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리솔 Mar 18. 2024

불안을 삼키면 보이지 않을거야

초보 떡공방의 첫 대목나기

오픈 3주 만에 명절이라는 대목을 맞닥뜨렸다. 떡, 앙금, 정과를 파는 떡 공방에 설은 선물세트를 팔아 1년 중 매출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간이었다. 그런데 나는 수제 선물세트를 소비하는 층이 아니고, 엄마 역시 공방을 하기 전에는 과일 선물을 하는 게 전부였던 소비자였기에 우리는 같이 맨땅에 헤딩을 하다시피 설이라는 대목을 맞이했다.


엄마는 공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설 선물로 판매할 수 있는 레시피를 몇 개 배운 상태였다. 나는 다른 공방의 설 선물세트를 찾아보면서 엄마가 배워 온 레시피로 당장 우리 공방에서 가능한 선물세트를 구성해 보았다. 함께 동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우리 역할은 자연스럽게 엄마는 생산, 회계 나는 마케팅, 기획으로 역할이 나눠졌다. 


엄마는 주변 지인들에게 몇 개만 팔아도 다행이라고 했다. 물론 오픈 3주 차만에 대량주문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단순히 몇 개를 팔고 끝내겠다는 태도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픈을 축하한다며 찾아오던 지인들도 끊기니, 가게를 찾는 손님이 한 팀도 없는 날도 생겼다. 비전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동업을 결정했는데, 너무 낭만적인 미래를 그렸던 걸까 봐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내 나는 직원이 아니라 엄마와 동업을 하는 대표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정신을 차렸다. 직원은 회사가 낭만적인 미래로 흘러가기를 기다리기만 해도 괜찮지만, 대표는 낭만적인 미래가 그려질 때까지 움직여야 한다. 무엇이든 한 개라도 더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우리 공방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에 선물세트 홍보 사진을 올리고, 첫 유료 광고까지 세팅했다. 광고비를 본격적으로 지출하게 되니까 투자금을 회수할 수는 있을지 걱정되고 매출이 더욱 간절해졌다. 주문이 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나 불안했다.


엄마의 불안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맞춤 주문이 들어왔을 때 기간을 지켜서 손님이 만족할 만한 메뉴를 만들어내는 것, 어제와 오늘 품질이 일정하게 메뉴를 만들어내는 생산 영역에서 엄마는 오롯이 책임을 지고 있었다. 엄마는 일이 손에 익을 때까지, 나는 가게 홍보가 여러 사람들에게 인지될 때까지, 우리에게는 불안이 활개쳐도 꿋꿋이 버티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설이라는 대목에 홍보한 선물세트는 겨우 주문 몇 개가 들어오는데 그쳤고, 그나마 지인 찬스로 월병세트 스무 개를 주문받아 처음으로 여느 공방처럼 대량 생산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명절 연휴를 앞둔 삼 일간 엄마와 나는 1시간 간격으로 비상 상황을 마주했다. 선물 포장을 다 묶고 나면 구성품을 넣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배운 레시피를 실전에 적용하면서 반죽이 너무 돼서 과자가 갈라지고, 손은 느린데 너무 많은 양이라 밤이 되도록 퇴근하지 못하고, 결국 손님이 찾으러 온 순간까지 보자기 매듭을 묶는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다.


하필 정신없이 생산을 하고 있던 때, 다른 지인에게서 설 선물세트를 주문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는 단번에 "선물세트는 미리 주문해주셔야 해요,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있어 재료도 없어요, 지금 주문받은 게 있어서 할 게 많아서요" 라고 말하며 손님을 거절했다. 순간 욕심이 앞뒤 안 가리고 솟구쳐서 엄마에게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한 명이라도 더 받아야지, 이게 안되면 저걸로라도 제안해 볼 수 있잖아.”

“우리 이거하기에도 바빠, 지금. 그리고 연휴가 코앞인데, 바로 만들 수 없어.”

물론 너무 바빴지만, 그래도 지금 것만 잘 끝내도 분명 주문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월병을 300개 넘게 굽고 엄마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가는 모습을 보며 더 하고 싶은 말을 조용히 삼켰다.


무사히 대량주문을 끝내고, 어둠이 내린 공방에서 뒷정리를 하며 엄마와 겨우 한숨을 돌릴 때였다.

“아까, 그 주문받을 걸 그랬나?” 엄마가 한결 개운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엄마? 아까 안 돼요라고 단칼에 말하던 사람 어디 갔어? 겨우 반나절만에 여유가 생겼네?” 

엄마는 머쓱한지 웃었고, 나는 그런 엄마가 웃겨서 웃고, 무엇보다 우리는 부담이 컸던 일을 해내고 개운한 마음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설에 많이 못 팔까 봐 걱정했는데 지인 찬스로라도 매출이 좀 났다? 엄마는 이제 진짜 공방사장님 같아. 대량주문도 해봤잖아.”

“그러게,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아. 밥도 좀 넘어가고. 진짜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 밥알 씹는 게 모래알 같았어.”


우리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조용히 각자가 삼켜내던 불안을 내뱉었다. 서로 더 예민해지지 않게 걱정은 애써 말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시간이 있었다는 걸 우리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엄마 고생 많았어."

"너도 고생했어."


함께 넘은 첫 번째 큰 언덕을 우리는 분명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이전 02화 우리는 부딪쳐도 괜찮은 동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