초록불은 없다. 책상 앞에 울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숙제를 끝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성취감. 나도 할 수 있구나. 다음에는 절대 밀리지 말아야지. 


서로의 믿음을 깨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친구에게 느끼는 가장 큰 상처도 바로 배신감이다. 엄마가 나를 믿고 있어. 마음속에 믿음의 나무가 쑥쑥 자라면서 아이들도 함께 커간다. 행여 가끔 나무가 조금 마르더라도 다시 믿음의 양분을 채워주고 사랑을 쏟아 초록의 잎이 무성한 아름드리나무로 키우면 된다. 그 나무는 잠시 내가 방황을 하더라도 나를 다시 올곧은 길로 이끌어줄 이정표가 될 것이다. 


아침이 밝아온다. 

지난밤 밀린 숙제를 모두 끝내고 잠에 든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다. 어떤 칭찬의 말로 믿음의 나무를 키워줄까? 졸음을 쫓아가며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멋지게 이긴 아이를 칭찬할 근사한 단어를 고른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FelixMittermeier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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