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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Apr 26. 2023

바람난 여자




새벽 수영을 한지 꼬박 3주가 되었다. 주 3회 강습 2회는 자유수영인데 동친과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 35분에 만났다. 시작할 때 수영을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하다 보니 새벽기상 인증이 자극이 되었다. 첫 주에는 일어나는 것도 버겁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2주 차는 여전히 헛구역질이 나와서 병 걸린 거 아닌가 했는데 그냥 새벽기상이 힘든 거였다. 3주 차가 되니 몸에서 반응이 오고(뱃살이 말랑말랑해졌음) 할 만하네 수영하고 돌아오는 길이 가뿐했다. 



벌써 다음 달 수강신청 종기가 붙어 있었다. 새벽수영이니 얼마나 등록하겠어 미적거리며 했는데 웬걸 등록 접수 넣자마자 마감이 떴다. 세상에 다들 운동만 하나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오픈런으로 물건을 구매한 느낌이었다. 



한 달에 한번 그날이 돌아왔다. 친구가 먼저 마법에 걸렸다며 못 나온다 통보했고 가지 말까 생각이 99% 지배했는데 인스타인증과 작가님 중에 내가 수영을 잘 나가나 지켜보는 두어 분이 있으니 1% 가자는 마음가짐으로 혼자 나갔다. 25명에 달하는 수강생들은 중반이 되니까 반이 나가떨어졌고 그만큼 레일을 왔다 갔다 왕복 횟수가 늘었다. 



친구의 마법타임이 끝나자 내가 돌아왔다. 겨우 15번 나갔을 뿐인데 몸이 근질근질 새벽 수영을 못하다니 온통 언제 나가나 생각으로 차올랐다. 내 생각을 누가 들여다보면 몇 년 수영한 사람같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글쓰기를 이렇게 했으면 뭐가 되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마법 3일 차 안 되겠다. 

쿠팡에서 생리컵을 주문했다. 

템포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데 성공했을 리가 몇 번 시도하다 때려치웠다. 

다시 템포를 주문했는데 어찌어찌 처음으로 성공했다.

와우!!! 급하긴 급했구나 그동안 안 쓴 건지 못쓴 건지 대견하다. 친구에게 오늘 수영을 가노라 고한다.






무언가를 이렇게 열심히 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발걸음이 가볍고 새벽 새소리마저도 정겹게 인사해 준다. 3일 만에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수영장으로 들어선다. 그동안 수강생은 더 줄었고 진도가 급물살을 탔던지 왼팔 돌리기와 킥판을 빼고 하라고 하신다.



두려움에 헛발질과 실소가 터져 나왔지만 그동안 못 나간 한을 풀었다. 매일 나갈 때 차가웠던 물조차 따뜻한 기운이 돌고 양손을 허우적거리다 물도 많이 먹어서 배가 불렀다. 강사님은 어려워요? 어렵지 않아요 단지 킥판만 없을 뿐이에요.라고 늘 한결같은 멘트를 날려줬다. 



당신은 청정명



수영강사의 편견이 있었다. 아줌마를 친절하게 가르쳐 줄까? 별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친절하고 잘 웃어 주신다. 쌍꺼풀이 없는 약간 맹한(선한) 눈으로 아줌마들이 실수할 때마다 교정해 주고 어려워요? 할 수 있어요를 외쳐준다. 오늘은 물을 많이 먹었더니 강습비 더 내고 가라며 농담도 던져 주시고 허우적거리는 팔에 물싸대기도 맞으셨다. 그 모습에 우린 또 까르르 웃음이 가볍게 터진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운동은 나랑 맞지 않아서 꾸준함이 없었던 걸까? 필라테스의 도도함을 느끼고자 갔었을 땐 바를 다리에 올리면 부들부들 떨리다 다리가 안 들렸고 스쿼시는 공과 라켓이 따로 놀고 몸이 늦어서 헛스윙을 날리고 방송댄스는 내가 내 몸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웨이브를 가르쳐 주시는데 왜 꺾기가 되는 건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웃다 끝나는 운동은 3달을 넘기지 못했다. 




운동할 시간이 없던 차에 새벽시간이라도 허락되어 늙어서 고생하지 말자 딱 수강료 5만 원 치만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하다 보니 물속에서 고요함이 좋았다. 바닥을 바라보며 나만 집중하는 시간 노력한 만큼 결과도 나오고 무엇보다 남편이 새롭게 보는 거 같다. 글쓰기 하면서 작가놀이 할 때 시큰둥하더니 마누라가 주 5회 수영을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목표는 얇은 끈 화려한 수영복을 입을 거라는 떵떵거림을 웃으며 바라봐준다.



동네에 바람났다고 소문나겠다


여보 동네에 소문나겠어. 앞집여자 매일 새벽에 나갔다가 한 시간 반정도 있으면 들어온다고 주말엔 또 안 나간데.... 수군수군 매일 샴푸향기 폴폴 풍기고 얼굴을 또 뽀샤시하잖아. 

듣고 있자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네 맨날 새벽만 되면 나갔다가 애들 학교 보내기 전에 들어오는데 손에는 또 핑크색 목욕바구니를 들고 말이야. 젊은 여자가 무슨 목욕을 일주일에 5번이나 하겠어.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마음에도 따뜻한 기운이 돌고 있나 보다. 서로 농담도 툭툭 던지니 말이다. 



늦바람이 무섭다는데 나는 이 바람을 하하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해보고 싶다. 예쁜 수영복에 우아한 

인어를 꿈꿔본다. 이영애 말투는 내 길이 아닌 걸로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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