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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Feb 14. 2023

돈이 없어서 유튜브를 끊었습니다

결핍이 필요할 때




진품이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보온도시락을 준비하는 일이 추가되었고 아이는 평소보다 여유롭게 일어나서 놀다가 돌봄 교실로 들어갔다. 

돌봄에 일상은 보드게임, 놀이시간, 밥 먹기, 만들기 시간이 적당하게 섞여 있어서 아이들이 지루하게 보내는 일과는 아니었지만 진품이는 다른 친구들은 방학 때 집에 있는데 나는 계속 가야 하냐며 투덜거렸다. 




"엄마 그러면 나는 피아노 학원 갔다 와서 할머니 집 말고 집에서 쉬면 안 돼요?"

"집에서 혼자 어떻게 하려고 해? 무섭지 않겠어? "

"나 이제 9살이라서 괜찮아. 그리고 피곤해서 놀다가 누워 있거나 자고 싶어."




피아노차량에 내려서 잘 올까 불안한 마음에 안된다고 하고 싶었지만 방학기간도 누리지 못하는 마음이 짠하여 허락을 하였다.  진품이는 생각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즐거웠는지 도착했다고 전화도 주고 문자로 퇴근은 언제 하는지 나에게 물어보며 잘 지냈다.



그렇게 여러 날이 흘러 퇴근 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이는 식탁에 앉아서 씨익 웃는다. 패드로 무언가를 보다가 민망함에 짓는 웃음이다. 평일엔 유튜브 시청은 영어로만 하라고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 우주, 양자역학, 시공간 이런 걸 검색하다 아이들이 게임하면서 설명하는 채널에 빠져든 것이다. 그동안 혼자 있고 싶은 유혹은 이것 때문이었다. 오롯이 간식을 까먹으면서 유유자적 얼마나 즐거웠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진품이에게 그동안 어느 정도 제한도 있지만 자율성도 주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지켜보기로 했다. 평일에 하원 후 시간을 즐기던 아이는 내가 일하러 간 토요일엔 아침부터 오후 내 자유롭게 패드에 빠져 들었고 남편은 거의 아이들 생명유지 (먹을 거 챙겨주기) 정도를 해주었다. 




나의 교육 철학은 어느 정도 결핍이 있어야 하며 남이 한다고 다 할 수 없고 가지고 싶은걸 다 가질 수는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이것은 얼마이다 알고 사용하고 사야 한다고 이야기해 준다. 

아이에게 어른들이 주는 용돈과 세뱃돈은 아이가 저금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덕분인지 아이 통장엔 200만 원이 차곡차곡 쌓였다. 평소에 이런 것들을 설명해 준걸 드디어 써먹을 기회가 지금 왔다. 




진품아! 엄마가 돈이 없어서 유튜브채널을 앞으로 볼 수가 없어 (광고 나오는 것을 아이들이 굉장히 싫어해서 매달 프리미엄을 신청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엄마가 어플을 삭제했어. 

그다음 진품이 입에서 나온 말은 나를 웃게 만들었다. "엄마 그러면 영어채널도 지웠어? 그건 지우지 말아 줘. 그거라도 꼭 보고 싶어. (리틀팍스, 리딩게이트, 리딩앤)




저 유료어플은 이미 일 년 치를 결제했기 때문에 내가 지울 수가 없다. 아까워서라도 봐야 하는 것들인데 너무 고마워 절이라도 하고픈 심정이다. 옆에 있던 명품이도 어리둥절 하지만 그렇다고 하니 딱히 왜 그랬냐는 말 없이 넘어간다. 

유튜브 없는 삶이란 득과 실이 있는데 아이에게 노출되는 영어콘텐츠 헤어짐이 엄마에겐 불안함을 안겨주었지만 더 이상 아이에게 게임채널을 노출시킬 수 없었고 둘째 딸의 자율기상(코코멜론) 시스템도 멈췄다. 




피아노 학원 시간만 되면 집으로 가고 싶어 하던 아이는 이제는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 할머니집에서 무한제공 되는 TV와 컴퓨터 핸드폰이 간절하겠지만 한 달간 집에서의 적응을 나는 보았다. 

진품아 집에 있고 싶어 했잖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어. 유튜브 못 봐서 그런 거야? 한 시간 반정도 혼자서 간식도 먹고 놀잇감으로 놀고 졸리면 자고 지내봐.

아이는 유튜브 때문에 그렇게 지냈다고 말하지도 못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알았다고 했다. 




평일과 주말에 유튜브 없이 살아보니 진품 명품이는 둘이 더 많이 놀았고 이야기 시간이 많아졌다. 심심함을 이겨내기 위해 책도 들쳐보는 시간이 생겼고 영어 CD를 틀어주면 조금씩 흥얼거리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동안 유튜브영어 노출이라는 명목으로 내가 과하게 아이에게 오픈한 게 아닐까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잠이 안 와서 에너지를 빼고 잔다며 선택한 필사는 이틀을 넘기지 못했다. 

 


내가 브런치에 글 쓰는 시간에 잠이 안 온다는 진품이에게 독서를 권했었다. 독서를 즐겨하는 아이가 아니라 책 읽기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필사하겠다며 시키지도 않은 공책을 들고 와서 마주 앉는 날도 생겼다.

엄마와 함께하고픈 시간이 필사가 될 줄이야. 아이도 고요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심심함 넘어서 책을 읽을 시간이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진품아 친구들이 엄마 집에서 뭐 하냐고 물어보면 우리 엄마는 집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쓴다고 말해.
이거 진짜 멋있는 취미거든 아무나 안 하는 거다!"
"엄마! 친구들은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
"어 그래. 하긴 친구들이 그런 걸 물어볼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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