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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Sep 06. 2023

빨래널기에서 관계를 엿보다

마을 봉사단체 탐방이야기

일이 많아지면서 가족구성원에게 자주 부탁하는 집안일은 빨래 널기와 접기다. 일단 세탁기를 돌리고 집을 나서면서 빨래 널기를 부탁한다. 이는 빨래 널기와 걷기, 접기를 동시 부탁하는 언어다. 빨래를 널려면 건조대에 빨래를 걷어야하니 누군가는 빨래를 걷어야하고 다른 누군가는 빨래를 널거나 접어야한다. 물론 걷거나 접기도 가능하다. 이중 가장 번거로운 일이 빨래를 너는 일인지 좀처럼 빨래 너는 사람은 두 가지를 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약속도 있다.    

  

빨래를 널어놓은 형태만 봐도 누가 널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양말은 짝을 맞추고 셔츠나 티셔츠의 형태를 잘 잡아 옷걸이에 걸고 바지도 잘 펴서 균형 있게 바지걸이에 걸어 널었다면 이건 영락없는 1호의 솜씨다. 여기서 살짝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종류별로 걸지 않았다면 2호의 작품일 것이다. 그런데 양말과 속옷을 그냥 툭 걸쳐놓고, 바지의 양쪽 주름을 맞추지 않은채 어느 것은 한쪽만 다른 것은 둘 다 바지걸이 집게에 거는가 하면 티셔츠는 양쪽 어깨가 기우뚱하게 한쪽으로 쳐져 널어있다면 이건 남편의 독창적인 전시가 되겠다. 

     

1호가 처음부터 빨래를 잘 널었던 것은 아니다. 잔뜩 엉킨 빨래를 바구니에 담아 마루에 쏟아놓고 하나씩 분류해 접는다. 일단 옷걸이가 필요한 것부터 접어 바구니에 담고 그 다음은 수건을 잘 정리해서 아래 빨래에 살짝 무게가 실리도록 쌓는다. 다음은 속옷과 양말을 대충 접어놓으면 1차 분류가 끝난다. 이때 양말은 짝을 맞춰 널면 접을 때 훨씬 수월하다. 짝이 맞지 않는 양말은 다시 세탁기로! 양말이 운명의 짝을 다시 찾을 때 비로소 햇빛을 마주할 기회가 찾아온다. 이렇게 정리된 빨래는 널면서 힘 있게 털지 않아도 주름이 펴지게 되어있다. 대신 시간이 없어 접지 못한다면 널 때 있는 힘껏 강하게 털어주면 된다.  

    

그게 뭐라고 빨래하나 너는 과정도 쉽지 않다. 옆에서 소꿉놀이며 책을 보며 어깨너머로 익혔을 1호는 빨래 널기를 부탁했을 때 자연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이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어쩌다 빨래를 걷을 때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본다면(가령 양말의 짝이 맞지 않거나 삐뚤어진 티셔츠) 어김없이 날카로운 한 마디를 던진다. 

 “누가 빨래를 이렇게 널었어?”     



봉사회원 몇몇이 마을 사업으로 자리 잡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단체를 만나러 다녀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자녀로 둔 엄마들이 모여 마을에 놀이터와 공유공간을 만들어 어엿한 시민단체로 벌써 15년째 활동하고 있단다. 우리와 비슷한 취지로 시작한 이 모임이 궁금했다. 약속시간보다 2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주변을 둘러보고 공유공간 마실 근처까지 가보니 장구소리가 새어나왔다. 지하에 위치한 마실은 제법 규모가 컸다. 지하라서 퀴퀴한 냄새가 낫지만 이중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다. 30대쯤으로 보이는 두 분과 제법 나이가 있을 법한 중년의 여인 셋이 신나게 장구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나무테이블과 플라스틱 탁자에 나눠앉았다.      


자신을 전 대표라고 소개한 분은 역시 맨얼굴에 가벼운 개량한복 바지와 티셔츠를 툭 걸쳐 입은 분이셨다. 활달한 목소리에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몸에 배어있는 대표님은 그냥 인사만 나눴을 뿐인데도 금세 호감이 갔다. 아이들이 두리번거리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자 얼른 감색 실을 한 뭉치 들고 오셨다.


“얘들아 혼자 하는 실뜨기 알려줄까?”

“실뜨기를 혼자 할 수 있어요?”


엄마들은 자리에 앉은 채로 아이들은 엉성하게 선채로 실뜨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적당한 길이의 실뜨기는 아이들이 어깨넓이 정도로 팔을 벌려 무언가를 만들기 좋았다. 실은 순식간에 별, 비, 열기구, 가위, 딱총이 되었다. 아이들은 절대 한 눈을 팔수가 없었다. 어느 한 순간 놓치면 자신만 한 부분에서 멈춰있어야하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실뜨기에 온 힘을 모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한곳에서 전래놀이를 하고 대표님은 시민단체의 첫걸음을 하나둘 풀어놓으셨다.    

  

어느 부분은 우리와 상황이 비슷하기도 하고 어느 대목에서는 예상 밖의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아이들과 놀 공간이 없어서 놀이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았던 이야기부터 젊은 엄마들이 몰려다닌다며 동네 어른들한테 욕먹고 다닌 이야기, 밤새 독서모임으로 토론에 회의를 이어갔던 열정까지. 그녀들의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살아있는 모험담이었다. 이제 어엿한 공유공간에서 이 지역을 대표하는 성공한 시민단체로 우뚝 선 그 시간과 그 노력이 아름답기를 넘어서 고귀해보이기까지 했다. 주변의 성공보다 나의 출세와 부를 쫓는 이 시대에 숨겨진 마실 이야기는 우리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만들기 충분했다.


“얼씨구”

“좋다”


아이들의 함성 소리가 귀를 때렸다. 이보다 더 좋은 감탄사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하나둘 모이면 모이기가 무섭게 이마를 맞대고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고작 윷돌 몇 개와 카드 몇 장으로 두 시간을 정말 신나게 놀았다. 놀라운 힘이었다.      


15년을 이어 온 마실의 단계도 빨래널기와 비슷했다. 먼저 널어놓은 빨래들을 가지런히 걷어 곱게 접은 다음 제자리를 찾는 것처럼 기존의 단체들을 찾아가서 인사를 나누고 공동체의 목표를 한 대 모아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준다. 어느 하나 섭섭하지 않게 예쁘게 펴주고 옷걸이에 균형 잡게 걸어 볕이 잘 통하게 만드는 건 우리에게 필요한 의제를 발굴하고 제대로 파악한 후에 시에서 공모한 사업 중에 적당한 걸 찾아 햇볕 한 줌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작업이다.      


우리는 어느 단계에 있을까? 빨래를 해서 널었을까? 아니면 빨래를 하는 과정일까?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관계에 있었다. 내가 빨래를 널어달라고 했을 때 마음 상하지 않고 선뜻 역할 분담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관계. 마을 행사에 있어 역할이 주어질 때 그리고 다른 기관이나 단체에 손을 빌릴 때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해 줄 수 있는 관계 만들기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관계는 맺는 과정도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것도 전략이 필요한 것 같다. 사람 사는 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다.      


새롭게 시작한 빨래가 있다. 이제 세탁기에 넣어 묵은 때를 열심히 지우고 있는 중이다. 곧 있으면 빨래가 끝난다. 추석맞이 송편행사를 경로당 어르신과 함께 하기로 했다. 올해 어쩌면 가장 따뜻한 행사가 될 것 같다. 빨래가 끝나면 역할 분담을 잘 해서 볕을 쬐어 좋은 결과로 모두에게 훈훈한 명절이 되었으면 한다. 이 또한 관계의 또 다른 성과가 되겠지.      


사람 사는 게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는 건 어쩌면 쉽게 이루어진 관계는 금방 깨지기 마련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건조대에 가득한 빨래를 걷고 접으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번 빨래는 내가 널어서 그런지 내 맘에 쏘옥 들었다. 짝이 맞춰지지 않은 것도 구겨진 것도 없었다. 어느 과정하나 놓치지 않았구나. 햇살에 잘 말라 빳빳한 빨래가 마음까지 개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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