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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Mar 31. 2024

엄마는 사장님, 그리고 나의 선생님

내가 만든 첫 앙금케이크

본격적으로 공방을 운영하기 위해 떡을 찌고 앙금 꽃을 짜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 보통 창업을 준비하면 강사가 준비하는 수업을 들으러 갈 텐데, 내게는 떡 공방을 창업한 엄마이자 사장님이자 든든한 선생님이 바로 옆에 있다. 엄마 옆에 나란히 앉아 짤주머니에 앙금을 넣는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원하는 꽃을 짜기 위해 필요한 팁을 끼우고, 튼튼하게 기둥을 만들고, 1/2 지점에서 꽃잎을 한 바퀴, 1/3 지점에서 다시 한 바퀴. 가르쳐준 대로 했지만 손이 바들바들 떨린 탓에 모양새가 허접한 꽃이 만들어졌다. 엄마는 다시 시범을 보여주고, 나는 유심히 엄마를 관찰한다. 처음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배우고, 옷을 입는 방법을 배웠듯이, 이제는 앙금 꽃을 짜는 방법을 배운다.


지금의 내가 있기 전까지 나는 많은 것을 엄마에게 배웠다. 엄마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 자연스러웠던 시기도, 즐거운 시기도 있었고, 배우기 싫어 짜증을 내던 시기도 있었다. 엄마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 따라 하고 싶어 화장대에서 몰래 립스틱을 발라보고, 요리를 하는데 곁을 맴돌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무엇이든 엄마 옆에서 엄마의 거울이 되어 흉내 내고 눈을 맞추던 시절을 지나왔다는 사실이 꽃잎 한 장 한 장을 짤 때마다 되살아났다. 아 물론 엄마에게 배우는 일이 잔뜩 짜증 났던 삐딱한 시절도 있었다. 중학생 때, 그리고 고등학생 때 띄엄띄엄 영어 강사였던 엄마에게 영문법을 배웠다. 학원 선생님에게 배우면 그렇구나 하고 넘기던 것들이 엄마가 알려주면 이상하게 곱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니지, 틀렸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면 괜히 심술이 돋아 입을 삐죽 내밀고 이게 왜 아니냐며 잔뜩 반항적이었던 그때 내 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니 진짜 얄미웠을 것 같다. 서로 짜증을 누르는 뻣뻣한 목소리와 말투가 아직도 선명한데, 엄마는 어떻게 참고 나를 가르쳤을까. 엄마랑 했던 영어 수업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끝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내가 엄마한테 영어를 배우고 싶지 않다고 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다시 엄마에게 새로운 지식을 배우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보니 엄마는 꽤 너그럽고 유능한 선생님이다. 이해가 쉽게 설명해 주고, 틀렸다는 말 대신 잘하고 있다고 틈틈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엄마의 앙금 꽃 수업은 영어 수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했다. 그건 아마 예전에도 엄마는 유능한 선생님이었을 텐데 내가 철이 들어서 이제야 엄마의 수업을 잘 따라오는 것일 수도 있고, 엄마도 내 성향을 이해하고, 삶의 여유가 생겨 더 부드럽게 나를 다독이며 가르칠 수 있게 된 것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엄마에게 족집게 코칭을 받았으니 손에 익숙해질 때까지 앙금 꽃을 짜는 일만 남았다. 연습으로 만든 꽃을 뭉쳐서 다시 짤주머니에 넣고, 꽃을 짜고 반복했다. 어딘가 어설픈 꽃을 보며 예전 같았으면 짜증이 났을 텐데, 이제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편안한 마음으로 꽃을 연습했다. 무언가를 배울 때면 나는 항상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욕심이 가득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을 부렸다.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안되면 눈물부터 났다. 무언가를 배울 때 재미를 충분히 느끼기보다는 악으로 눈물로 해냈다는 걸 돌아볼 수 있게 되고, 이제는 잘하기 위해서는 내 의지도 필요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지금은 어설픈 꽃 모양이지만, 잘할 수 있게 끌어주는 엄마도 있고, 천천히 해낼 것이라고 믿어주는 나 자신도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매끈한 꽃을 올린 케이크를 자랑스럽게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엄마의 소중한 가르침을 받아 만든 나의 첫 케이크를 기념해 본다.

온통 서툴렀던 첫 도전을 이제는 짜증과 눈물이 아니라 즐겁고 뿌듯한 순간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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