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소로 Apr 24. 2023

잘 가요 호세





카페를 열면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 에스프레소에 흰 설탕을 추가하시는 멋쟁이 손님이 있다. 처음엔 라테잔에 드렸는데 뭔가 모양새가 민망해 에스프레소 잔도 준비했다. 매장 최애 바스크치즈케이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82세 은퇴한 스페인 신부님이다. 내가 만든 바스크치즈케이크는 본인이 살았던 바스크지방 케이크라며 맛이 똑같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그렇게 3년을 오시다가 무릎이 좋지 못해 스페인에서 수술하고 다시 온다고 인사를 건네고 떠나셨다. 일 년 반이 지나 다시 오신 단골손님은 표정이 매우 슬퍼 보였다. 이유인 즉 스페인에서 비자 연장 기간이 지났음을 알고 대사관에 문의했는데 대답을 받지 못해 관광비자로 들어오게 되었다며 100일 후에 무조건 떠나야 한다고 했다. (외국인은 3년마다 비자를 연장해야 한다.)




그간 정들었던 터라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방법은 다시 나갔다가 초청비자로 오는 방법뿐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23살에 한국에 와서 50년을 봉사하며 살았는데 한순간에 기록들이 다 리셋되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여행자가 되었다. 그 상실감은 짐작 초차 할 수 없지만 얼굴이 슬픔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돌아갈 날이 정해진 은퇴신부님은 딱히 할 일이 주어지지 않았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삶은 참으로 무료했다. 일주일에 한 번 오시던 카페에 매일 오시게 되면서 하루에 2~3시간을 나와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나이 40살 차이가 무색하게 어쩌면 나보다 더 진취적인 생각들을 했고 아~ 이래서 유럽사람들 이러나 그러기엔 한국에서 50년을 살았으니 어불성설 그냥 한국할아버지 아닌가 싶었다.



처음엔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미안해하셨는데 차츰 일과가 되어서 점심식사 시간이 지나면 으레 오셨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양했다. 코로나, 경제, 대통령, 영부인, 다문화, 국제결혼, 종교, mz세대, 어린이들, 청년, 환경파괴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중에서 단연 한국생활 50년 경험사가 아닐까 한다. 제일 오래도록 있었던 강릉을  많이 사랑하셨고 그때 찍었던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나눠 주셨다. 




출국하기 한 달 전 새 핸드폰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돈은 본인이 줄 테니 알아봐 달라고 하셨고 기계에 젬뱅인 나는 핸드폰을 구입해 신부님께 선물로 드렸더니 펄쩍 뛰신다. 받을 수 없다고 하셔서 고민 끝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와 반반 나눠 샀고 금액도 40만 원이니 이별 선물로 받아 달라고 했다. 



핸드폰이 멈췄다


관광비자를 발급받으면 출국 전 20일 전에 모든 것이 스톱된다. 나갈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그간의 일들로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선불유심을 사서 끼워드리고 한국을 떠나는구나 마음을 정리하고 준비를 하나씩 하셨다. 가지고 있는 짐은 단출하게 옷 두어 벌 신발 2개 서적 몇 권이 전부라고 하셨다. 떠나기 전에 가지고 계신돈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부하고 가신다고 하셨다.



평생 청빈의 삶을 살다



어떠한 송별회도 안 하신다고 하셨다. 미사를 하게 되면 눈물이 날 거 같아 마음이 아파서 못할 거 같다고 말씀하시고 거절하셨다. 사람들은 아쉬워 알을 알음 따로 신부님과 인사를 했다. 100일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 며칠 뒤면 나가신다. 마지막으로 이메일 계정을 찾아 드리고 페이스북을 다시 살려서 메시지 보내는 방법과 화상전화까지 알려 드렸지만 82세 할아버지가 한번에 알아들을 수 없어 며칠에 걸쳐서 특훈을 했다. 







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쉬는 날 차도 빡빡 닦아 뒀다. 모든 것이 눈이 부시게 완벽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 귀에 들리지 말아야 할 말들이 가기 이틀전날 들렸다. 



"소로소로 자매님 토요일 공항 안 가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왜요?"
"사람들이 소로소로 자매님이 신부님한테 반말하면서 친하게 지내는걸 안 좋게 생각해요."
"네...?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다른 사람들은 만나지도 못하는데 자매님은 신부님이랑 밥도 먹고 핸드폰 사드리고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소문이 나고 있어요. 자매님 앞으로 장사도 하셔야 하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솔직히 장사는 상관이 없어요. (그들은 내 커피와 디저트를 사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일단 신부님께 누가 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네요. 알겠습니다. 



82세 할아버지가 한국에 와서 봉사하신 세월을 커피 마시며 이야기했을 뿐이고 혼자 처리 못하는 일들을 동분서주하며 처리해 준 것들이 죄가 된단 말인가? 아니면 내가 친근하게 반말한 게 되바라져서? 그들은 누구이고 100일간 도움은커녕 말벗 친구조차 해주지 않았다. 50년 세월을 함께 해드리지 않았지만 마지막 시간은 누구보다 함께 했는데 이별조차도 허락을 구해야 하는 건가 화가 났다. 



질투


아침에 들은 이야기는 오후 내내 마음을 후벼 팠고 머리가 아팠다. 누가 그런 말을 할까 생각하다 대충은 짐작이 갔고 그것은 질투라는 감정이었다. 나는 광신도처럼 추앙한 것이 아니다. 신부님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연민으로 도와드린 것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가시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마지막 배웅을 못 간다는 것에 화가 났지만 하루가 지나니 파도가 지나간 자리처럼 잠잠해졌다.  그 역시 신부님이 원하시는 바가 아님을 그간의 대화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드디어 떠나기 전날이다. 너무 바쁘셔서 오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는 찰나 신부님이 오셨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러 왔다며 커피와 치즈케이크를 주문하셨다.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가 오고 갔고 따뜻한 포옹을 해주시면서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다. 마음이 참 먹먹하고 그간에 정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인사 후 불편했던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가족들과 불금을 보내며 오랜만에 치맥을 먹고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평소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다 깨다 하는 나였는데 그동안 피로가 몰려왔던지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꿈속에서 신부님이 나타나 나에게 한마디 남기셨다.




사랑은 봉사야



인자한 미소를 띠면서 나를 부르시더니 한 마디 하시곤 사라졌다. 

"소로소로, 사랑은 봉사야!" 꿈속에 그 말을 듣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끔 신부님께 신은 정말 계세요? 내 눈에는 안 보이는데 좀 보였으면 좋겠네 질문을 할 때마다. 웃으시며 안 계시는데 내가 평생 왜 이러고 사니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구나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 배웅은 못 갔지만 각자의 일상에서 잘 지내며 한 여름밤 꿈처럼 따뜻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썰을 풀자면 마지막 공항을 못 가게 한 것은 오해에서 비롯되었고 그 타깃이 내가 아니란 사실도 알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인데 거기에 말씀을 전해주시는 분이 혼자만의 살을 덧 붙여서 마음만 혼란스럽게 해 버린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었다. 어느 집단이던 말이 나오는 건 참 딱하기도 하고 이래서 가까운 만남보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나은 거다 싶은 생각은 변함이 없다. 



"소로소로! 한국은 성직자들을 너무 존대하고 높이 불러 유럽은 그렇게 극 존대하지 않아!"

" 그럼 뭐라고 불러요? "

"호세라고 하지."

"호세?? 그냥 이름을 부른다고요?"

"응. 그냥 이름 불러 그리고 편안하게 친구처럼 말해. 그래서 더 가깝지. 친구처럼 말이야."

"그렇구나. 근데 신부님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부르면요 싹수없다고 해요.. ㅋㅋㅋ" 앞으로 그렇게 부를 일은 없을 거예요. 제가 스페인에 가면 생각해 볼게요."




100일간 일들을 한편으로 쓰기엔 부족하기도 하고 공동체의 섭섭함도 많지만 앞으로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꾹 담아본다. 40년 뒤에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고 한참 어린 사람과 대화가 될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잘 가요 호세
50년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작가의 이전글 내 친구 '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