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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솔 Mar 24. 2024

어른스러운 사장님

엄마이자 사장님이자 어른스러운 어른


공방을 창업하고 나서부터 하루, 한 주, 한 달은 너무 금방 흘러 버린다. 공방을 연지 두 달이 흘렀고, 엄마와 나는 새로운 메뉴도 내고, 대량주문과 떡케이크 주문을 받으면서 차츰 일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에피소드를 적고 싶었으나 익숙해질 만하면 우리는 실수로 버무려진 하루를 보내고 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일상이든 장사든 사소한 하나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꼭 연쇄적으로 일이 꼬여버린다.


토요일 아침도 그런 날이었다. 떡케이크 주문이 연달아 두 건이 있어 엄마는 떡을 찌고, 나는 포장을 맡았다. 그런데 첫 번째 픽업 시간이 다가왔을 무렵, 벌써 50번도 넘게 만들어 본 떡이 처음 보는 색으로 쪄졌다. 판매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였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같은 떡을 3판 준비해야 하는 상황인 데다 동시에 진행하고 있던 다른 떡케이크에 꽃을 올리는 작업은 너무 더디게 진행되고 있었다. 엄마도 나도 조급해진 마음에 행동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엄마는 망한 떡을 속상해하며 좀처럼 내지 않는 짜증을 얼굴에 담고 말로 뱉었다. 나는 만들고 있던 빵에 베이킹파우더를 넣었는지 아닌지 헷갈려하며 자책했고, 상기된 상태로 케이크에 쓴 글자는 삐뚤어졌다. 갑자기 엄마의 지인까지  찾아왔는데 망친 떡을 수습하느라 제대로 응대도 못하고, 손님은 픽업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셔서 떨리는 손으로 허겁지겁 떡을 포장했다.


일이 마무리되고, 엄마도 나도 서로가 저지른 실수를 떠올리며 실망과 후회에 빠졌다. 평소라면 한 사람이 덜 속상해하며 서로를 양지로 끌어당겨주었을 텐데, 오늘은 둘 다 감정이 추스러지지 않았다.


“떡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내가 케이크를 더 일찍 준비했어야 하는데….”

“글자를 그렇게 쓰면 안 됐는데.”

“지인한테 서비스도 못 줬네.”

“우린 언제쯤 익숙해질까.”

“이러고 있어 봤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는 거야.”


엄마와 나란히 앉아 늦은 점심을 먹는데 밥에서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준비되지 못했을 때, 완벽에 가깝지 못했을 때는 너무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온몸에 가시가 곤두세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몸도 마음도 뻣뻣해져서 눈앞에 보이는 무엇이든 찔러 화를 표출하고 싶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고, 손님이 끊겼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일정이 있어 이동해야 하는데 기다리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너무 커서 발이 묶였다. 정말 무엇하나 순조롭지 못하다며 혼잣말로 날카로운 투정을 부렸다. 그러자 엄마는 자신의 속상함은 묻어두고, 내 투정을 받아주었다. 교통이 정말 너무 불편해서 어떡하냐며, 다른 경로로 가는 건 얼마나 걸리는지 봐주겠다며 내 가시를 살살 어루만져 주었다.


공방을 벗어나 버스를 타고나서야 잔뜩 투정만 부린 모습이 얼마나 못났을지 그려져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도 분명히 속상했을 텐데, 긴장을 많이 해서 분명 평소 안 좋던 손목이 아플 텐데, 내가 혼잣말로 분을 삭이게 그냥 둘 수도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공감해주려고 한 모습이 한 발짝, 한 템포 멀어지고 나니 그제야 보였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가족들의 작은 말도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빠와 냉전이었다가도 아빠가 필요한 게 생기면 챙겨주고, 동생이 가볍게 흘린 말도 메시지로 다시 확인해 주는 사람. 엄마는 원래 공감능력이 좋고, 원래 다정한 사람이었을까. 낮에 망친 떡 앞에서 짜증을 내는 모습이 겹쳐지면서 엄마는 오랜 시간 연습으로 가족구성원을 위해 공감과 위로가 습관이 된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족마다 다르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엄마는 가족을 품어주는 사람이었다. 품어준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내 감정이 앞서도 먼저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다정함을 건네는 쉽지 않은 행동을 여러 사람을 위해 하는 행동이란 것을 엄마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엄마랑 사업을 하며 떡을 찌고, 장사를 하는 사업을 배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삶을 살아가는 어른스러운 태도를 가까이에서 배운다. 순조롭지 못하고 완벽하지 못한 날이라는 기분은 잠깐일 뿐이다. 다시 비슷한 하루가 온다면 그때는 엄마와 비슷한 위치에서 서로를 보듬는 사장이 되기 위해서 투정은 넣어둘 것이다. 나도 엄마에게 어른스러운 사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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