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로소로 May 17. 2023

돌아와요 수미씨

당신을 응원하겠습니다. 영원히





태생이 마르고 병약해서 잔병치레를 많이 했었다. 체력은 말해 뭐 하나 저질의 끝판왕이었으니 참여하는 마음은 항상 하이텐션 달리지만 몸은 어째서 뒤에서 축축 헉헉 거리면 따라가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30년을 골골거리던 내 삶에 잔병이 사라지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짜잔 그것은 임신과 육아로 엄마는 아프면 안 된다를 실천 중이었다. 피로할 때 오는 인후통 몇 년에 한 번 오는 장염은 애교라 말할 정도였으니 요렇게 지내면 국수처럼 가늘고 길게 살겠다 싶었다. 매년 맞는 독감주사도 아이들만 맞췄고 안 맞은 나만 독감에 안 걸리는 아이러니를 경험했다. 심지어 우리 집에는 코로나도 작년에 각 1명씩 돌아가며 따로 걸렸고 그마저도 나는 요리조리 피해 갔다.




매일 새벽수영에 이 들려서 주 5회를 열심히 나갔다. 실력은 제자리걸음이지만 물속에 풍덩 들어갈 때 미끄덩 거리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태아기 때 양수에서 느낌이 이런가 생각이 들 정도로 포근하게 둥실 떠있는 엄마 뱃속처럼 아늑했다. 새벽수영을 유지하기 위한 팁으로 꼬박꼬박 비타민을 챙겨 먹었다. 확실히 안 먹을 때보다 먹고 나면 일어나는 게 가뿐하고 좋았는데 빈속에 먹으면 속이 부대껴서 밥 먹고 바로 먹어야 한다. 그 귀차니즘을 일주일 걸렀으니 바로 신호가 왔다.




준비 운동을 하고 몇 바퀴 돌아 몸이 따스해질 때쯤 정수리가 찌릿찌릿 번개가 번쩍 안 되겠다. 이러다 물속에서 쓰러지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신속하게 씻고 나와서 한 숨 돌렸다. 일주일 비타민 안 먹은 게 이렇게 나오나 역시 늙었구먼 혼잣말이 나온다. 어랏 몇 시간 지나니 정수리부터 무릎까지 온 근육이 아프다. 그 길로 병원에 달려가 진료를 보고 코로나 막차에 올라탔다.



결혼 10년 만에 오롯이 혼자만의 안식년을 가지는 구나 휴양지로 떠난 사람처럼 격리기간 동안 책도 읽고 글이나 실컷 써볼까라는 물색없는 여인이 되었다. 가족들은 심심해서 어쩌냐고 안쓰러워했는데 방바닥과 한 몸이 되어본 게 언제인지 아픈 와중에도 너무 좋았다. 가지고 간 책과 노트북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전원도 켤 수 없었다.



그렇게 수다스러운 나는 손가락이 멈췄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나의 생각들을 야금야금 잡아먹었다. 격리기간을 무난하게 보내고 다시 일과 글쓰기를 이어가려 정신을 다 잡아 보지만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이쯤 얘들아 작가방도 시끌벅적한 사랑방에서 대화 없는 고요한 물결이 일렁이고 글쓰기도 주춤 올라오는 글들이 없었다. 아직은 컨디션이 덜 돌아온 거야 다른 사람들도 글이 없잖아 안도하고 있었는데 웬걸 다른 몇몇 작가님들도 번아웃에 빠져서 글쓰기가 멈췄다.




눈은 분명 모든 걸 읽고 있는데 행동으로  치매 노인이 따로 없다. 안 되겠다 싶어서 사브작 북클럽 책을 부여잡고 이걸 끝까지 읽는 걸 목표로 잡고 책에 집중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해변에 쓸려온 자갈과 같다네
처음엔 거칠고 들쭉 날쭉하지
그런데 삶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온다네

우리가 그곳에 머물며 다른 자갈들 사이에서
거칠게 밀치고 비비다 보면

날카로운 모서리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닳게 된다네
결국 둥글고 매끄러워지지
그러면 빛을 반사하며 반짝이게 될 걸세



어렵사리 부여잡은 책에서 마음에 소리가 들렸다. 삶의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오고 다른 자갈들 사이에서 밀치고 비비다 보면 자갈은 둥글고 매끄러워 반짝이게 된다는 말처럼 혼자서 끝까지 갈 수 없는 여정에 사브작이라는 파도 일렁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갑작스럽게 치매 노인이 되어 정처 없이 길을 헤매고 있는 나에게 따스한 손길이 닿았다.

독서모임에서 사브작매거진이 매주 발행 된다. 번아웃이 온 작가들도 다시 쓸 수 있는 힘이 생길 때까지 밀어준다는 이탈금지 모드로 전환되었고 배에서 뛰어내릴 사람도 다시 끌어올려 태우는 무적함대가 6개월 전부터 출항했다.  우리의 여정에 희로애락이 충만하길 기대하노라.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다 운전면허가 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