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살 우리 동네 이야기
학교 지킴이 실에 어른은 인상이 무척 좋다. 아이들을 향한 미소는 훈훈하고 따스했으며 낯선 이를 향한 시선은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작은 체구에 등을 곧게 펴지 못하는 김 반장님은 유독 눈에 띄었다. 낯선 모습에 아이들이 외면했을 법도 한데 지킴이 선생님 중 제일가는 인기쟁이였다.
추석이라고 해도 반달을 닮은 송편을 만들지 않은 지는 꽤 되었다. 아이들 어렸을 때는 유치원에서 송편을 만든다고 해서 그즈음 솔잎도 따다 주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고 작은 송편은 한입에 넣기 아까워 야금야금 아껴먹었다. 집에서는 먹지 않아도 본인 손으로 직접 만들어 온 송편은 맛있다며 끝까지 먹었다.
유난히 손이 큰 어머니는 반죽도 많이 준비하셨다. 동부 콩에 깨까지 속 재료를 군데군데 나눠주시며 상 앞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송편을 빚었다. 우리 집은 남자들이 송편을 참 잘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아버지 솜씨가 일품이다. 한입에 쏙 넣기 좋은데다 배가 불쑥 나오지도 않아 입안 가득 부담스럽지도 않다. 게다가 적당히 손반죽으로 치대서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마지막 이음새는 새색시 한복 저고리 밑단처럼 가지런하고 고왔다.
빨리 만들어 치워버리고 싶은 맘에 내가 만든 송편은 아버지가 만든 송편의 두 배만 했다. 욕심껏 채워놓은 속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고 콩을 싫어하는 아이들 눈속임한다고 겉에 살짝 깨를 묻히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송편을 만든 기억이 있을까? 경로당 어른들과 무슨 행사를 함께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마침 추석이 다가와 송편 만들기 행사를 계획했다. 경로당 회장님을 뵙고 의논드리러 갔더니 나를 맞이해주신 건 김 반장님이셨다. 함박웃음을 짓고 한달음에 나오신 회장님은 앉으라고 하시더니 손수 커피를 타주셨다. 경로당에서 막내라며 수줍게 웃으시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하지만 어찌나 마르셨는지 휘적휘적 걸으시다 쓰러지시면 어쩌나 걱정되었다. 뭐든지 도와주겠다며 총무님과 부회장님을 호출하셨다.
회장님은 뭐든 가능한 분이셨다. 작은 몸으로 어디든 다니셨다. 주민센터와 협업해 각종 행사에 참여하셨고 매주 두 번씩 경로당 어른들의 식사를 준비하셨다. 물론 혼자 하시는 건 아니지만 모든 분이 회장님 말씀이라면 뭐든 좋았다.
마을 장터가 열린 후 오랜만에 분주해졌다. 일손을 모으고 떡집에 주문을 넣고 아이들을 부르고 내가 할 일을 하다 보니 벌써 행사 날이었다. 빈속에 먼저 밥부터 든든히 먹자며 엄마들이랑 상추쌈에 고기를 푸짐하게 먹었다. 이제 우리도 어른이지만 어른을 만나는 건 늘 어렵다. 부모뻘 되는 분들을 만나러 가면서 혹여 폐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아파트 경로당은 총 두 곳이다. 제법 크게 지어져 방이 세 개에 주방, 화장실까지 모두 갖춰졌다. 여름이면 시원하고 겨울이면 따뜻했다. 어른도 많지 않으니 하나로 모아 도서관을 하나 만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불쑥 솟았다.
아이들이 온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대하셨는지 과자와 음료를 잔뜩 준비해두셨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만 모이는 곳에 아이 손님이라…. 하지만 이날만은 아이들이 대장이었다. 작은 손으로 잘 만든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마스크까지 준비하셔서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야 했다. 경로당이 아이들과 어른들 웃음소리로 가득하였다. 처음 송편을 만들어봤다는 아이들은 무척 즐거워했다.
쟁반 가득 하얀 반달 모양의 송편이 채워지기 무섭게 한쪽에서는 열심히 찌고 또 한쪽에서는 다 쪄진 송편을 고소한 참기름에 골고루 섞어내셨다. 유난히 고소한 냄새에 참기름 냄새가 너무 좋다 여쭈었더니 일부러 어제 방앗간에서 사 오셨다고 하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았다. 칭찬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떠나기 아쉬워했고 엄마들은 서둘러 학원을 보낸다며 하나둘 자리를 떴다. 제일 처음 와서 만들었다는 아이는 칭찬해주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한분 한분 꼬옥 안아드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가서 안기고 안는 그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할 이야기가 많은 어른은 자리를 뜨지 않으셨다. 한 손에 송편 하나씩을 들고 마주 보며 수다를 떨었다.
언제부터인지 학교 운동장 주인은 어른이었다. 아이들이 공을 차면 위험하다고 소리치고 자전거를 타면 부딪혀서 넘어질까 봐 무섭다고 하셨다. 운동한다고 트랙을 돌거나 맨발 걷기를 하시는 분들 때문에 마음껏 뛰어놀 수가 없었다. 가끔 어른들과 부딪히면 어찌나 성을 내시는지 옆에서 보는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사실 엄마들은 어른들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에게 서운했다.
코로나 때도 주변에 다른 학교는 운동장을 폐쇄했지만, 우리 학교만은 공개해서 집안에서만 지내며 답답한 주민들에게 하늘을 보고 땅을 밟을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오늘 함께 송편을 만들며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던 건 서로 왕래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이곳에서 터줏대감으로 살고 계시는 어른들이 많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하지만, 마을 어른들과 무엇을 같이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도, 나도 핵가족으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니 가까이 계시는 어른들이라도 찾아뵈면 좋으련만 사실 쉽지 않았다. 처음이 어렵다 그랬나? 처음의 어색함은 어디 가고 우린 모두가 즐거웠다.
학원가는 아이들은 먼저 가고 다른 친구들은 노래방까지 틀어놓고 백 세 인생을 부르며 춤추고 노래하고 한참을 놀다가 갔다. 그 모습을 직접 동영상으로 촬영해 보내주셨는데 영상 속 어른들은 정말 즐거워하셨다. 왜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우리 회장님은 정말 봉사 정신 하나로 똘똘 뭉치신 분이여.”
“우리덜을 위해서라믄 못 해주는 게 읎어.”
“암만암만 정말 회장님이라니께.”
사투리를 섞인 회장님 칭찬을 듣다 보니 어느덧 행사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회장님은 직접 송편을 싸주시며 함께 하지 못한 엄마들 맛이라도 보여주라 하셨다. 처음부터 송편이든 반죽이든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싸가라고 하시더니 절대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셨다.
이른 새벽, 아직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 멀리서 휘적휘적 걸어오시는 회장님이 보였다. 날이 매우 찬데 어딜 가시려는지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하기사 회장님은 언제나 가볍다. 후 불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데 일 하나는 진짜 끝내주게 하신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새벽부터 어디 가세요?”
어둠에 누군가 한참을 보시더니 기억이 나셨는지 무척 반가워하셨다. 얇은 점퍼를 걸치고 가방을 둘러멘 모습이 영락없이 산이었다. 새벽기도 열심히 다니신다고 하셨는데 어디를 저리도 사뿐사뿐 가벼이 가실까? 발걸음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이면 지킴이실 거로 출근하시는 김 반장님 뒤로 긴 꼬리가 생긴다. 아이들이 반장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는 모양이 영락없는 골목대장이다. 이쁘다며 한 명 한 명 안부를 묻는 모습이 정겹다. 오늘은 학교 행사가 있어 본인 출근날도 아닌데 역 부러 오셨단다. 아이들 보는 모습이 그저 행복한 반장님은 진짜 본인의 학교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손님이 없다고 지킴이 실에 그저 앉아만 계시지도 않는다. 앞 화단에 심어놓은 벼, 수박, 호박, 오이가 잘 자라고 풀도 뽑아주시고 물도 주신다. 여기저기 보수해야 할 곳은 미리미리 적어뒀다가 학교 수리 작업에 보태주시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곳곳을 둘러보며 직접 점검하신다.
김 반장님은 우리 학교 자랑이다.
어느 SNS 모임에서 한 분이 자신은 신문에 나오는 거창한 유명인사 말고 동네에서 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쩌면 유명인사가 되는 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동네에 괜찮은 어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見을 지녀야 하고 권위적이지 않아야 하며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어야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조건이 있겠지만 내가 본 어른의 모습은 그러했다. 나보다 더 남을 아끼고 약자에게 늘 베풀 줄 아는 사람.
김 반장님이 경로당 할머니들을 모시고 시민 체육대전에 참가하신다. 화합무 였던가? 아무튼 무척 재미있고 잘하셔서 수상의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연습은 잘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망신이나 안 당했으면 좋겠다 하셨는데 일 등 하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김 반장님의 프로필 사진을 우연히 봤다.
김 반장님과 이쁘게 미소를 짓고 옆에 앉아있는 분은 반장님보다 더 아름다웠다. 불편한 몸으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남편을 보며 마음고생 하셨을 텐데 두 분의 모습이 유독 편안하고 정말 부부 같았다.
다음 절기에 동지팥죽을 쑤어먹자고 말씀드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그냥 재료만 들고 먹으러 오겠다 했다. 뭐든 좋으시단다. 빈손으로 오든 먹으러 오든 와서 말벗이나 되어주고 가끔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없다 하셨다. 멀리 계신 조부모님보다 어쩌면 우리 집 울타리 안에 함께 사는 어른들이 나를 더 잘 봐주실는지도 모를 일이다. 동지팥죽 먹기 전에 찐빵 한 아름 사서 놀러 가야겠다. 빨간 바지 툭 걸쳐 입은 멋들어진 춤솜씨도 구경할 겸 내일은 경로당이 놀이터다.
어쩌면 행복은 아주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