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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Mar 03. 2024

동업은 '타이밍'

엄마랑 사업을 시작할 결심

1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엄마는 앙금꽃케이크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한두 달에 한번 엄마에게 안부를 물으러 가면 엄마는 주방에서 앙금 꽃을 짜고 있었다. 20년이 넘게 국을 끓이고 반찬을 볶던 가스레인지 위에 대나무로 만든 찜기가 올려져 있고, 주방 테이블에 앉아 라텍스 장갑을 끼고 짤주머니에 색색의 앙금을 담아 꽃을 짜는 연습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무척 낯선 풍경이었다.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엄마는 새로운 꽃을 배웠다며 맹연습을 하고 있었다. 손을 조금 떨면서 꽃을 짜는 엄마 옆에 앉아 달콤한 앙금을 올린 설기를 뜯어 먹다가, 한번은 어쩌다 앙금 꽃을 배우게 된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음…예전부터 배워 보고 싶었어. 예쁘잖아.”


엄마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사람인지를 알기에, 예전부터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설기가 목에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알던 엄마는 집에서 살림하고, 아빠 일을 돕는 모습이 익숙해서 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 하고 싶은 걸 물어본 적 없었을 뿐이었다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엄마는 배운 기술로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 생일에 예쁜 꽃이 올려진 떡케이크를 선물했다. 주변에서 정말 맛있고 예쁘다며 가게를 차리라는 말을 들을 때도 엄마는 그저 가족들한테 만들어 줄 수 있는 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가 앙금꽃을 배운지 1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엄마는 사업을 해야겠다며, 마음에 드는 가게에 계약금을 걸고 왔다고 했다. 엄마, 아니 소영씨는 사업자를 내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앙금과 쌀로 디저트를 만드는 가게 사장님이 되었다.



54살에 전혀 관련이 없던 분야에 창업을 도전한 엄마의 결심은 사회생활 2년 차 만에 일에 회의감을 갖고 퇴사해 백수로 지내던 26살 젊은이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울렸다. 엄마의 사업이 망하지 않고,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내 취업 여부보다 더 중요하고 간절해졌다. 마침 이직을 준비하며 서울살이를 하다가 7년 만에 집으로 돌아와 쉬던 때였다.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시간이 있었고, 학교에서 배운 디자인 기술로 엄마 가게를 브랜딩 해주었다. 본격적으로 간판을 달고, 유리창에 영업시간을 붙이고, 같이 대청소를 하고, 가구를 들이고, 오픈 날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가게가 무사히 개업했으니 지금쯤 서울로 돌아가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고, 취업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야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노트북이 든 가방을 메고 날마다 엄마 가게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처음에는 메뉴 사진을 예쁘게 찍는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이유였으나, SNS 관리를 할 여유가 없으니 당분간은 홍보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말에 홍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는 본능과 걱정으로 게시물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다보니 사업 전략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워볼 수 있을 것 같은 열정이 생겨 공방 의자에 앉아있다가 조금씩 가게에 정이 붙어버렸다.



낮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많이 없는 지어진 지 20년도 넘은 아파트 상가의 유리창 너머 풍경은 잔잔해 보였고, 창 가까이에는 제법 빛이 들어 앞에 놓인 디저트들이 달콤해 보였다. 사람들이 떡 디저트를 신기해하고, 맛있다고 해주는 말이 좋았다. 개업식 전날 라텍스 장갑을 끼고 엄마를 도와 디저트를 만들고 포장하던 감각이 이따금 떠올랐다. 떡이 부풀며 찜기 사이로 달콤한 냄새가 퍼지는 공방에서 잃어버린지 오래라고 생각했던 흥미로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딸은 일 쉬는 중에 도와주는 거예요. 곧 서울로 돌아가야죠.”

“엄마 나 서울 가지 말고 여기서 엄마랑 사업 해볼까? 꼭 회사 안 가고 프리랜서로 일할 수도 있잖아?”

“네가 옆에 있으면 나야 좋지. 네가 홍보도 해주고.”

“엄마 그때 나랑 같이 공방하면 어떨지 생각해 봤다는 말 진심이야?”



가게를 준비하며 우리는 완벽한 진담이라고 할 수 없는, 그렇다고 농담이라고도 할 수 없는 말을 수십번 아꼈다가 슬쩍 주고받았다. 그저 작은 공방을 꿈꾸기에도 바빴던 엄마에게 내가 함께 일한다는 건 사업이 잘 풀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 단번에 긍정하기 힘든 미래였다. 나 역시도 직장 경력을 쌓을 시기에 아무런 자본이나 사전 조사 없이 창업의 길로 들어서는 선택지는 너무나도 불투명해 보였다. 서로의 시간이 얽힌 일의 무게를 가늠하며,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을 고민했다.



‘엄마랑 사업을 해도 괜찮을까?’

'함께하다보면 갈등도 생기고 서로가 미워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사업이 망한다면?’



날마다 가게에 앉아 치열하게 생각해보았지만,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리 상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을 함께 해야겠다는 느낌 또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찾아온 이 타이밍은 새로운 기회가 아닐까.


1월의 마지막 날, 엄마 아니 사장님께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나 내일부터 공방에 정식 출근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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