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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Oct 22. 2023

세상에 나쁜 이웃은 없다.

살살 우리 동네 이야기

혼기가 꽉 찬 남편은 신혼집에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실내장식이 끝나고 가구도 들어왔는데 정작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니 아래위 이웃의 관심 대상이었나보다. 평균 연령 70세. 이미 퇴직 후 관심사라고 해봤자 주변 상황이니 얼마나 궁금했을까? 이삿짐이 들어가는 날부터 몇 호에 이사 오는지 누구인지 소문은 이미 다 퍼진 상황이었다. 이제 막 서른이었던 나는 주변 관심이 무척이나 불편했다.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교통이 편리하고 숲에 둘러싸여 있다고 할 만큼 나무가 많아서 사계절 내내 심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정말 좋았다. 주말이면 길 건너 백화점에 들렀다가 바로 옆 공원에서 잠시 산책하고 마트에 들러 장을 보면 지하철이나 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주말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세대수가 많은 아파트는 여러 이점이 있다. 분명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그 이점이 뭘까? 열 가지 정도 나열하고 싶은데 하나도 적지 못하는 건 아마 지금 내 상황 때문이겠지? 아이가 없을 때는 둘만 즐거웠으니 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래위층 아이들이 없으니 층간소음도 없고 다만 아래층 할머니가 귀가 안 좋으신지 텔레비전 소리가 너무 커서 가끔 잠을 설칠 때가 있었다.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나는 괜찮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니 아주 큰 문제가 되었다. 새벽이면 어김없이 깨서 울다 울다 잠이 드는 아이를 달래느라 진이 빠졌다. 하루는 아래층에 내려가 문을 두드렸다. 새벽 3시였다. 그 뒤에도 텔레비전 소리는 작아지지 않았지만 얼마 뒤 할머니는 먼 길을 떠나셨다.    

  

퇴직 후 시골에서 이것저것 키우시는 부모님이 가끔 집에 들르시면 상추, 호박, 가지, 오이가 넘쳤다. 나는 봉투에 나눠서 아래위층 문고리에 걸어둔다. 처음에야 상추 드릴까요? 하고 물었지만, 그다음부터는 그냥 걸어두면 아래층 새댁이 놓고 갔구나 하시고는 다음에 마주칠 때 맛있게 잘 먹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해주셨다. 할 줄 아는 음식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그렇게 나눠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덕분에 아이들이 엘리베이터에서 가끔 용돈을 받아오기도 했다. 겨울이면 붕어빵,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을 두 손에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에 오는 아이들은 충분히 정을 느끼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이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화장실 천장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위층 배수관이 문제가 생긴 듯한데 위층에 올라가 말씀드리기가 여간 거북한 게 아니었다. 그러다 아래층에 이사 온 분들이 우리 화장실을 문제 삼자 나도 위층에 이야기하고 이참에 아래위 깨끗하게 보수하자고 이야기가 나왔다. 각자 집을 방문해야 하는데 낯선 사람이 내 집에 온다는 게 난 너무 싫었다. 드디어 우리 집 화장실을 확인하러 위층에서 내려왔는데 오랜만에 본 위층 할아버지가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동안 중병에 걸려 자리를 보전하고 계셨다는데 정말 너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어르신은 우리 집이 꼭 본인 집안처럼 구석구석을 살펴보셨다. 세상에나…. 흡사 꼭 집을 보러 오신 분인 것 같았다. 방마다 닫힌 문을 묻지도 않고 불쑥 열어 다 보시고는 안방 화장실까지 확인하셨다. 이 무슨 어이없는 상황인지. 남편과 나는 너무 당황해 서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여기 피아노 좀 치워주면 안 되겠나? 내가 잠을 못 자서 말이야.”

그러니까 작은 방에 둔 피아노를 거실로 옮겨달라는 말씀이셨다. 남편은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게 너무 싫어 행동을 정말 조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피아노도 낮 2시부터 5시까지만 치라고 신신당부했다. 당연히 우리는 지키고 있고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하루에 길어야 1시간 반인데 그게 시끄럽다고 말씀하신 거다.      

화장실 천장 보수하다 우리는 피아노도 보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쳤던 피아노였다. 그동안 힘들게 이고 지고 다녔는데 위층 할아버지 한 마디에 그냥 멀리 보냈다. 그 순간부터 위층 할아버지가 너무 싫었다. 피아노를 보냈지만, 피아노 소리가 나면 부리나케 내려와 초인종을 누르셨다. 우리가 피아노를 없앴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방금 소리가 났다며 거짓말한다고 화를 내셨다. 매번 오실 때마다 방마다 확인하셨고 피아노가 없는 걸 확인하셔야 다시 돌아가셨다. 그러기를 여러번, 이제는 정말 아셨는지 더 이상 내려오지는 않는다.      

사람이 편한 관계는 어디까지일까? 


같이 사는 남편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데 나한테는 정말 거리를 두지 않는 이웃도 있다. 내가 원하는 일정한 거리는 1km인데 그는 거리를 원하지 않나 보다. 신기하게도 우리 집이 꼭 본인 집인 마냥 정말 편하게 드나든다. 집에 오면 아무렇지 않게 냉장고를 뒤져서 먹고 싶은 걸 꺼내 먹고 양파나 감자, 대파 등 필요한 재료도 들고 간다. 더 큰 문제는 잔소리다. 아무렇지 않게 집이 지저분하다는 둥 여기 좀 정리해야 한다는 둥 진짜 시어머니 잔소리를 툭툭 내뱉는다.  

    

이웃을 정의해보자. 이웃이란? 가까운 곳에 살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내가 정의한 이웃의 개념이다. 그런데 가끔 내가 생각하는 이웃과 타인이 생각하는 이웃이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웃의 연령에 따라 상황도 다를 것이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울컥하는 때도 있다. 

결혼 후 한 번도 이사하지 않았으니 나의 육아를 모두 지켜본 이웃도 있다. 언젠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려고 나갔다가 교육에 대한 훈수 두는 이웃을 만났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오랜만에 마주친 것이다. 사실 무척 반가울 법도 한데 잔소리를 하도 들어서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그런데 함께 따라 나온 둘째를 보며 많이 컸다며 깜짝 놀라 한마디 하셨다. 엄마가 정말 정성으로 키웠다고 저녁마다 나와서 줄넘기하고 같이 산책하고 도서관 다니고 그러기 쉽지 않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누가 알아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가깝지도 않던 이웃이 그런 이야기를 불쑥해주시니 눈물이 왈칵 나왔다. 인정이란 이런 거구나. 순간 묵은 감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일 층 할아버지는 인사를 받지 않았다. 늘 일 층 현관 의자에 앉아계셨는데(우리 아파트는 어른들이 계셔서 그런지 1층 현관문 옆에 긴 의자가 있다.) 아이들이 오가며 인사를 해도 받지 않았다. 내가 인사해도 물론 받지 않는다. 모자까지 쓰고 근사하게 차려입고서는 한참을 앉아있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 집에서는 온종일 EBS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새벽 5시부터 라디오를 틀어놓으셨는데 나도 듣는 영어교육 방송을 아주 크게 정말 크게 틀어놓고는 움직이셨다. 알고 보니 가끔 방학이면 미국에서 사위와 손주가 오는데 영어로 더 소통하고 싶으셨나 보다. 키가 큰 낯선 외국인들이 드나들면 우리 아이들도 신기해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인사를 받지 않으셨다. 우리 가족은 결국 지쳐서 인사를 하지 않았고 어느 날부터인지 할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백발의 흰머리가 그래도 잘 어울렸는데 인사만 좀 받아주시지. 할머니는 더욱 신나게 사셨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웃이 있을까?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아이에게는 멋진 선배 이웃이 10층에 살고 있다. 방송부 선배였는데 졸업식에도 찾아와 꽃을 주고 갔다.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되어 기쁘다며 꽃과 축하 편지를 직접 주었다. 낯선 중학교 생활에 그보다 더 큰 선물은 없었을 것이다. 이제 언니라고 부르지 못한다지만 가끔 하굣길에 만나면 깍듯하게 선배님이라 부르며 반가워한다. 단지 반가움으로 끝나지 않겠지. 담임선생님을 비롯하여 타교과 선생님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학교생활 팁을 덤으로 얻을 것이다. 다행히 공부도 열심히 잘하는 선배라 공부에 관한 팁도 줄곧 듣는 것 같다. 학교 다니며 이만큼 든든한 백이 있을까?


둘째에게는 귀여운 후배가 아래층에 산다. 오지랖인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보는 영어신문과 어린이 신문을 아래층에 전달해준다. 잘 활용할지 모르겠다고 쑥스러운 건지 미안한 건지 거절인지 승낙인지 모를 미소에 아리송했지만 일단 전하고 나니 아이가 좋아한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언젠가 엘리베이터에서 후배가 줬다며 사탕 하나를 손에 쥐고 왔다. 수줍게 누나 먹어 하며 줬다는데 너무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피아노 소리 때문에 민원을 넣었던 할아버지는 많이 좋아지셔서 새벽에 산책하러 나가신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지 인사를 잘 받지 않으시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걷는 모습에 안심이 됐다. 할아버지 간호하느라 몰라보게 수척해지신 할머니는 통 외출을 안 하신다. 한동안 수영도 다니셨는데 어디가 안 좋으신 걸까?  

    

시어머니가 감을 따셨다며 한 상자 보내셨다. 단감이다. 엄마는 고구마를 캤다고 한 상자 보내주셨다. 노란 밤고구마다. 콩나물이 튼실하다며 그것도 엄청나게 큰 봉투로 하나 가득 보내셨다. 집에 모아둔 봉투를 꺼내 봉지 봉지 나눴다. 1층 할머니는 아직 이가 좋으셔서 단감 한 봉지, 위층 할머니는 할아버지 간식해드리라고 고구마 한 봉지, 저 위에 혼자 사시는 부동산 사장님께는 콩나물 한 봉지, 아래층 우리 귀여운 후배에게는 고구마 한 봉지, 같이 운동하는 언니한테는 콩나물이랑 단감을, 앞집에도 단감 한 봉지를. 양손에 봉투를 가득 들고 배달을 나간다. 제일 위층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 지가 십 년째다. 세대가 너무 커서 쉽게 진행되지도 않지만 살기에 큰 불편함이 없으니 옮기지도 못하고 있다. 아이들도 이제 제법 커서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문제는 나이 든 어른들이다.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요지부동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사를 한다면 일단 우리 라인에 떡부터 돌리겠다고. 이만큼 아이들 키우고 잘살게 된 건 늘 아낌없이 나눠주신 이웃분들 덕분이라고 감사하다며 꼭 인사를 하고 가야겠다. 그날이 온다면 천천히 좀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잊을뻔했다. 단지가 큰 아파트의 장점은 이웃이 많다는 것이다.   


        

아파트도 가을에 물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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