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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Mar 18. 2023

행운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이끌림으로 시작된 다문화 아이들 가르치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가볍게 그림책 읽어 주기 정도만 해주시면 된다고 하셨고 비영리단체라 무보수와 넉넉하지 않은 사정을 들은 터라 별 기대 없이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지만 이곳에서 돈을 받을 수 없음을 한눈에 느끼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한 아이들 2명이 똘똘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 질문들을 쏟아 냈다. 외모만 보면 영락없는 외국인인데 한국말이 어찌나 유창한지 한국유치원생이 따로 없네 싶었다. 

수녀님께서는 한 시간 정도 동화책수업을 원하셨지만 나는야 한국엄마 아닌가 초등학교 1학년에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림책 읽어주며 기초 학력테스트에 들어갔다. 



7세가 읽는 창작동화 1학년 수준의 책을 골고루 챙겨서 읽어주고 따라 읽을 수 있는지 파악하며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체크했다. 집에서라면 이렇게 읽어주고 끝이겠지만 색칠도구와 종합장을 한 권씩 나눠주고 오늘 읽었던 음식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걸 하니씩 그려보라고 하고 어떤 음식인지 써보라고 했다. 



바우는 읽고 쓰기도 잘하고 색칠도 꼼꼼했다. 나짚은 한글 읽기도 쓰기도 전혀 되지는 않았지만 동화책은 잘 이해하고 표현도 잘했다. 아빠가 작년에 돌아가셔서 수녀님께서 특별하게 안쓰러워하셨는데 학교생활이 얼마나 답답할까 짐작이 갔다. 



두 번째로 일일연산 프린트를 내밀었다. 

으... 선생님 이게 뭐예요?
이거 가르기라는 건데 선생님이 가르쳐 줄 테니까 한번 해볼래?? 
네 한번 해볼게요.


바우는 10까지 숫자를 완벽하게 알고 있어서 수월하게 풀었고 나짚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했지만 곧잘 풀었다. 다행이다 한글과 수학까지 둘 다 힘들어하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수녀님께 아이들이 집중력도 좋고 수업에 적극적이라 잘할 거라고 다음 시간을 기약했다.



소로소로 선생님 잘 지내셨지요? 아이들이 2명 더 늘었는데 맡아주실 수 있나요?
네...?!?!? 한국말 알아 들이면 제가 어떻게 해볼게요. 
말은 잘 알아들어요. 같이 가르쳐 주시면 저는 감사하죠.  






두 번째 시간엔 봄에 관한 책을 빌려다 읽어 주었다. 아이들은 봄에 피는 꽃들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었고 봄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초록색 도화지를 부채모양으로 접어서 유산지를 잘라 꽃을 표현해 보기로 했는데 

역시나 초1의 손힘은 똑같구나 여기저기서 못하겠다고 아우성이고 초등학교 교실을 방불케 했다. 

유산지 접기와 풀칠도 난장파티요 화장실만 잘 다녀와도 된다는 걸 잊었던가 멘붕과 함께 어쩌자고 적응도 없이 덤볐나 혼이 쏙 나갔다. 



저번 시간에 이어서 가르기를 나눠주고 설명해 주는데 아브라힘은 숫자를 잘 몰랐다. 다른 아이랑 비교가 되니까 부끄러워했고 자꾸 뒤로 빠지는 모습이 보여서 할 수 있는 거만 해보라고 다독였다. 소라는 여자아이의 야무짐으로 만들기도 클리어 수학도 클리어 한글도 퍼펙트 내 딸보다 잘하는구나 허허허 웃음이 나왔다. 





수녀님 학교 수업시간 힘들지 않을 만큼 가르쳐서 2학년 올려 보내드릴게요.
어디서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런 대담함을 말씀드려 버렸다. 




2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는 찰나 엄마들이 학교 상담지를 들고 왔다. 각 아이들의 학습정도와 바라는 점을 써달라고 부탁하셔서 꼼꼼하게 써드리고 당부말까지 첨부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학교에서 지켜야 하는 것 3가지를 말씀드리며 꼭 지키시라고 당부했다.



1. 지각은 바른생활에 첫째입니다.
 학습 부진은 따라가면 되지만 성실한 친구에게 눈이 더 가니까 꼭 신경 써서 챙겨 보내 주세요.
2. 준비물은 항상 체크해서 보내주세요.
독서책이나 준비물을 챙긴다는 건 부모님이 아이 학교생활을 신경 쓰고 있다는 척도가 될 수 있어요. 
3.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듣기
선생님과 눈 마주침이 있는 아이들을 누구나 좋아합니다. 어떠한 사교육보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해요.



초등학교 부모가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들을 집어 주었더니 부모님도 수녀님도 너무 좋아하셨다.

2시간 열정적으로 불태우며 내 아이도 이렇게는 안 가르치는데 초등학교1학년 선생님을 더욱 존경하게 만드는 체험삶의 현장이었다.



어떻게 가르칠까 고민이 많았는데 아이들과 만날수록 뿌듯함과 나아가는 모습이 보이니 이 맛에 가르치나 보다 스승의 날 카네이션이라도 받는 거 아닌가 하는 앙큼한 상상도 해본다.






일주일에 두 시간씩 행운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예쁜 아이들의 눈망울을 바라보며 무지개가 뜨는 그날을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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