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사회약자에 관하여
특별한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출입증을 제시하고 문을 통과하면 숲길을 지나 비밀통로를 지나면 바로 내가 앞으로 일할 사무실이 나온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숲이 요새처럼 둘러싸고 옹기종기 건물이 모여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는 건물이 정원을 가운데 두고 빙둘러싸여있고 지하에는 수영장과 다목적실도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탁구장도! 우와 진짜 이런 곳에서 앞으로 일할 수 있다니 정말 너무 신났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 직원이 3명, 여자는 나 혼자였다. 모두들 나보다 훨씬 연장자였고 인상도 좋아 보였다. 다른 부서에 내 또래 여직원들과는 금세 친해질 자신도 있었다. 업무도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다만 8시 출근이라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했는데 그 또한 나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거쳐 다시 도전한 새 직장은 나름 정말 맘에 들었다. 순탄한 나날들이었다.
직장 안에 위치한 사내식당 밥은 여느 레스토랑보다 맛있었다. 음식이 어쩜 이렇게 잘 나오는지 정말 꿀맛이었다. 게다가 가끔 아침식사도 할 수 있고 토요일 오전에는 새벽산을 타고 내려와 밥도 먹고 남은 시간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아주 이상한 관행이 있었다. 바로 계열사 막내 여직원이 한 달 식비를 직원별로 거뒀는데 이건 꼭 통장으로 입금받아야 했고 절대 현금으로 받아서는 안됐다. 그 임무의 담당자가 나였고 이상하게 기일을 맞추지 않는 직원들이 많아 번번이 내 돈으로 넣고 추후 돈을 받고는 했다. 처음에는 정말 몰랐다. 그 일이 이렇게까지 내 발목을 잡을 줄이야...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생각을 나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런 사람과 책을 읽고 왜 그랬을지, 나라면 어땠을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살고 싶었으나 내 바람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생겼고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멋진 내 짝이 되어주고 있다. 작년부터 벼르고 별렀던 '같은 책 다른 꿈'이라는 도서관 독서토론 수업에 아이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매 차시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도서관에서는 서로 다른 4팀과 선생님의 이끎대로 자유롭게 사고를 넓혀나가는 일이 정말 멋졌다. 큰 아이는 큰 아이대로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대로.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그리고, 발표하고, 써 내려가는 걸 보니 자랑스럽고 뿌듯하기도 했다. 이번에 받은 책은 평소 좋아하는 윌리엄 스타이그의 책이라 더 기대가 되었다. 책을 펼쳐서 읽기 전까지는... 아뿔싸 이 책이 그 이야기란 말인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것인가?
눈부신 핑크색으로 옷을 바꿔 입은 책은 제목마저 잊힌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표지에 근엄하고 멋진 옷을 입은 거위는 가윈이다. 원래 꿈은 건축가였으나 배질 왕의 신임을 돈독히 얻어 그의 보물창고를 지키는 수문장이 되어 아주 착실하게 일하고 있었다. 옆구리에 차고 있는 열쇠의 숫자만 봐도 그 보물창고에 얼마나 많은 보물이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그렇게 아끼던 보석 몇 개가 사라지고 만다. 보물창고의 열쇠는 가윈과 배질 왕만 가지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결코 왕일리는 없으니 범인은 가윈인데... 그러나 가윈은 결백했다. 평소 돈보다 명예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가윈이 친구들과 왕 주변 동료들에게 의심을 사자 가윈은 고통스럽기만 한데......
과연 범인은 누구였을까?
진짜 도둑도 처벌받은 사람도 없다.
작가는 끝까지 어느 누구도 처벌하지 않는다. 게다가 가윈은 명예를 되찾고 온 마을 사람들은 다시 평화로워졌다는데 진짜일까? 어찌하여 가윈은 자신이 쓴 억울한 누명의 대가를 바라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좋은 게 좋다고 의례 관행상 그래 왔다고 다음 달에 두 달치를 한꺼번에 내겠다며 그렇게 자기들 편한 데로 했다. 정말 본인들보다 훨씬 적은 월급을 받고 제일 약한 여직원에게.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싫다는 내색도 못하고 하루에도 여러 번 은행을 오가며 식대를 맞춰서 넣고 관리했는데 그런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회사에 감사가 나왔고 난 그때까지도 난 잘못이 없고 그동안 일처리를 잘해왔으니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인사에 좋은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감사실에 들어가 생전 처음 보는 늑대 같은 상사와 마주 앉아 서류를 들춰대며 취조를 당했다.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이야기했고 그게 잘못될 거라는 생각은 정말 0.000000001도 하지 않았는데 결과는 참 비참했다.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상황은 내 잘못으로 돌아갔고 이유도 (지금까지도 이유를 모른다.) 모른 채 흰 종이에 서명을 했다. 뒷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놓고 싶지 않다.
정말 나빼고 모두들 편안했을까? 정작 나는 뭐였을까?
몰랐다.
그때 그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는 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글을 쓰는 동안 학부모님들은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예쁘게 적어주세요~"
어떤 이야기를 적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내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을 적었다.
세상에 나를 맡기면 세상은 나를 닳아 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자기다움이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일을 통해 나를 스스로 깎는다면
나는 닳지 않고 조각될 수 있다.
- 권 민의 자기다움
지난번 모 강의에서 함께 나눈 글이었다.
그래 참 억울했지. 그리고 난 더 이상 어떤 조직에 함께 있는 걸 외면했고 나 스스로 홀로 설 수 있기 위해 매일 노력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사회에 나갔을 때 쉽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금 똑바로 일어서서 내 안의 자기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꺼내볼 수 있는 그런 단단한 아이로 난 그렇게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