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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Oct 22. 2023

행복복지센터에 놀러 오세요.

살살 우리 동네 이야기

행복복지센터에 놀러 오세요 

    

아버지는 할머니가 그렇게 바라던 면서기였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가장 바라는 직업이 면서기였다는데 그래서 저 시골 골짝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동네 자랑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노릇인지 시청에서 군청으로 군청에서 읍사무소로 때로는 면사무소로 발령이 났다. 그러다 갑자기 다시 군청으로 어쩌다가는 시청에 다시 읍사무소까지 퇴직까지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못했다. 면서기 일을 모르는 나로서는 내막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 삶이 절대 녹록지 않다는 것만은 알겠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각종 문서를 발급받으러 주민센터에 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집에서도 편안히 나와 관련된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으니 주민센터에 갈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요즈음의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간다. 무엇보다 잦은 회의가 있고 도움을 요청할 일이 생기면 그냥 주민센터에 간다. 마을계획단으로 활동하며 사회사업에 관심을 가지니 다양한 행사에 아낌없이 지지해주고 도움을 주는 곳이 바로 주민센터이다. 주민센터 직원들은 무슨 죄가 있나. 날마다 쏟아지는 민원에 정신이 없다. 가끔은 직접 찾아오는 주민들도 있는데 어린 직원들에게 반말부터 쏟아내고 억지를 부려도 아무 말 못 하고 듣기만 하는 직원들이 한없이 안쓰럽다. 여기도 쉽지 않구나.      


주민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할까?

나를 증명해줄 수 있는 각종 문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내 신분 관련된 자료는 이곳에서 발급받는다.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다양한 자생 단체의 활동을 돕는다. 새마을회, 부녀회, 복지만두레, 방위협의회, 주민자치위원회, 방범대 등의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를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마을과 관련된 자료 대부분을 얻을 수 있다. 그 옛날 마을반상회가 있었다면 지금은 행복복지센터다. 

     

요즘 젊은 세대는 주민센터에 전입 신고할 때 한 번 방문할까? 사실 방문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이렇게 자주 방문하게 될지 예상하지 못했다. 학교 운영위원장으로 마지막 임기 활동기간에 운영위원 중 자치위원이 있었고 우연히 동장님과 식사할 기회가 생겼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우리 마을의 문제점에 관한 이야기로 흘렀고 이를 해결할 방안 중 젊은 세대의 모임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학교 운영 위 중심으로 젊은 학부모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봉사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세대 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소통이다. 마을 안에서 주민이 주인이 되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서로 만날 기회를 만든다. 핵가족으로 완벽히 분리된 현대인에게 나이 든 어른은 꼰대이고 어린 친구들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린 서로에게 가해자이고 피해자였다. 이런 불통을 다시 소통으로 연결할 수 있는 화합의 장이 필요했다. 

    

동장님의 제안으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할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마을 활동에 지원하는 예산이 따로 있었고 관심을 가지면 구 보조금으로 배움도 가능하고 나눔도 가능했다. 마을활동가로 오랫동안 버텨오신 동장님의 아이디어는 반짝반짝했다. 지역주민들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서로 소통하고 의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별나무동은 대한민국이라는 큰 나라 안에 아주 작은 나라였다.  

    

우리가 참여한 첫 번째 행사는 마을 나눔장터. 아나바다 운동이라고 한동안 정말 붐을 일으켰던 벼룩시장에 열 개의 팀이 참여했다. 물품을 기증받고 판매하면서 마을 활동에 첫 재미를 느꼈다. 이 과정에서 물건을 기증받아 보관이며 홍보, 부스 설치까지 모두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다음 행사는 김장 나눔. 무려 2,000포기를 이틀에 걸쳐 김장했는데 일사불란한 모습에서 감히 어느 자리도 함부로 낄 수가 없었다. 친정엄마 김치 담글 때도 못 가는데 마을 김장에 참여해 파를 원 없이 다듬었다. 한자리에 앉아 파를 다듬으며 주변 학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건 예상 밖의 수익이다. 게다가 점심으로 제공된 수육과 막걸리는 정말 맛있었다. 물론 이 행사도 복지센터 주차장에서 이루어졌는데 김장에 필요한 도구와 앞치마, 모자, 고무장갑 등등 없는 게 없었다.      


두 번의 경험 후 자체적으로 기획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첫 번째 활동으로 학교 옆에서 주민센터까지 이어지는 거리에서 벼룩시장을 열었다. 주민센터와 학부모 도움으로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겨울방학에는 아파트 도서관에서 다양한 수업을 준비했다. 활동을 좀 넓혀 도서관에서 다양한 나이의 아이들을 만나 즐겁게 지냈다. 저마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최근에 추석맞이 송편 나눔 행사는 의미가 깊었다.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자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아 어린이부터 학부모 그리고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큰 행사였다. 어르신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만약 행복복지센터에서 동장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사실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봉사회를 시작할 꿈도 못 꿨을 테고 마을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돌아보니 우리 마을이 참 좋은 곳이었다. 비록 회색에 저마다 똑같은 모양을 한 아파트였지만 그 안에서 마을의 역할은 누군가가 모두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의 활동을 돕는 곳은 바로 행복복지센터였다.      


올해 가장 큰 마을 행사는 마을 축제다. 

피리 부는 여장부는 포토존을 맡았다. 워낙 손재주가 좋고 감각 있으니 멋진 포토존을 완성할 거라 믿는다. 게다가 얼마 전 끝난 국화축제에서 무료로 국화를 나눔 해주셨다. 국화 향기가 물씬 풍기는 음악회를 기획했다.      

801호를 사무실로 사용하시는 어르신은 아파트 도로 정비사업에 최근 앞장섰다. 덕분에 도로가 한결 깔끔해졌다. 지나는 길에 얼핏 본 얼굴은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3대가 함께 하는 합창과 미술작품전시를 맡았다. 합창에 참여하는 인원이 없어서 직접 무대에 서야 하지만 이 또한 즐거운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하니 그날이 기다려진다. 미술작품은 학교와 어린이집 친구들이 만들어주었다. 그날 아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축제가 끝나면 학교 앞에 따로 전시하기로 했다. 앞장서서 도와준 많은 분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특별한 일이 있어야만 갔던 주민센터에 이제 커피 마시러 간다. 엄마들을 몰고 동장님을 보러 가면 없던 일이 생기고 즐거운 수다가 이어진다. 마을에 산다는 게 어떤 건지 이제 조금 알겠다. 쉽지 않다.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신경 쓸 일들이 많다. 하지만 즐겁다. 내가 이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행복복지센터. 그저 단순한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했다면 오늘 한 번 방문해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내가 찾던 소중한 정보를 그곳에서 얻을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정돈된 요즘 책이 서가에 잘 진열되어 있다면 더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고 싶다고 슬그머니 제안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서 구성원으로 서로가 서로를 연결하고 살아가는 것이니까. 

행복마을을 만드는 일이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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